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書畵 雲谷 姜張遠

 

 
작성일 : 06-02-14 18:07
魏晉南北朝美術
 글쓴이 : 雲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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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晉南北朝美術
fine arts during the Wei, Chin and the South & Northe dynasties

중국 위진남북조시대 각 방면의 미술.
중국 역사상 후한(後漢)의 멸망부터 수(隋)의 재통일까지를 위진남북조시대(220~589)라고 일컬으며, 육조시대라고도 하는데 이는 당시 강남 건강(建康:지금의 난징[南京])에 수도를 두었던 6개 왕조(吳·東晉 및 남조의 宋·齊·梁·陳)를 중심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이 시기를 삼국시대, 서진(西晉)의 통일시대, 동진·5호16국시대, 남북조시대로 세분하기도 한다. 이 시기에 중국은 정치·사회·사상에 있어서 혼란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혼란한 사회 환경으로 인해 사상의 활약과 문학예술의 발전이 촉진되었다. 또한 이 시기에 사대부 계층이 성장함으로써 문예 창작의 번영 조건이 마련되었다. 한편 세력이 커진 북방민족의 중원 진출, 서역 개발, 서방과의 왕래 증가 등은 모두 미술창작에 영향을 미쳐 여러 민족의 문화가 융합된 새로운 특징이 나타났다.
중국에서 최초로 명성과 명예를 누린 화가가 출현한 것은 위진시대였다. 오의 조불흥(趙不興:221~280)은 처음으로 명성을 얻은 화가로, 용(龍)과 불화(佛畵)를 잘 그렸다. 진(晉)의 위협(威脅)은 묵직한 기운이 담긴 그림을 그렸으며, '화성'(畵聖)이라고까지 일컬어졌다. 고개지(顧愷之)는 종교화를 잘 그렸고 또한 초상화에도 능했으며, 그의 작품 중 와관 사[瓦棺寺]의 〈유마힐상 維摩詰像〉이 유명하다 . 그는 인물을 그릴 때 대상의 정신세계까지 표현해낼 정도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여사잠도권 女史箴圖卷〉·〈낙신부도권 洛神賦圖卷〉·〈열녀전도 列女傳圖〉 등의 작품 중에는 옛 묘법인 '유사묘법'(遊絲描法:春吐絲式)과 같은 묘선 사용기법이 나타나 있다. 다퉁[大同]의 사마금룡묘(司馬金龍墓)에서 출토된 칠병풍화가 이러한 시대적 특징과 영향을 실증하고 있다.
송의 육탐미(陸探微)는 인물화에 능했으며, 붓끝이 가볍고 예리했다. 그의 그림은 절묘하고 신운(神韻)이 풍부하여 생동감과 친근감을 자아냈다고 한다. 이 두 사람의 풍격은 '밀체'(密體)에 속한다. 양의 장승요(張僧繇)는 초상화에 능했으며, 그의 화풍은 '소체'(疏體)에 속한다. 북제(北齊)의 양자화(楊子華)는 궁정화가로 주로 귀족생활을 소재로 삼았다. 그와 동시대 인물인 조중달(曺仲達)은 조(曹)나라 출신으로 불상을 잘 그려 '조의출수'(曺衣出水:옷이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어 있는 것 같음)의 풍격을 만들어냈다. 남북조시대에 산수화가 중시받은 것은 현학사상(玄學思想)의 성행과 관계가 있다. 송의 종병(宗炳)과 왕휘(王徽)는 최초의 산수화가로 그들이 분류·선택하여 쓴 〈화산수서 畵山水序〉·〈서화 敍畵〉는 중요한 화론서이다.
간쑤 성[甘肅省] 자위관[嘉關]에서 출토된 수백 점의 화상전(畵像)은 장원생활(莊園生活)의 각 방면에 대해 묘사하고 있으며, 한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어 생동감 있는 필치에 질박한 풍격을 구사하고 있다. 난징·단양(丹陽)의 남조 능묘에서 출토된 전화(畵) 〈죽림칠현화영계기 竹林七賢和榮啓期〉에는 필선이 힘차고 예리하며, 각기 다른 인물의 내재된 기질과 정신의 특징이 훌륭하게 표현되었다. 타이위안[太原]의 북제(北齊) 고분에 있는 대형 벽화는 북조 후기의 회화 기교의 발달 정도를 보여준다. 북조의 예술이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장면이 복잡하고 생동감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단서는 적지 않다. 그중 뤄양[洛陽]에서 출토된 닝위 석실[寧懋石室]과 효자관 석각(孝子棺石刻)이 가장 유명하다.
남북조시대는 회화사론 저작의 형성시기이다. 남제(南齊)의 사혁(謝赫)은 그의 화론서 〈화품 畵品〉에서 '6법'(六法) 이론을 제시하여 회화의 조건과 품평원칙을 내세웠다. 또한 〈화품〉은 28명의 화가를 각각 품을 나누어 평술하여 사(史)와 이론이 결합된 저술방식을 최초로 시작했기 때문에 중요한 이론과 사료적 가치가 있다. 북위의 손창지(孫暢之)가 쓴 〈술서 述書〉 역시 중요한 저작으로 손꼽힌다.
남북조시대는 불교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로 석굴사원은 대부분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간쑤 서부에는 둔황[敦煌]과 빙링 사[炳靈寺] 석굴 및 16국시대의 조상(造像)·벽화 들이 보존되어 있다. 북위 정권은 불교를 매우 중시했으며, 문성제(文成帝) 때에 윈강 석굴[雲崗石窟]을 팠는데 엄청나게 방대한 규모였다. 윈강 석굴 가운데 최초로 지어진 '담요(曇曜) 5굴'에 있는 주요조상들은 북위 초창기의 5대 황제들을 상징하는데, 이는 신권(神權)과 왕권의 일치를 구현한 것이다. 480년 이후 효문제(孝文帝)는 한화정책(漢化政策)을 실행하여 494년 뤄양으로 천도하여 룽먼 석굴[龍門石窟]을 건설했다. 빈양중 동(賓陽中洞)과 구양 동[古陽洞] 등이 이 시기 조상의 대표작들인데 불상들은 한족의 복식을 입고 있어 중국화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마이지산[麥積山]·궁셴[鞏縣]·샹탕산[響堂山] 등의 석굴에는 모두 매우 많은 동굴이 파여 있다. 각지에 산재해 있는 단독 석각조상과 금동불상 역시 정교하고 아름다우며 시대적 특징이 뚜렷하다.
진(晉)의 대규(戴逵)는 화가이자 출중한 조각가로, 특히 불상조각에 뛰어났다. 그는 와관 사의 조상과 고개지가 그린 〈유마힐상〉을 조각하여 명성을 얻었으며, 불교조각의 중국화 과정에 공헌했다. 그의 아들 대우(戴)는 매우 뛰어난 기술과 풍부한 경험으로 불상을 주조하여, 아버지와 함께 이름을 날렸다. 남조의 능묘 중 가장 탁월한 조각작품은 천록(天祿:고대 중국 전설상의 동물)·벽사(壁邪:상상의 동물)이다. 이러한 신수(神獸)는 몸체가 거대하고 수사자처럼 생겼으며, 겹날개가 달려 있다. 이처럼 과장된 형체의 특징으로 웅대한 기백을 표현한 이 작품들은 고대 대형 석각 작품 가운데 가장 특징적이고 뛰어난 작품이다. 위나라의 종요(鐘繇)는 해서(楷書)를 만들어냈고, 한대의 서법을 계승하여 변혁을 가미하기 시작했다. 동진(東晉) 때에는 서법이 여러 서체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장초(章草)·금초(今草)·행서(行書)의 각 서체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왕희지(王羲之)는 중국 최고의 서예가로, 초(草)·예(隸)·팔분(八分)·비백(飛白)·장(章)·행(行) 등 여러 서체에 모두 능하여 '서성'(書聖)이라고 일컬어진다. 그가 가장 잘 썼던 서체는 금초와 해서였으며, 이 두 서체가 결합된 새로운 서체를 개발했다. 동시에 그의 글씨 쓰는 법은 다채로웠으며, 표현력이 대단히 풍부했다. 그의 아들 왕헌지(王獻之) 역시 아버지의 서법예술을 계승했다. 2왕(二王)의 서법은 당대(唐代) 이래 모든 서법예술사에 대단히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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