詩書畵 雲谷 姜張遠

 

 
작성일 : 05-08-15 11:11
德溪 吳建의 ‘義로움’의 개념/이명곤
 글쓴이 : 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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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溪 吳建의 선비사상에 나타나는 ‘義로움’의 개념과 義의 形而上學적 특성


이 명 곤
(경북대)


『서문』
학문을 추구하는 근본목적이 ‘人間사랑’에 있다는 것은 만인이 긍정하는 사실일 것이다. 그럼에도 모든 학문이 첨단을 달리고 있는 현대사회에서는 학문의 발전에 비해 인간사랑의 의미는 너무나 미흡하게 나타나고 있는 듯 하며, 자주 학문의 발전이 - 특히 기술문명의 발달이 - 오히려 근심과 불안을 야기하고 인간의 생명과 행복을 위협하기도 한다. 이러한 모순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을 것이나, 爲學의 근본목적을 망각하고 있거나, 알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知行合一’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가 ‘선비정신’에 대한 강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면, 아마도 이는 역설적으로 이러한 한국의 현실을 대변해 주고있는 것이 아니가 생각된다. 본 논문에서 다루고 있는 덕계선생의 선비정신에서 나타나는 ‘지행합일’의 개념은 단순히 <아는 것을 행함>이라는 의미를 넘어서고 있으며, 이는 선생의 총체적인 삶, 선생의 전 실존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 됨’ 혹은 ‘人格의 完成’을 의미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덕계선생’의 삶과 정신을 고찰한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을 가장 잘 대변해주고 있는 정신을 고찰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이러한 선비정신의 ‘핵심’ 혹은 ‘본질’을 덕계선생의 생애와 사상 전반에 걸쳐 부각되고 있는 ‘義’와 ‘義로움’의 개념을 통해서 고찰하고 있다.
<제 1 장>에서는 ‘지행합일’로 대변되는 덕계선생의 선비정신에 대해서 선행연구들을 중심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제 2 장>은 2절로 나누어지는데, <1절>에서는 특히 덕계선생의 사상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義’의 개념에 대해서 ‘3가지 의미’로 나누어 고찰하고 있다.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윤리적’ 혹은 ‘실천적’인 측면보다는 비교적 많이 고찰되지 않고 있는 ‘존재론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義로움의 ‘力動性’을 강조하고 있다. <2절>에서는 ‘義’ 혹은 ‘義로움’이 가지는 形而上學的인 측면을 밝히고자 하는데, 이는 전통적인 유가적 심성에서 나타나는 ‘太虛’ ‘本體’등의 개념과 연관지어 의로움의 근원이 인간적 지평을 넘어선 보다 깊은 형이상학적 뿌리를 지니고 있음을 밝히기 위함이다. 이러한 조명은 결국 ‘天人合一’의 전통적인 유가정신이 단순히 ‘은유’나 ‘비유’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실재’를 말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일종의 신비주의적 지평, 종교적 지평에 닿아있음을 논하는 것이 될 것이다.
제 1 장 : ‘知行合一’로 대변되는 덕계 오건의 선비정신 - 생애와 언행을 통한 이해--

선비라는 용어가 정확히 무엇을 지칭하는가? 하는 것은, 보다 깊은 역사적인 어원적인 고찰이 필요할 것이나, 본 논의에서는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선비개념을 수용하면서 고찰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선비개념이란 ‘유학의 근본이 되는 학문을 익히고 이를 현실 안에서 실천하는 사람’으로 정의 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선비에 대해 연구한 이장희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선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맹의 道를 익혀 현실에 실천하는 것을 가장 바람직한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수많은 선비들이 그 삶이나 行業에 있어서 모두가 동일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것은 공맹의 도를 이어받은 그들의 학풍이 모두 동일하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나아가 이를 현실에 실천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선비로서의 덕계 오건의 진면목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가 익힌 학문의 학풍은 어떠한 것이었으며, 그는 이를 어떠한 방법으로 실천하고자 했는가? 하는 점을 살피는 것이다. 덕계 오건의 생애에 있어서 그 시대적 분위기를 말해 주고있는 간략한 기술을 보자.

“덕계 오건은 조선중기의 사림의 대표인 남명학을 학통으로 하면서 관인학자의 길을 정직하게 수행한 강직한 선비다. 그가 생존했던 16세기는 무오사화 이후 사림파에게 일대 타격이 가해지면서 많은 학자들이 산림에 隱居하기 시작한 관인학자들의 몰락시기였다. 그가 태어나기 일년 전 기묘사화(1519, 中宗 14년)는 더 이상 사림학자가 중앙 정계에 등장할 수 없는 도학의 殘影조차 묵살 당했다.”

“덕계를 비롯한 당대의 사림선비는 정치의 秕政을 시정하고 爲民意識에서 道學을 구현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그 의지의 실현이 다수의 人間됨을 願하는 사림선비에 의해서 ‘敎’와 ‘學’이 공존하면서 항상 反省的 思考가 있게 했다. 덕계에게서 찾아 볼 수 있는 선비 정신은 항상 學人의 자세를 堅持하는 가운데 삶의 내용을 悟․ 導․ 省․ 知에 두면서 道義와 志操를 지킨 자취를 찾을 수 있다.”

이상의 두 기술을 토대로 보면, 덕계 오건은 남명학픙을 이어받은 선비로 관리의 길을 걸어갔으나, 당대의 秕政으로 인하여 관인의 길보다는 ‘사람됨’을 추구하여 선비로서의 지조를 지키고자 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그에게 있어서 ‘官人으로서의 삶’이란 정치를 통한 유학의 이념을 현실 속에 구현하는 방법적인 것이었으며, 이념의 구현에 도움을 주지 못하는 방법적인 선택은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덕계 오건의 행위는 ‘참된 것’ 혹은 ‘진실 된 것’만을 行爲의 척도로 삼고 있는 성숙한 지성인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진실 혹은 참됨에 대한 그의 열정은 학문을 탐구하는 방법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독학으로 학문을 탐구하면서 가사를 돌보고 스스로의 인격을 다듬어 正道를 잃지 않는 성품을 지니고 있었다. (...) 이러한 학습방법과 태도로 論語, 孟子에 옮겨 조그만 의심도 칼날같이 해석하였다.”

‘조그만 의심에도 칼날같이 해석하고 正道를 고수한’ 그의 학자적 태도는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한’ 데카르트의 방법론적 회의를 연상케 한다. 우리는 이러한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덕계선생의 정신을 퇴계선생이 극찬하였음을 알고 있다. 권위나 선입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명철한 지성에 참된 것만을 추구한 이러한 고귀한 선비적 정신은 그럼에도 모든 이에게 다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관직의 길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상규는 이러한 덕계 오건의 정신을 ‘머리털이 쭈삣할 지경’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비록 千里에 있어서도 가을 서리 뜨거운 태양의 늠름함이 머리털이 쭈삣할 지경이라고 하여 당시선비들의 나약함을 들어서 혼탁한 정치계에서 학자로서의 몸가짐에 유의하도록 훈도 하였다.”

청념 결백한 덕계선생의 선비 정신이 ‘머리털이 쭈삣할 지경’이라고 말하고 있는 한상규의 표현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서 알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덕계 오건의 知行合一의 정신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는 점은, 그의 청념함과 강직함이 단순히 原則과 正道를 고집하는 학자적인 성격의 발로만이 아니라 가난하고 보호받아야만 할 나약한 민중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에서였다는 점이다. 정우락 교수의 「덕계집해재」에는 이러한 덕계선생의 ‘민중에 대한 사랑’이 잘 나타내 보이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덕계선생이 처음과 두 번째 올린 계문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핍박받는 민중을 위한 배려였음을 알 수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570년 그가 어사 겸 災傷敬差官으로 전라도 지역을 순찰하고 첫 번째로 올린 계문인 「御史兼災傷敬差官時啓」에서도 그의 백성 사랑 정신은 도드라진다. 즉 태조의 胎室이 있어 部曲에서 郡으로 승격된 지역의 군민들이 땅이 협소하고 궁벽한 데도 조세를 다른 군과 동일하게 내는데, 이를 부담하지 못해 유망자가 속출한다고 하면서 그 지역민의 입장에서 개선을 요구하였다. 이같이 덕계는 먹을 것을 하늘로 여기는 백성들에게 이것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것은 치자의 바른 태도가 아니라고 보고 합리적인 방법을 도출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고민하였던 것이다.
백성들이나 나라에 해악을 끼치며 비리를 자행하는 관리는 마땅히 척결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1570년 두 번째로 올린 「御史兼災傷敬差官時啓」에서는 順天의 突山島에 권간들이 屯田 이외에 토지를 개간하여 牧子들이 살만한 땅을 일구기가 어려워 離散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하면서 백성의 입장을 성실히 반영하였다. 「請罷尙州判官尹堅鐵啓」, 「請收沈銓給牒之命啓」, 「請罷尹思商啓」, 「請罷司儀金在孚啓」에서 윤견철, 심전, 윤사상, 김재부 등을 고발한 것도 같은 이치였다. 즉 윤견철은 선왕의 外祖임을 이용하여 편한 任地만을 택하니 파직하여야 하고, 심전은 남의 노비를 빼앗고 백성의 토지를 점탈하였으니 직첩을 거두어들여야 하며, 윤사상은 관사는 다스리지 않고 모리만 일삼으니 파직해야 하고, 김재부는 시장의 물건을 빼앗고 관고의 물품을 횡령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물의 방납 행위를 일삼으니 이를 파직하여 탐관오리의 무리들을 징벌하라는 것이었다.”

위의 내용들은 원칙과 진실이 외면되는 혼란한 사회에서 ‘부당하고’ ‘억울한 일’들은 모두 나약한 민중의 몫임을 잘 이해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해 실천적인 행위를 발휘한 덕계선생의 ‘義로운’ 용기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덕계 오건의 지행합일적 정신이 다만 사회적이고 대외적인 일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보다 우선적이고 일차적인 師弟간의 부모자식간의 윤리관계에서 역시 덕계선생은 자신의 믿는바 대로 철저히 행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자.

“參奉公이 병으로 몸져 누워 선생(덕계: 필자주)의 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내가 죽고나서 너는 누구에게 배워 사람 구실을 할 수 있겠느냐?” 선생은 울면서 그 말을 받잡았다. 병이 지극해지자 뜰에 꿇어 앉아 하늘을 향해 두 번 절하고 부르짖어 울면서 빌었다. 이렇게 하기가 여러 번이었다. 장사지냄에 있어서는 執禮를 成人처럼 하였다.“

“산음에 사는 幼學 오건은 그의 어머니가 병들자 날마다 어머니의 인분을 맛보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廬墓살이를 할 때에는 한 번도 집에 오지 않았다. 죽을 먹으면서 3년상을 마쳤는데 그 후 다시 心喪을 행하여 아침․저녁으로 奠을 드리고 하루에 세 차례씩 소리내 울었다. 임금이 그의 효성을 가상하게 여겨 復戶에 명하였다.”

이상의 자료들은 덕계선생이 스승이나 부모에게 예를 갖춤에 있어서 얼마나 유교적 정신에 철저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점은 ‘3년 상을 마친 일화’와 같은 것이 오늘날의 윤리적 현실에 얼마나 실효성 있는 본보기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믿고있는 가치들에 대해서 철저히 행위로 실현시켰다는 점이다.
학자로서 학문을 탐구하는 방법론에 있어서, 관인으로서의 치정을 하는 데에 있어서 그리고 개인으로서의 스승과 부모와의 관계에 있어서 등 그의 모든 삶의 지평에 있어서 오로지 ‘참되고’ ‘올바른 것’ 만을 추구하고자 했으며, ‘생각하는 바’와 ‘말하는 바’ 그리고 이를 ‘행위로 실천하는 바’에 있어서 하나가 되고 일치가 되었던 것이 바로 덕계선생의 ‘지행합일’의 선비정신인 것이다. 덕계선생의 선비정신은 情神(마음)과 言行이 그의 ‘삶의 총체성’으로부터 일체가 되어 드러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점이 세인으로 하여금 ‘머리털이 쭈삣 서는’ 두려움을 느끼게 까지 한 것이다. 글로 읽거나 이야기를 경청함에 있어서 감탄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고귀한 선비의 정신이 현실 안에 그것도 우리들의 바로 곁에 존재할 때, 사람들은 머리털이 쭈삣 서는 것과 같은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왜 그런가? 아마도 이는 이러한 결백하고 순수한 정신이 우리에게 이와 동일한 ‘올바른 삶’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우리 모두가 不義한 者는 아닐 지라도 우리는 不義한 상황 속에서 살아가며 따라서 어느 정도 이러한 不義를 공유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일 것이다. 不義한 사회 속에서 正義를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혼자됨’의 고난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덕계 오건의 선비정신이 보여주는 놀라운 점은 바로 현실 안에서 ‘스스로(홀로) 통찰한 진리’를 자신의 삶으로 수용한 용기 그 자체이다. 프랑스의 실존주의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까 ? 아무도 그 혼자 만이 통찰한 의미를 삶의 의미로 부여할 수 있는 용기 혹은 힘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그런데 덕계 선생의 선비 정신은 이러한 힘겨운 진실을 아무런 주저함 없이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선비정신에서 특히 부각되고 있는 ‘主體的 삶’과 ‘自由精神’을 발견할 수 있다. 주체적이란 판단과 결정 그리고 행위에 있어서 외부적인 권위나 힘에 의존하지 않는고 스스로의 내적 확신과 양심에 따른 다는 것이며, 이는 곧 ‘정신적 자유’, ‘철학함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힘겨운 상태라 할지라도 그것이 진실이고 참된 실재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그 어려움과 고난 위에서 우리들의 ‘삶의 의미’와 ‘인간 됨의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그것을 현실 안에서 실현하고 있는 것이 곧 덕계 오건이 지닌 선비정신의 참된 모습, 즉 ‘知行合一의 정신’인 것이다. 우리는 이를 ‘義로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 2 장 : ‘義’의 意味와 義로움의 형이상학적 측면

1. 義의 삼 단계와 역동성

‘지행합일’로 상징되는 덕계선생의 생애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곧 ‘義로운 者’이며, 이 義의 개념은 南冥學이 여타 다른 학풍과 구별되는 특성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남명학이 ‘義의 개념’을 그 특징적인 요소로 취하고 있는 점은 여러 점에 서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우선 우리는 이를 남명선생의 행적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 선생은 ‘敬’과 ‘義’를 유학의 모든 가르침을 요약해주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만년에 특히 ‘敬義’ 두 글자를 제시하여, 창문과 벽 사이에 크게 써 두셨다.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 두 글자가 있는 것은 마치 하늘에 해와 달이 있는 것 같아서, 萬古토록 바뀔 수 없는 것이다. 聖賢의 千言萬語가 결과적으로 모두 이 두 글자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상필 교수의 연구서에서 이러한 점을 다시 확인해주고 있으며, 남명선생을 잇는 후학들에게 역시 계승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南冥의 문인들에게는 ‘敬義’가 남명의 핵심사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뿐만 아니라 그 이후의 학자들도 대체로 남명 사상에 대하여 한 마디로 ‘경의’라고 요약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고, 지금도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의 재야 원로 학자들은 남명학을 ‘敬義之學’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남명선생’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연구한 다른 한 저서에서는 ‘敬’의 의미를 ‘義’를 실현하기 위한 필연적 요청으로 이해하면서 ‘義’에 대해서 보다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유학의 공부론이 여타의 철학체계와 구별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義라는 사회적 질서코드와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남명은 여타의 성리론자들 보다 더욱 유학의 본래모습에 더 가까이 있다. 물론 남명의 ‘義’가 원시유가의 질서율인가 아니면 새로운 형식인가 하는 점은 더욱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行義’가 없는 주경(主敬)은 남명에게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주경이 없이는 행의가 불가능하기에 敬이 강조될 뿐이라는 손병욱의 주장은 유념할 만하다.”

‘敬’이 ‘義’를 실천하기 위해 요청되는 것인가? 즉 ‘義’를 목적으로 主敬이 있는가, 아니면 ‘義’가 ‘主敬’의 결과물로서 나타나는 것인가? 하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우리는 차라리 이 둘은 서로 근본적으로 분리될 수 없는 것이며, 한 사람의 ‘인격’에 일체가 되어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 하다. 그리고 남명선생이 앎 그 자체보다는 ‘인간 됨’을 중시했다는 점에서 남명선생에게 있어서 ‘義로움’은 ‘爲學’의 마지막 목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계오건의 생애와 사상에 나타나는 ‘義’의 개념은 이러한 남명선생의 ‘義’의 개념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가 있는데, 덕계 선생은 “남명선생께서 나의 편지에 회답하셨는데, 의리를 보는 눈이 높지 못하다하여 꾸짖으셨다. 어둡고 게으른 마음을 경계하심이 지극하다.”고 그의 『歷年日記』에서 쓰고 있는 것을 보아도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덕계선생의 사상에서 나타나는 ‘義’의 개념을 살펴보자.
우선 義의 일반적인 의미를 알아보기 위해 辭典的 정의를 살펴보면, ① 전통적인 유교정신에서 수용되고 있는 것으로, 사리를 분별하여 거기에 합당하게 하는 것으로 특히 질서를 존중하며 상하를 구별하여 확실히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禮’라 이름하며 <윤리적 義>라고 한다. 그리고 ② 불교에서 ‘義’를 문자와 언어로 표현된 가르침의 내용을 의미하는 ‘아르타(artha)’를 지칭하며, ③ 그리스도교에서는 최고신인 하느님에 의해서 주어진 법(神의 뜻 혹은 義)에 따른 인간행위에 대한 엄정한 심판 혹은 신이 세운 우주적 질서 그 자체를 ‘義’라고 한다. 이외 서양철학의 전통에서의 ‘義’ 혹은 ‘正義’ 개념은 ④ ‘法에 대한 적합성’ 혹은 ‘공정함의 감정’을 의미하는 라틴어의 ‘justitia'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파생된 다른 철학자들의 개념이 있는데, ⑤ 스피노자에 의하면 시민법에 의해 각자에게 부여되어진 것을 정당하게 부여하고자 하는 ‘영혼의 지속적인 경향성’을 말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랑스의 윤리학자 ⑥ 프루동(Proudhon)에 의하면 ‘의로움(justice)’이란 자신과 유사한 타인 안에서 타인의 ‘존엄함(dignité)’을 느낄 수 있는 능력 혹은 이 능력의 결과물이라고 말하며 이를 자발적으로 체험된 ‘존중(respet)’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상의 여섯 가지 ‘의’ 혹은 ‘의로움’의 개념을 보면 그 공통점이 ‘질서’ 혹은 ‘법'의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예’나 ‘아르타’ 그리고 ‘신의 뜻 (혹은 우주적 질서)’, ‘시민법’ 등은 모두 이미 주어져 있는 일종의 ‘윤리적 명령체계’로서 이러한 것이 ‘義’라고 불리는 것은 ‘법’이라는 형식아래 ‘옳다’ ‘타당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옳지 않는 것, 부당한 것을 ‘법’ 혹은 ‘질서’라고 말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롭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이러한 질서체계를 존중하고 지키는 ‘행위’를 말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이러한 것을 존중하는 ‘정신과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義가 명사로서 ‘어떤 것’을 의미할 때는 ‘정당한 법’이나 ‘올바른 질서’ 혹은 ‘올바름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가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여섯 번째의 경우엔 ‘타인이 지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함’에 대한 ‘존중’으로서, 이는 우선적으로 ‘내적인 정서’ ‘심적 경향성’을 의미하며, 이차적으로는 이러한 ‘경향성’이 실천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즉 ‘義’라는 것은 ‘올바른 법․질서 혹은 정당한 법․질서’를 말하며, ‘의롭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義’를 존중하고 ‘義’를 내면에 갖추고 있는 ‘德性’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차적으로는 이를 인간관계나 사회관계속에서 ‘실천’하는 행위를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의 사전적 의미의 ‘義’의 개념과 ‘義로움’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덕계선생의 ‘義’에 대한 개념은 근본적인 것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우선 학문의 道인 ‘궁리와 거경’에 대한 덕계선생의 견해를 보자.

학문의 도는 다름 아니라 窮理와 居敬일 따름입니다. 옛 선비들이 ‘혹 책을 읽어 의리를 밝히고, 혹 고금의 인물을 논하여 그 시비를 분별하며, 혹 사물에 應接하여 마땅함과 그렇지 못함을 판단한다’고 하였는데, 이것이 窮理의 일입니다. 또한 옛 선비들 중에 ‘마음을 하나로 주장하여 다른 데로 가지 않게 한다(主一無適)’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몸가짐을 가지런하고 엄숙하게 지녀야 한다(整齊嚴肅)’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항상 마음이 깨어 있어야 한다(常惺惺法)’고 한 사람도 있었고, ‘그 마음을 거두어들여 하나의 사물도 용납하지 않는다(其心收斂 不容一物)’고 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것은 居敬의 공입니다. 이 두 가지는 수레의 두 바퀴와 새의 두 날개와 같아서 하나라도 빠뜨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본원을 함양하고 공부를 하는 들머리로서 천하의 모든 일이 이를 좇아 나오는 바며, 치란과 흥망이 이로 말미암아 나누어지는 바입니다.

선비에게 있어서 학문의 두 道가 되는 ‘窮理’와 ‘居敬’은 ‘올바른 것을 분별하고 판단하는 것’과 ‘마음을 굳건히 하여 이러한 올바름을 항상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라고 할 수가 있다. 즉 달리 말하면 ‘義를 밝히는 것’과 ‘義를 저버리지 않기 위한 마음의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덕계선생에게 있어서 ‘義’는 ‘학문의 탐구 이후에 실천되는 행위’에서 비로소 발생되는 것이 아니라, 학문의 시초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즉 凡事에 있어 ‘義’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 궁리의 원인이자 목적이요, 나아가 올바른 것(義)을 사회 안에서 실현하는 행위에서 ‘義로운 者’가 되어지는 것이다. 즉 선비에게 있어서 올바른 道란, ① ‘義의 밝힘(窮理)’ -- ② ‘항상 義를 수용할 수 있는 내적인 경향성 확립(居敬)’ -- ③ ‘현실 속에 義를 실현시킴(實踐)’의 삼 단계 과정을 가진다고 할 수가 있으며, 첫째와 둘째 단계에서는 ‘學文의 道’를 마지막 삼 단계과정에서 ‘行爲의 道’를 이룬다고 할 수가 있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경’과 ‘의’를 지향하는 敬義之學으로서 남명학에 있어서 ‘敬’은 수양의 道이고 ‘義’는 실천의 道라고 말하는 것은 부당한 것은 아니나, 그럼에도 -- 덕계 선생의 정신에 비추어서 보자면-- 이러한 이분법의 구별이 적절하지 못함을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義’는 당연히 실천의 道이겠지만, 그럼에도 학문의 출발점이자 居敬의 목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善’에 대한 덕계 선생의 사유를 살펴보자.

“論하여 가로되 善을 생각한다는 이름은 있으나 善을 즐긴다는 실천은 없으니, 한마음이 밝지 못하여 그 생각하는 바를 채우지 못하고, 그 생각하는 바를 채우지 못한 것으로 한 번 善한 것과 한번 惡한 것 사이에 능히 옳고 나쁨이 혼합되어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 이러한 까닭으로 비록 선을 즐거이 하는 實則은 없으니 군자가 그 생각하는 바를 善하다고 할지언정 그가 즐기는 바 實則이 없는 것이 病이다.”

‘善을 생각하는 것은 있으나, 善을 실천하는 것이 없기에,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다 채우지 못한다’는 표현에서 ‘마음에 생각하는 바를 못 채운다는 것’은 사유를 통해 善하다고 하는 것을 ‘내면적인 德性 혹은 존재론적인 義’의 형태로 지니지 못함을 말한다. 즉 居敬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내적인 덕성’을 의미하는 ‘존재론적인 義’는 義의 실천적인 반복행위를 통해서 형성되는 것이다. 결국 ‘내적이고 존재론적인 義(즉 居敬을 통한 德의 소유)’와 ‘실천적인 행위로서의 義’는 不可分의 것이다. 전자는 후자의 원인이 되고 또 후자는 전자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둘 중 어느 하나가 상실되면 다른 하나가 상실되고, 결과적으로 마음속에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이 혼합되어 선․악의 분별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敬’에 대비되는 ‘義’의 개념이 실천을 의미하는 ‘行爲의 義 / 올바르게 행위하기’라면, 居敬(敬을 내면에 갖추는 일) 그 자체는 ‘항상 義로운 것을 지향하고, 수용하고자 하는 내적인 경향성’으로서의 ‘존재론적인 義 / 올바르게 존재하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다시 말하면 敬을 내면에 이루고자 하는 ‘노력자체’가 이미 일종의 ‘의로운 행위 인’ 것이며, 이러한 ‘경’이 내면에 갖추어진 상태를 ‘의로운 상태’ -- 행위의 의로움이 아닌 존재론적으로 의로움 -- 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언어적 분석에서도 분명해진다. 순수한 언어적 분석에 있어서도 ‘의롭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 하다’는 형용사로서 어떤 것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따라서 보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존재론적인 義’를 지니고 있는 ‘義로운 者’와 ‘義를 실천하는 행위자’를 의미하는 ‘義로운 者’를 구분하여야 옳을 것이다. 이러한 구분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한두 가지 예만 들어도 분명해 진다. 가령 가난한 이에게 재산을 나누어주는 동일한 행위를 한 두 기업인이 있다고 하자. 외형적으로는 모두 ‘義로운 일’을 행하였지만, 한 기업가는 ‘올바른 삶’에 대한 요청으로,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의 善한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한 정책적 전략으로 행했다면 우리는 이 두 사람이 동일한 ‘義로운 者’라고 말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전자는 ‘居敬’을 통한 ‘내면의 경향성’을 통해서 ‘義’를 실천하였고, 후자는 자신의 이득을 위한 헤아림에 의해서 ‘義’를 행하였다. 즉 전자는 ‘내적인 필연성’에 의해서 행하였고, 후자는 ‘우연적인 기회’를 통해서 행한 것이다. 이 경우 ‘富의 분배’를 실현한 외적인 행동에 있어서는 동일하게 ‘義’를 이루었지만, 전자는 ‘存在論的으로 義로운 者’였고 후자는 그러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덕계선생이 남명선생의 가르침을 충분히 깨우치지 못했음을 한탄하는 글을 발견할 수가 있는데, 선생은 “僞學 방법이 때를 알아서 義를 모아 깨우치도록 거듭하여 가르쳐 주었는데, 썩은 나무는 소용없이 부르짖고 깨우치지 못했다”라고 자신의 ‘부족한 실천 정신’을 질책하고 있다. 여기서 ‘義를 모으다(義揖)’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만일 ‘義’의 의미를 단순히 ‘행함’에만 둔다면, 의미가 통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는 ‘居敬을 통해서 내면에 형성한 올바른 마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존재론적인 義’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덕계선생의 삶에서 나타나는 ‘義’의 개념은 ‘선비로서의 삶’ 전반에서 드러나고 있으며 마치 그의 ‘인격 자체’가 ‘義化’되어 나타나고 있는 듯 하다. 우선 조그만 의심에도 칼날같이 해석하고 항상 正道(올바름)를 추구한 그의 ‘窮理’의 정신에서, 스승이나 부모와의 관계 등에서 보여지는 ‘禮’에 대한 그의 ‘居敬’의 정신에서, 나아가 지탄 없이 ‘정의를 실현’하고자 했던 관리로서의 ‘실천적 삶’에서 일관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義의 의미가 표출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義’의 역동적인 측면을 매우 강하게 느낄 수 있다. 義는 우선 선비로 하여금 ‘궁리’를 갈망하게 하는 ‘동인(動因)’처럼 등장한다. 그리고 궁리를 통해 밝혀진 ‘義’는 거경을 통하여 내면에 획득된(형성된) ‘德性’처럼 존재하며, 이러한 내적이고 존재론적인 義는 현실사회 안에서 義의 실천을 가능하게 하는 행위의 원동력(근원적인 힘)처럼 나타나는 것이다. 한마디로 ‘義’는 진정한 선비에게 있어서 출발점이요 마지막 목적지라고 할 수 있으며, 부단히 선비의 삶을 새롭게 하고, 활력을 불어넣으며, 행위의 동기 그 자체이며 스스로 성장하기를 멈추지 않는 ‘力動性’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力動的이다’라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일 수 있겠지만, 두 가지 측면에서 보자면, ⓛ ‘정적이지 않고 움직인다 혹은 변화한다’는 의미이다. 위에서 살펴본 덕계선생의 정신에서 보여지는 삼 단계의 ‘의로움’은 서로 각기 독립적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의 덕이 다른 하나의 덕으로 변모한다고 할 수 있다. 나아가 ‘義’는 선비로서의 삶의 출발점이자 완성에 이르는 전 실존의 지평을 통해서 끊임없이 표출되고 있는 것으로서 ‘역동적’인 것이다. ‘역동성’의 다른 한 의미는 ② 철학적 역설에 해당하는데, 이는 장애물, 어려움, 고뇌와 같은 부정적인 삶의 요소들을 통해서 ‘추락’하거나 ‘상실’되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부정적인 요소들을 통해 더 ‘큰 의로움’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선비들의 삶에 있어서 이러한 삶의 부정적인 요소를 생각하지 않고는 그 ‘의로움’ 역시도 생각될 수가 없다. 선비들의 ‘의로운’ 자아는 이러한 삶의 부정적인 요소들을 피하거나 어려워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부딪히고 ‘교정’하고자하는 의지를 가졌고 그러기에 그들의 의로움이 ‘보다 큰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세속적인 모든 영광에서 물러난 가난한 선비라 할지라도 때로 제왕보다 더 큰 위엄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의로움의 ‘力動性’ 때문일 것이다. 선비들에게서 한결같이 느낄 수 있는 고결한 ‘志操’는 단순히 의지의 결단만은 아닐 것이다. 이는 직접적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코 소멸하지 않는 이 ‘역동적인 힘’의 결과 인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덕계선생의 삶을 ‘知行合一’의 선비정신으로 요약하고자 할 때, 이 지행합일의 의미를 단순히 ‘앎과 행위의 일치’라고 표현하는 것은 충분치가 못할 것이다. 이는 窮理의 학문적 방법론에서, 居敬을 통한 내면화된 ‘存在論的인 義로움’에서 그리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意志의 발로’에서 一體가 되어 나타나는 것이며, 따라서 그의 全 實存이 점진적으로 ‘義로움’에로 변모된 것(되어짐)을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덕계오건의 선비정신에 있어서 ‘인간 됨’은 심오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한상규는 그의 논문에서 “위학의 근본되는 이론을 비록 堯舜에 비유하여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으나, ‘앎’자체 보다는 ‘됨’에 비중을 두고 실천적 인간상을 爲學의 목적으로 보았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때 이 ‘됨'의 의미는 居敬을 통해 ‘존재론적인 義’를 내면에 갖춘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또한 ‘실천적인 인간상’에서 ‘실천’의미는 단순히 ‘행위’를 지칭하기보다는 ‘되어짐(義化)’과 ‘실천행위’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선비에게 있어서 ‘爲學’과 ‘居敬’은 그 자체 ‘실천적인 것’이요, ‘義의 행동적 발로’는 이러한 ‘실천적 삶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의’에서 출발하여 그 ‘의’의 완성에 이르고자한 것이 선비의 삶이고, ‘마음먹은 바를 중도에서 멈추지 않고 완성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이끌고 가고자 한 것’, 이것이 바로 ‘시작과 끝이 한결같음’을 의미하는 ‘지조(志操)’의 올바른 의미가 될 것이다.

2. 根源에 대한 지향성과 義의 형이상학적 특성

덕계 오건의 선비정신에서 나타나는 內面과 外面의 이러한 일체감을 성숙한 ‘人格性’이라 말할 수 있다면, 이러한 인격성이 단순히 ‘인간적인 지평’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현상’중에는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진리가 ‘형이상학적’ ‘종교적’ 지평에 대한 강한 요청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며, 덕계 선생의 정신에서 역시도 이러한 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덕계 선생의 儒家的 心性’을 잘 말해주고 있는 몇 편의 詩를 정우락 교수가 소개하고 있다. 그 詩중의 일부를 고찰해 보자.

가). 눈 덮힌 빈 산에서 책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밤 깊자 맑은 달빛 창 틈으로 새어드네.
이 같은 생각은 오늘밤이 참으로 좋으니, 조물주를 향해 太初에 대하여 물으려 하네.

나). (...)
本體의 虛靈함에 잠겨들어, 광대함을 마음에 온전하게 하네.
마음의 찌꺼기, 그 더러움을 끊어버리고, 太虛의 넓고 큼을 함양한다네.
(...)
고요하고 깊은 곳에 本源이 있다는 것을 아노니, 어찌 그 흐름이 저절로 맑아지랴?

위의 詩 구절에서 보여지는 ‘本體’, ‘天翁(조물주)’ ‘太初’, ‘太虛’, ‘本源’ 등의 용어는 모두 형이상학적인 용어들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용어들이 지칭하는 대상들이 ‘현상’을 초월하며 ‘제 현상들의 원인 혹은 근거’를 말해주는 것으로 감각적 인식이나 인간이성에 있어서 직접적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물주(天翁)를 향해 太初에 대해서 묻다’는 뜻을 보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바꾸어보면 ‘창조주(神)에게 宇宙의 기원에 대해 묻다’는 표현이 될 수 있을 것이며, ‘本體의 虛靈함에 잠겨들다’는 표현은 ‘현상들의 근원이 되는 세계실체의 靈的인 기운(우주의 생명)에 감화되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太虛의 넓고 큼을 함양하다’는 것은 ‘인간성 속에 존재하는 이 영적인 생명(우주적 생명)의 기운을 충만케 한다’는 뜻으로 환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聖人이란 단순히 ‘도덕적 의미의 완성된 인격’만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 같다. 聖人들은 인간적(윤리적) 지평을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지평’에 그들의 관심을 확대하고 그들의 실존이 교감을 가지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러한 형이상학적 지평을 일상적으로 가진 이들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왜냐하면 이러한 것이 유가적 심성의 특징이기 때문에...--. ‘세계의 근원’ → ‘영적인 우주의 생명’ → ‘인간성 속에 있는 동일한 우주적 생명의 함양’이라는 세 가지 큰 구도는 서구 신비주의 사상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구도로서, 이는 인간의 본성(실존)에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太虛와의 어떤 ‘유사함 혹은 교감’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간의 太虛와의 교감은 ‘義로움’의 근원이 인간존재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교감을 가지는 ‘세계의 근원’ 즉 太虛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의로움을 추구하는 선비들의 내면적 경향성 혹은 역동성은 <근원에 대한 지향성>을 또한 가지게 된다’라고... 이는 다시 말해 선비정신이 추구하는 의로움의 경향성은 그 역동적인 힘을 세계의 근원적인 힘으로부터 길어낸다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우주생명’, ‘세계 내에 내재하는 영적인 힘’ 등은 인간의 ‘존재론적인 義’를 형성하는 근원적인 힘이 된다고 할 수가 있다.
덕계 선생의 의로움의 정신에 나타나는 ‘형이상학적 국면’에 있어서 ‘義로움’은 자아(내면화 된 德)와 근원(우주의 생명)에 대한 일치의 요청으로 나타난다. 즉 태허, 조물주, 우주의 근원 등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관심과 질문들은 단순한 知的 호기심이나 유희가 아니라, ‘의로움’에로 변모된 자아의 지향성이 필연적으로 나아가게 되는 방향이다. ‘형이상학적 물음들’이 어찌하여 ‘義로움’에로 변모된 자아의 필연적인 ‘지향성’인가? 그 이유는 덕계선생이 보여주는 의로움의 개념이 ‘윤리적 정당성 혹은 정합성’을 넘어서고 있다는 그 자체에 있다. 義로움의 ‘力動的인 성격’을 통해서 의로움에는 보다 큰 善을 실현하려는 ‘意志’가 담겨 있다. 즉 보다 큰 존재론적인 義(의를 향한 내면적 경향성)는 보다 큰 善(행위를 통한 실천적인 義)을 실현한다. ‘보다 크다’는 말은 이미 ‘정당성’이나 ‘정합설’을 넘어선다. ‘義’의 개념은 탄력적인 것이다. 義는 ‘義’인가 ‘不義’인가? 라는 이분법을 통해서 규정되기보다는, 일상적인 당위나 작은 정의를 실현하는 ‘작은 의로움’에서, 殺身成人의 덕을 실현하는 보다 ‘큰 의로움’에 까지 ‘아날로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의로움’이 그 극단 -- 순수한 혹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에까지 이르는 순간에서, 더 이상 人間事에 비추어 ‘義’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지평, 즉 義의 근원에 이르는 ‘형이상학적 지평’ 혹은 ‘종교적 지평’에서 ‘義’를 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 저러한 상대적 혹은 개별적인 ‘의로움’이 아닌 ‘의로움의 근원’ 혹은 ‘의로움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곧 ‘天人合一’을 이루려는 정신이다. 바로 여기서 ‘계시’에 의한 종교가 아닌 ‘신비주의적 자연감정’으로부터 발생하는 종교적 실존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덕계선생의 유교적 심성에 나타나는 義의 형이상학적 국면은 ‘儒敎’가 단순한 학문체계나 사상체계를 넘어, 하나의 참된 종교, 즉 일종의 ‘자연종교’가 되고 있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고 하겠다.
세계에는 다양한 종교들이 있으며, 이러한 종교들이 근본적으로 공통되는 지반을 가지면서도 서로 첨예하게 대비되고 분리되는 것은 그들의 구체적인 敎理나 믿음의 덕목들에 의해서 이다. 그러나 문자화된 ‘敎意’를 초월하여 내면 깊숙이에서 느끼는 ‘인간성’과 ‘우주생명’과의 일체감은 거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신비주의적 측면이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지평’의 형성이 인간의 ‘존재론적 義’의 극단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윤리적 의로움이 ‘형이상학적’, ‘초월적’ 지평에로 도약하는 절대적 지점이다. 이러한 ‘의로움’에 대한 덕계선생의 정신은 이제 ‘윤리적 지평’에서 ‘형이상학적 지평’에로 나아가고 우리는 이를 <義로움의 形而上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결론』
우리는 본 논문에서 덕계 선생의 ‘의로움’의 정신에 대해서 그의 생애와 사상을 통해서 고찰하였고, 특히 ‘義’의 형이상학적 국면을 밝히는데 중점을 두었다. 의로움의 의미를 단순히 ‘실천적인 행위’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爲學’의 동기로서의 ‘올바름의 義’, 居敬을 통해 형성된 ‘내면적인 德性’을 의미하며 실천의 원동력이 되는 ‘존재론적인 義’, 그리고 실천에 의한 ‘행위의 義’를 구별시켜 고찰하면서 의로움의 ‘力動性’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러한 덕계선생의 ‘의로움’의 정신을 ‘선비정신’라고 한다면, <선비>란 어느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이나 학자들을 일컫는 말은 아닐 것이다, 선비는 ‘의로움’을 자신의 爲學과 行爲의 근원이자 목적으로 삼는 누구에게나 붙여질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특히 의로움의 형이상학적 근원에 대해서 부각시키고자 하였는데, 의로움의 형이상학적 측면의 연구는 儒家의 사상이 단순한 학문체계를 넘어서 종교적 지평에 닿아있음을 말해주는 것으로 앞으로 더욱 깊이 연구되어야 할 분야라고 생각된다. 太虛, 天, 本體, 本源과 같은 유가의 심오한 개념들은 참된 자연종교로서의 ‘儒敎’를 가능하게 하는 제 개념들이며, 유교가 가지는 종교의 사회적 역할을 충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즉 현실사회 안에 儒敎가 실질적인 효력성을 가지고 정착되기 위해서는 ‘의로움’의 개념이 매개체가 되지 않으며 안 것이다.
덕계 선생의 정신에서 나타나 듯이, 인간실존이 가지는 종교적․형이상학적 원동력이 현실 안에 실현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居敬을 통한 존재론적인 義’를 마음속에 가득 채움으로서, 결코 善․惡이 마음속에 공존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義로움이 무엇보다 먼저 마음속에 공존하는 善․惡을 냉철하게 분별하여 내 마음 속에 惡을 제거하고 善으로 가득 차게 하는 것에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여기서 ‘비움’에 대한 神秘家들의 정신을 떠올려 볼 수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神秘主義의 핵심에는 ‘비움의 개념’이 자리잡고 있다. 인간의 본성 깊숙한 곳에 세계의 근원이 되는 神性한 어떤 것이 거주하며, 이러한 신성한 힘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마음 속의 惡’의 성향을 비우는 것으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주역에서도 ‘去人欲 存天理’라 하였고, 독일의 여성신비가인 힐데가르트 역시도 ‘나를 비우는 만큼 神性함으로 채워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신비주의 정신의 근저에는 유가에서 말하고 있는 ‘天人一致’의 사상이 자리잡고 있다. 유가에서 보여지는 의로움의 개념을 신비주의 사상가들의 ‘비움’의 개념과 비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여기에 있다. 철학적 방법론으로서의 비교는 우열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비교는 덕계 선생의 爲學精神이 그러했듯이 서로의 장점을 수용하면서 보다 탁월한 것을 산출하고자 하는 ‘자아완성’의 변증법적인 노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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