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書畵 雲谷 姜張遠

 

 
작성일 : 04-06-02 11:56
보디달마(菩提達摩)와 禪宗
 글쓴이 : 홈쥔
조회 : 1,882  
禪宗과 菩提達摩 (선종과 보디달마)

글/ 雲谷 姜張遠

불교(佛敎)의 선사상(禪思想)은 세존의 제자 제 28대 조사(祖師)인 달마대사(達磨大師)에 의하여 중국에 전해지게 되었는데 동양회화(東洋繪畵)에 있어서 佛敎의 禪思想이 회화사상(繪畵思想)과 철학(哲學)으로 나타난 것을 繪畵史에서 많이 찾아 볼 수 있다.
세존당시(世尊當時) 마하가섭에게 세곳에서 마음을 전하시니(三處傳心) 선지(禪旨-禪宗/禪門)가 되고 49년간 설법하신 것은 말씀은 불경(佛經-敎宗/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禪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三處傳心이란 부처님께서 다자탑(多子塔) 앞에서 설법하실 때에 가섭존자가 뒤늦게 도착하자 수행승들이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으나 부처님께서 앉았던 자리를 나누어 앉게 하심이 첫째 <다자탑전 반분좌-多子塔前 半分座>요 최후에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실 때 범천왕이 축하하는 꽃다발을 드렸는데 부처님은 이를 받아 꽃을 들어 보이시나 수만 대중들은 뜻을 몰라 어리둥절하였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래 웃으므로 <바른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 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였는데 그꽃을 들어 보임이 둘째 <영산회상 염화미소-靈山會上 拈花微笑>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라쌍수(紗羅雙樹) 아래서 열반(涅槃)에 드시니 입관하여 모셨는데 먼곳에서 늦게 돌아온 가섭존자가 부처님 시신이라도 뵈오려고 관을 열려고 하였으나 수행승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관의 주위를 세번돌고 세번 절하였는데 관뚜껑이 열리며 두발을 내어 보이심이 셋째 <쌍림열반 곽시쌍부-雙林涅槃 槨示雙趺>이니 이른바 가섭존자에게 <三處傳心하여 傳佛心燈하였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마하가섭을 교단의 지도자로 지명하여 조사를 정한 것이니 법통의 상징인 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하였던 것이다.
이로써 교단을 이끄는 조사는 인도와 중국을 합해 33대 인데 1대에 마하가섭, 2대 아난존자, 3대 상나화수 등으로 法脈을 이어온 것이 28대 조사가 보리달마인 것이다보리달마(Bodhidharma ?~528)는 본명이 Bodhidhara 였으나 후에 고친 것으로 처음 한문으로 菩提達摩라하였으나 후세에 達磨로 고쳐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磨자의 뜻이 鍊磨한다는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 요즘에는 摩자와 혼용하고 있다.
달마대사는 원래 남인도 香至國 왕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당시 釋尊以後 27대 祖師 반야다라존자가 교단을 이끌고 있었는데 香至國 왕은 존자를 초청하여 장차 후계자를 정하기위하여 왕자들의 지혜를 시험해 보기를 간청하니 반야다라존자가 세 왕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첫째와 둘째는 <천하에 가장 귀한 것은 금은보화>라고 대답하였으나 셋째왕자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道“입니다- 천하의 어떤 진귀한 보석이나 보물일지라도 감히
”道“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대답하니 반야다라 존자가 묻기를
<그러면 무엇이 최고인가?>라고 하니
<사람이 최고(人本)입니다>존자가 또 묻기를
<천하에 무엇이 가장 큰가?>라고 불으니
<法性이 가장 큽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존자가 내심 크게 놀라
<어린 아이로서 어찌 저런 見地를 가졌을꼬? 나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뛰어난 불법을 전할 뚜렷한 지도자가 되겠구나.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불성을 지닌 부처의 자질이 충분하니 잘 가르쳐 후계자로 삼으리라>하여 왕자였던 달마를 출가토록하여 존자의 제자가 되었다.
반야다라존자가 교단의 지도자로 40년간의 조사로서의 생을 마감하여 입멸할 때까지 시봉하며 불법을 이어 받았던 것이다.
반야다라 존자가 입멸한뒤 본국에서 크게 교화하여 당시성행하던 소승선관의 6종을 굴복시킴에 달마조사의 이름이 인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부왕의 왕위를 계승한 그의 조카 이견왕을 교화하고 64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험난한 산을 넘고 거칠고 황량한 사막을 지나 널리 교화하면서 배를타고 梁나라 武帝 普通元年(520) 어느날 廣州 南海郡에 도착하였다.
달마대사는 역사가 오래고 문화가 깊은 중국에 小乘佛敎가 성행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大乘佛法으로 교화하리라 생각하고 그해 10월에 광주자사 소앙(廣州刺史 少昻)의 소개로 금릉(金陵)의 궁중에서 武帝를 만나보게 되었다.
당시 양무제 연간에 불교가 극성하여 무제는 전국 각지에 사묘를 건립하고 경을 가르치는 강단을 개설하여 불경을 번역하는등 승려를존경하면서 열광적으로 불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양 무제가 달마대사를 만나보니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초라한 걸승의 행색으로 그의 손에는 아무런 경도 가지지 않았는지라 달마대사를 비아냥거리는 말로
“내가 절을 건립하는 것과 대사께서 멀리 험한 사막과 바다를 건너온 것이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일언지하에
“무공덕! (無功德)-공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달마대사의 대답을 듣고 몹시 화가난 武帝는 마음이 불쾌하여 대사에게 다가와
“聖人이 없군요!- 알지도 못하는 주재에...!”라고 내뱉으며 진상(眞相)을 향하여 철채찍을 두 번 휘둘러 내리치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달마대사는 武帝가 사묘(寺廟)를 짓거나 승려에게 보시(布施)하여 예우(禮遇)하므로써 功德을 쌓고 天經이나 외우므로써 사후에 극락에 가려는 생각으로 미망(迷妄)에 사로잡힌 것을 깨우치기 위해 사자후를 토하여 일갈하여 불법의 진리를 깨우치려 했으나 敎化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양자강을 건너 위국(魏國)의 崇山 少林寺로 들어가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9년동안을 좌선(九年面壁坐禪)만하였다. 面壁 9년째 伊落에 살던 神光이라는 수행승이 達摩의 風性을 사모하여 찾아와 제자가 되기를 간청하였으나 達摩가 받아들이지 않자 동짓달 눈을 맞고 기다리다가 팔을 잘라 求道의 뜻을 표하여 간청하니 드디어 제자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慧可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法을 전하니 이분이 初祖 達摩祖師의 法統을 이어받아 中國禪宗의 二祖가 되었던 것이다.
< 본문에 대하여 다음도 정리하여 계속해서 게재할 예정입니다-筆者 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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