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書畵 雲谷 姜張遠

 

 
작성일 : 04-07-10 09:57
보리달마와 선종
 글쓴이 : 홈쥔
조회 : 1,576  

선묵화의 달마도의 이해를 위한
菩提達摩(보리달마)와 禪宗(선종)

글/ 雲谷 姜張遠


佛敎의 禪思想은 세존의 제자 제 28대조사인 달마대사에 의하여 중국에%3Cbr%3E전해지게 되었는데 東洋繪畵에 있어서 佛敎의 禪思想이 繪畵思想과%3Cbr%3E哲學으로 나타난 것을 繪畵史에서 많이 찾아볼수 있다.%3Cbr%3E
세존당시 마하가섭에게 세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三處傳心)은 禪旨가%3Cbr%3E되고, 49년간 설범하신 것은 敎門이 되었다. 그러므로 禪은 부처님의%3Cbr%3E마음이고 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3Cbr%3E
삼처전심(三處傳心)이란 부처님께서 다자탑 앞에서 설법하실때에 가섭%3Cbr%3E존자가 뒤늦게 도착하자 수행승들이 그를 못마당하게 생각했으나%3Cbr%3E부처님께서 앉았던 자리를 나누어 앉게 하심이 첫째요,%3Cbr%3E 최후에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실 때 범천왕이 축하하는 꽃다발을 드렸는데%3Cbr%3E부처님은 이를 받아 꽃을 들어 보이니 수만 대중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3Cbr%3E하는데 가섭존자만이 빙그레 웃으므로 <바른법, 열반의 묘한 마음을%3Cbr%3E가섭에게 전한다>고 선언하였는데 그 연꽃을 들어 보임이 둘째요,%3Cbr%3E사라 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시니 몸을 관에 모셔 두었는데 먼 곳에%3Cbr%3E갔다가 뒤늦게 돌아온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관을 세법 돌고 세 번 절하자%3Cbr%3E관속으로부터 두발을 내어 보이심이 셋째이니 이른바 가섭론자에게%3Cbr%3E三處傳心하여 傳佛心燈하였다고 하는 것이다.%3Cbr%3E
摩訶迦葉에게 교단의 지도자로 지명하여 祖師를 정한 것으로 법통의 상징인%3Cbr%3E부처님의 가사와 발우(衣鉢)를 전해 준 것이다.%3Cbr%3E
이와같이 祖師는 인도와 중국을 합해 33대인데 1代에 마하가섭 %3Cbr%3E2代 아난존자 3代 상나화수 등으로 법맥을 이어온 것이%3Cbr%3E28代 祖師가 菩提澾摩이다.%3Cbr%3E
菩提達摩 (Bodhidharma?∼528)는 본명이 Bodhidhara였으나 후에 %3Cbr%3EBodhidharma로 고쳐진 것이다.%3Cbr%3E처음 한문으로 音讀하여 菩提達摩라 하였으나 후세에 達磨로 고쳐 %3Cbr%3E사용하기도 하였는데 磨자의 뜻이 연마한다는 데에서 연유한 것으로%3Cbr%3E요즘에는 摩자와 혼용하고 있다.%3Cbr%3E
達摩大師는 원래 南印度 香至國 王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3Cbr%3E당시 釋尊以後 27代 祖師인 般若多羅尊者가 교단을 이끌고 있었는데%3Cbr%3E향지국왕은 존자를 초청하여 장차 후계자로서의 왕자들의 지혜를 %3Cbr%3E시험해 보기를 간청하였다.%3Cbr%3E반야다라존자가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는데%3Cbr%3E첫째와 둘째는 천하에 가장 귀한 것은 금은보화라고 대답하였으나%3Cbr%3E셋째 왕자는 <세상에 제일 귀한 것은 道>라고 대답하였다.%3Cbr%3E덧붙여 <천하의 어떤 진귀한 보석이나 보물일 지라도 감시 道와%3Cbr%3E비교할 수 있으며 바꿀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하니%3Cbr%3E반야다라존자가 묻기를%3Cbr%3E
<그러면 무엇이 最高인가?> 하니%3Cbr%3E
<사람이 最高입니다>%3Cbr%3E
존자가 또 묻기를%3Cbr%3E
<천하에 무엇이 가장 큰가?>하니 %3Cbr%3E
<法性이 가장 큽니다>라고 대답하였다.%3Cbr%3E
尊者가 내심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3Cbr%3E<어린아이로서 어찌 저런 見地를 가졌을꼬! %3Cbr%3E나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뛰어난 불법을 전할 뚜렷한 지도자가 되겠구나.%3Cbr%3E天上天下 唯我獨尊의 佛性을 갖춘 부처의 資質이 충분하니 잘 가르쳐%3Cbr%3E후계자로 삼으리라>고 하여 왕자였던 달마는 출가하여 반야다라존자의%3Cbr%3E제자가 되어 40년간 반야다라존자가 入滅할때까지 시봉하며%3Cbr%3E 佛法을 이어 받았다.%3Cbr%3E
반야다라 존자가 入滅한뒤 본국에서 크게 敎化하여 당시 성행하던 小乘%3Cbr%3E禪觀의 6宗을 굴복시킴에 달마의 이름이 인도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3Cbr%3E
그는 왕위를 계승한 그의 조카 이견왕을 교화하고 64세의 고령에도 %3Cbr%3E불구하고 험난한 산을 넘고 거칠고 황량한 길을 걸어 널리 교화하기 3년%3Cbr%3E만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梁나라 武帝普通元年(520)년 9월 어느날 광주%3Cbr%3E남해군에 도착했던 것이다.%3Cbr%3E
達摩大師는 역사가 오래고 문화가 깊은 중국에 小乘 舊敎가 성행하는%3Cbr%3E것을 보고 大乘佛法으로 敎化하리라 생각하고 그해 10월에 광주자사%3Cbr%3E소앙의 소개로 金陵의 宮中에서 武帝를 만나보게 되었다. 당시 梁 武帝국%3Cbr%3E연간에 佛敎가 極盛하여 武帝는 전국각지에 寺廟를 건립하고 經을%3Cbr%3E가르치는 講壇을 開設하여 佛書를 번역하는등 僧侶를 존경하면서%3Cbr%3E열광적으로 佛敎를 信奉하였다.%3Cbr%3E
梁 武帝가 達摩大師를 만나보니 맨발에 누더기를 걸친 초라한 걸승의 %3Cbr%3E행색으로 그의 손에는 아무런 經도 가지지 않았는지라 달마대사에게%3Cbr%3E비아냥거리는 말투로 %3Cbr%3E
<내가 절을 건립하는 것과 大師께서 멀리 험한 바다를 건너온 것이 어떤%3Cbr%3E功德이 있습니까?>하고 물으니%3Cbr%3E<功德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3Cbr%3E
達摩大師의 대답을 듣고 武帝는 마음이 불쾌하여 大師에게 다가와 %3Cbr%3E<聖人이 없군요>또 <알지도 못하면서...>하고는 화가 난 武帝는 眞像을 %3Cbr%3E향하여 철째찍을 두 번 휘둘러 내리치고는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3Cbr%3E
達摩大師는 武帝가 寺廟를 짓거나 僧侶에게 布施하여 예우하므로써 %3Cbr%3E功德을 쌓고 天經이나 외우므로써 死後에 極樂에 가려는 생각으로%3Cbr%3E迷妄에 사로잡힌 것을 깨우치기 위하여 일갈하여 佛法의 진리를%3Cbr%3E 깨우치려 했지만 敎化하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자 楊子江을 건너%3Cbr%3E魏國의 崇山 小林寺로 들어가 머물면서 때가 오기를 기다리며 매일%3Cbr%3E 벽을 향하여 坐禪만 하였다.%3Cbr%3E
面壁九年-伊落에 살던 神光이 達摩의 風成을 사모하고 찾아와 제자가 %3Cbr%3E되기를 청하였으나 達摩가 받아들이지 않자 밤새도록 눈을 맞고%3Cbr%3E 섰다가 팔을 끊어 求道의 뜻을 표하므로 드디어 제자로 받아 들였다.%3Cbr%3E
그리고 慧可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法을 전하니 이분이 初祖 達摩大師%3Cbr%3E의 法統을 이어받은 中國 禪宗의 2祖가 되었던 것이다.%3Cbr%3E
효명제가 달마의 異蹟을 듣고 크게 敬仰하여 摩衲衣袈裟 2벌, 金鉢,%3Cbr%3E 銀甁, 비단 등을 바치니 慧可에게 깊고 미묘한 宗趣와 袈裟,%3Cbr%3E발우, 릉가경을 전하고 禹門의 천성사로 갔다가 연안1년(528) 10월 5일에%3Cbr%3E涅槃에 들었다.%3Cbr%3E
이후 禪宗의 宗風이 크게 흥성하여 2祖 慧可에 이어 3祖 僧璨 4祖 道信%3Cbr%3E5祖 弘忍, 6祖 慧能으로 이어지는데 6조 혜능대사의 밑에서, 임제종,%3Cbr%3E 조동종, 운문종, 위앙종, 법안종 등으로 다섯 갈래의 종파가 크게 번성%3Cbr%3E하였다.%3Cbr%3E
6祖 慧能대사의 俗姓은 盧씨, 지금의 廣東省 肇慶府 新興에서 났다. %3Cbr%3E세 살 때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하여 공부하지 못했으며 날마다 %3Cbr%3E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3Cbr%3E
스물네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스님이 <금강경>읽는 소리를 듣고%3Cbr%3E그 경중의-凡所有相 皆是盧妄 若見 諸相非相 卽見如來-라는 대목에서%3Cbr%3E 마음에 열린 바가 있었다.%3Cbr%3E
그 스님에게 물어서 양자강을 건너 廣州府 黃梅山에 가서 5祖 弘忍대사%3Cbr%3E를 뵙고 그의 시키는 대로 여덟 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3Cbr%3E
5祖 스님이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할 때 敎授師인 神秀는%3Cbr%3E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3Cbr%3E<몸은 보리의 나무, 마음은 밝은 거울,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묻지 않도록>%3Cbr%3E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式 勿使若塵矣).%3Cbr%3E
이 글을 본 盧 행자는%3Cbr%3E
<보리에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니라, 본래 한 %3Cbr%3E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이 묻을까.>%3Cbr%3E
(菩提本無樹 明鏡亦非台 本來無一物 何處若塵矣)라고 지었다.%3Cbr%3E
5祖 弘忍대사는그를 印可하고 부처님의 법통을 표시하는 가사와 발우를%3Cbr%3E 전해 주었다.%3Cbr%3E
그는 시기하는 무리를 피해 남쪽으로 돌아가 18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3Cbr%3E 비로소 戒를 받고 중이 되었다.%3Cbr%3E
韶陽의 曹溪山에서 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3Cbr%3E40여명이나 되었다.%3Cbr%3E
唐나라 玄宗 開元1년 76세로 입적하였다.%3Cbr%3E
우리나라에서는 신라(新羅)때 義相*元曉大師를 비롯하여 고려(高麗)%3Cbr%3E시대의 고승(高僧)과 국사(國師)등이 선학(禪學)을 깊이 연구하여%3Cbr%3E법통(法統)을 잇고 있다.%3Cbr%3E
그러나 고려말에서 조선조(朝鮮朝)에 이르러 숭유척불(崇儒拓佛)의%3Cbr%3E정치이념으로 말미암아 불교는 산속에 은거하는 山中佛敎가 되었고%3Cbr%3E 선학(禪學)은 심산의 고승들이 자연과 상합하여 면면히 이어오게 되었다.%3Cbr%3E
淸虛-休靜대사때에 禪宗이 중흥하여%3Cbr%3E鞭羊-彦機-楓潭-義諶-月潭-雪霽-唯性-志安-涵月-海源까지는%3Cbr%3E禪敎가 근근히 유지되었으나 조선조(朝鮮朝)말기에 이르러서는%3Cbr%3E염불종(念佛宗)만 있을 뿐 선종(禪宗)은 없었는데 憲宗때의 鏡虛禪師에%3Cbr%3E이르러 드디어 선종이 중흥되고 滿空⋅漢岩과 같은 후학승을 배출하여%3Cbr%3E禪宗이 다시 再燃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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