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書畵 雲谷 姜張遠

 

 
작성일 : 10-12-28 20:58
춘향전-완판본
 글쓴이 : 운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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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판본 열녀 춘향 수절가』 -작자 미상-



숙종대왕 즉위 초에 성덕(임금의 덕)이 넓으시사 성자성손(성과 덕을 갖춘 임금의 어진 자손)은 계계승승하사 금고(군중에서 치는 쇠붙이와 북) 옥적(옥으로 만든 피리)은 요순 시절이요 의관 문물(그 나라 사람들의 옷차림새 및 인문 방면과 물질 방면의 모든 사항)은 우탕(중국 고대의 성군으로 우왕과 탕왕)의 버금이라. 좌우보필은 주석지신(나라에 아주 중요한 신하를 기둥과 주춧돌에 비유해서 이르는 말)이요 용양호위(용처럼 뛰어오르고 호랑이처럼 지킴)는 간성지장(국가를 위하여 방패가 되고 성이 되어 외적을 막는 장수)이라. 조정에 흐르는 덕화, 향곡(시골 구석)에 퍼졌으니 사해 굳은 기운이 원근에 어려 있다. 충신은 만조(조정에 가득 참)하고 효자 열녀 가가재(집집마다 있음)라. 미재미재(아름답고 아름답도다)라 우순풍조(비와 바람이 때를 어기지 아니하고 순조로움)하니 함포고복(배불리 먹고 배를 두드리며 즐겁게 지냄) 백성들은 처처에 격양가(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읊은 노래)라.

이 때 전라도 남원부에 월매라 하는 기생이 있으되 삼남(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의 총칭)의 명기(가무에 능하고 용모가 뛰어난 이름난 기생)로서 일찍이 퇴기(기생의 자리를 물러남)하여 성가(成哥)라 하는 양반을 데리고 세월을 보내되 연장사순(나이가 장차 마흔 살이 됨)을 당하여 일점 혈육이 없어 일로 한이 되어 장탄수심에 병이 되겠구나. 일일은 크게 깨쳐 옛사람을 생각하고 가군(남편)을 청입(들어오기를 청함)하여 여쭈오되 공순히 하는 말이,

"들으시오. 전생에 무슨 은혜 끼쳤던지 이생에 부부 되어 창기 행실 다 버리고 예모(예절을 지키는 모양)도 숭상하고 여공(여자들이 하는 길쌈질 따위)도 힘썼건만 무슨 죄가 진중하여 일점 혈육이 없으니 육친무족(가까운 피붙이가 하나도 없음) 우리 신세 선영향화(조상의 제사를 받듦) 누가 하며 사후감장(죽은 뒤 자손들이 장사를 치름) 어이 하리. 명산대찰에 신공(신에게 드리는 공덕)이나 하여 남녀간 낳게 되면 평생 한을 풀 것이니 가군의 뜻이 어떠하오?"

성참판 하는 말이,

"일생 신세 생각하면 자네 말이 당연하나 빌어서 자식을 낳을진대 무자(無子)할 사람이 있으리오."

하니 월매 대답하되,

"천하대성(天下大聖) 공부자(공자의 높임말)도 이구산에 빌으시고 정나라(춘추전국시대의 한 나라) 정자산(춘추시대 정나라의 재상 곤손교)은 우형산에 빌어 나계시고, 아동방(우리나라를 일컬음) 강산을 이를진대 명산대천이 없을소냐. 경상도 웅천 주천의는 늦도록 자녀 없어 최고봉에 빌었더니 대명천자 나계시사 대명천지 밝았으니 우리도 정성이라 드려 보사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 꺾일소냐. 이 날부터 목욕재계 정히 하고 명산승지 찾아갈 제 오작교(광한루 안에 있는 조그만 다리) 썩 나서서 좌우산천 둘러 보니 서북의 교룡산(남원에 있는 산)은 술해방(서북쪽)을 막아 있고 동으로는 장림(길게 이어 있는 숲) 수풀 깊은 곳에 선원사는 은은히 보이고 남으로는 지리산이 웅장한데 그 가운데 요천수는 일대 장강벽파(긴 강의 푸른 물결)되어 동남으로 둘렀으니 별유건곤(신선들이 산다는 세계) 여기로다. 청림(靑林)을 더위잡고(높은 데로 올라가려고 무엇을 끌어 잡다) 산수를 밟아 들어가니 지리산이 여기로다. 반야봉 올라 서서 사면을 둘러보니 명산대천 완연하다. 상봉에 단을 모야 제물을 진설하고(음식을 상에 차리어 놓음), 단하에 복지(땅에 엎드림)하여 천신만고 빌었더니 산신님의 덕이신 지 이 때는 오월 오일 갑자라. 한 꿈을 얻으니 서기(상서러운 기운) 반공(공중에 서려 있음)하고, 오채(다섯 가지의 채색) 영롱하더니 일위 선녀(한 사람의 선녀) 청학을 타고 오는데 머리에 화관이요 몸에는 채의(彩衣)로다. 월패(가슴이나 허리에 차는 패옥의 한 가지) 소리 쟁쟁하고 손에는 계화일지(계수나무 꽃 한 가지)를 들고 당에 오르며 거수장읍(두 손을 잡아 높이 들고 허리를 굽히는 예)하고 공순히 여쭈오되,

"낙포(낙신, 낙수의 귀신으로 복희씨의 딸 복비가 낙수에 빠져 죽은 넋이라 함.)의 딸이더니 반도(선경에 있다는 큰 복숭아) 진상 옥경(옥황상제가 산다고 하는 가상의 서울) 갔다 광한전(달의 궁전)에서 적송자(고대의 신선 이름) 만나 미진정회(정회를 다 풀지 못함) 하던 차에 시만(시간이 지체되어 늦어짐) 함이 죄가 되어 상제 대로하사 진토(인간 세상)에 내치시매 갈 바를 모르더니 두류산(지리산) 신령께서 부인 댁으로 지시하기로 왔사오니 어여비 여기소서."

하며 품으로 달려들 새 학지고성은 장경고(학의 울음소리가 높은 것은 목이 길기 때문임)라. 학의 소리에 놀라 깨니 남가일몽이라. 황홀한 정신을 진정하여 가군과 몽사를 설화(이야기를 나눔)하고 천행으로 남자를 낳을까 기다리더니 과연 그 달부터 태기 있어 십삭(열 달)이 당하매 일일은 향기 만실(방에 가득참)하고 채운이 영롱하더니 혼미 중에 생산하니 일개 옥녀(玉女)를 낳았으니 월매의 일구월심(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짐) 바라던 마음 남자는 못 낳았으되 잠깐동안 풀리는구나. 그 사랑함은 어찌 다 형언하리. 이름은 춘향이라 부르면서 장중보옥(손 안의 귀한 보물)같이 길러내니 효행이 무쌍이요 인자함이 기린이라. 칠팔 세 되매 서책에 착미(맛을 붙임, 취미를 붙임)하여 예모 정절을 일삼으니 효행을 일읍(온 읍, 즉 온 마을)이 칭송치 아니할 이 없더라.

이 때 삼청동 이한림(이씨 성을 가진 한림. 한림은 예문관의 정구품 벼슬)이라 하는 양반이 있으되 세대명가(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가)요 충신의 후예라. 일일은 전하께오서 충효록을 올려 보시고 충효자를 택출(가리어 뽑음)하사 자목지관(백성을 사랑하여 다스리는 지방의 원이나 수령) 임용하실 새 이한림으로 과천 현감(작은 현의 원)에 금산 군수 이배(벼슬아치가 전근 명령을 받음)하여 남원 부사 제수하시니 이한림이 사은숙배(임금의 은혜를 사례하여 공손하게 절함) 하직하고 치행(행장을 차림)차려 남원부에 도임하여 선치민정(善治民情)하니 사방에 일이 없고 방곡의 백성들은 더디 옴을 칭송한다. 강구연월문동요(태평한 시대에 아이들의 노래소리가 들림)라. 시화연풍(나라가 태평하고 해마다 곡식이 잘됨)하고 백성이 효도하니 요순시절이라.

이 때는 어느 때뇨. 놀기 좋은 삼촌(봄의 석달)이라. 호연(명매기과에 딸린 새) 비조(자주호반새) 뭇 새들은 농초화답(풀을 희롱하며 소리로써 서로 응답함) 짝을 지어 쌍거쌍래 날아들어 온갖 춘정 다투는데 남산화발북산홍(남쪽 산에 꽃이 피니 북쪽 산도 붉어진다)과 천사만사수양지(천 갈래 만 갈래의 버드나무 가지)에 황금조(노랑딱새)는 벗 부른다. 나무 나무 성림(숲을 이룸)하고 두견 접동 다 지나니 일년지가절이라.

이 때 사또 자제 이도령이 연광(나이)은 이팔이요 풍채는 두목지(당나라 시인 두목)라. 도량은 창해 같고 지혜 활달하고 문장은 이백이요 필법은 왕희지라. 일일은 방자 불러 말씀하되,

"이 골 경처(아름다운 경치를 이룬 곳) 어디메냐? 시흥춘흥(詩興春興) 도도하니 절승경처 말하여라."

방자놈 여쭈오되

"글 공부 하시는 도련님이 경처 찾아 부질없소."

이도령 이르는 말이

" 너 무식한 말이로다. 자고로 문장재사(文章才士)도 절승강산 구경하기는 풍월작문 근본이라. 신선도 두루 놀아 박람(博覽)하니 어이하여 부당하랴. 사마장경(사마상여로 전한시대의 문인)이 남으로 강호에 떠 있다 대강(大江)을 거스를 제 광랑성파(미친 듯이 거센 물결과 파도)에 음풍(음랭한 겨울 바람)이 노호(성내어 부르짖음)하여, 예로부터 가르치니 천지간 만물지변이 놀랍고 즐겁고도 고운 것이 글 아닌 게 없느니라. 시중천자(시로써는 천자라고 할 만함) 이태백은 채석강에서 놀았었고, 적벽강 추야월에 소동파(소식) 놀았었고, 심양강 명월에 백낙천(당나라 때 시인인 백거이) 놀았었고, 보은 속리 문장대에 세조대왕 놀으셨으니, 아니 놀든 못하리라."

이 때 방자 도련님 뜻을 받아 사방 경개 말씀하되,

"서울로 이를진대 자문(자하문의 준말로, 북악과 인왕의 사이에 있는 성문) 밖 칠성암 청련암 세검정과 평양 연광정 대동루 모란봉, 양양 낙선대, 보은 속리 문장 안의 수승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가 어떠한지 모르오나, 전라도로 이를진대 태인 피향정 무주 한풍루 전주 한벽루 좋사오나, 남원 경처 들어보시오. 동문 밖 나가시면 장림 숲 선원사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시면 관왕묘(관우의 영정을 모신 사당)는 천고 영웅 엄한 위풍 어제 오늘 같사옵고, 남문 밖 나가시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광한루 옆에 있는 누각) 좋사옵고, 북문 밖 나가시면 청천삭출(푸른 하늘에 깎은 듯이 돌출해 있음) 금부용(햇빛에 비치는 수려한 고산) 기벽하여(남에게 굽히지 않으려는 성질) 우뚝 섰으니 기암 둥실 교룡산성(남원 서쪽 7리밖에 있는 산) 좋사오니 처분대로 가사이다."

도련님 이르는 말씀이

"이 애, 말로 들어보더라도 광한루 오작교가 경개로다. 구경가자."

도련님 거동 보소. 사또전 들어가서 공순히 여쭈오되,

"금일 일기 화난(날씨가 화창하고 따뜻함)하오니 잠깐 나가 풍월음영 시 운목(같은 운자를 끝 자로 해서 한두 자 혹은 석 자로 된 어구)도 생각하고자 싶으오니 순성(성을 한 바퀴 돌아 봄)이나 하여이다."

사또 대희하여 허락하시고 말씀하시되

"남주 풍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되 시제(詩題)를 생각하라."

도령 대답

"부교(父敎)대로 하오리다.

물러나와

"방자야, 나귀 안장 지워라."

방자 분부 듣고 나귀 안장 지운다. 나귀 안장 지울 제 홍영(붉은 색의 가슴걸이) 자공(자주 빛깔의 재갈) 산호편(산호로 만든 좋은 채찍) 옥안(좋은 안장) 금천(비단으로 만든 언치) 황금록(황금으로 만든 좋은 굴레) 청홍사 고운 굴레 주락상모(벼슬아치가 타던 말 머리의 꾸밈새) 더뻑(헤아리지 않고 경솔히 덮치 듯이 행동하는 모양) 달아 층층 다래(말의 배 양 쪽에 달아서 튀는 흙을 막는 제구) 은엽등자(은엽으로 만든 등자(말을 탔을 때 두 발로 디디는 제구)) 호피도담(호랑이 가죽으로 만든 안장)에 전후걸이 줄방울을 염불법사 염주 매달 듯

"나귀 등대하였소."

도련님 거동 보소. 옥안선풍(玉顔仙風) 고운 얼굴 전반같은(땋아 늘인 머리채가 숱이 많고 치렁치렁함을 말함) 채머리 곱게 빗어 밀기름에 잠재워 궁초댕기(궁초(비단)로 만든 댕기) 석황(천연으로 나는 비소의 화합물) 물려 맵시 있게 잡아 땋고 성천수주(성천지방에서 나는 수화주(좋은 비단)) 접동베 세백저(올이 가는 흰 모시) 상침(옷의 가장자리를 실밥이 드러나 보이게 꿰메는 것을 말함) 바지 극상 세목(최고로 좋은 올이 가는 무명) 겹버선에 남갑사(남빛 갑사) 대님 치고 육사단(비단 이름) 겹배자(소매가 없는 덧저고리) 밀화(밀과 비슷한 빛깔의 누른 호박의 한 가지) 단추 달아 입고 통행전(아래에 귀가 달리지 않은 예사 행전. 행전은 바지, 고의를 입을 때 정강이에 감아 무릎 아래에 매는 물건)을 무릎 아래 넌지시 매고 영초단(중국에서 나는 비단의 한 가지) 허리띠 모초단(날은 가늘고 씨는 굵은 올로 짠 비단의 한 가지) 도리낭을 당팔사(중국에서 생산된 여덟 가닥으로 드리운 끈) 갖은 매듭 고를 내어 넌지시 매고 쌍문초(중국에서 나는 비단의 한 가지) 긴 동정 중치막(소매가 넓고 길며 옆이 터지고 네 폭으로 된, 옛날 남자가 입던 웃옷의 한 가지)에 도포 받쳐 흑사(黑絲) 띠를 흉중에 눌러 매고 육분 당혜(앞뒤에 고추 모양을 그린 가죽신의 한 가지) 끌면서

"나귀를 붙들어라."

등자 딛고 선뜻 올라 뒤를 싸고 나오실 제 통인(지방관청에 딸려 잔심부름을 하던 사람) 하나 뒤를 따라 삼문 밖 나올 적에 쇠금부채(금물을 입힌 부채) 호당선(중국에서 나는 부채)으로 일광을 가리우고 관도 성남 넓은 길에 생기 있게 나갈 제 취래양주(두목이 술에 취해서 수레를 타고 양주를 지나매 그의 풍채를 연모하던 기생들이 귤을 던져 수레에 가득 차게 되었다는 이야기)하던 두목지의 풍챌런가. 시시오불(주유의 돌아봄을 얻기 위하여 일부러 곡조를 잘못 연주함)하던 주랑(주유)의 고음(음을 돌아봄)이라. 향가자맥춘성내요 만성군자수불애라(향기로운 읍내의 거리 봄성 안에 있으니, 뭇 백성과 군자 누군들 사랑하지 않겠는가). 광한루 섭적 올라 사면을 살펴보니 경개가 장히 좋다. 적성(순창 지방에 있는 적성산) 아침 늦은 안개 떠 있고 녹수(綠樹)에 저문 봄은 화류동풍(花柳東風) 둘러 있다. 자각단루분조요요 벽방금전상영롱(온갖 붉은 누각들은 어지럽게 빛나고 푸른 가옥과 비단 궁전은 서로 찬란하게 빛난다)은 임고대(높은 누대에 임해 있음)를 이르는 것이고 요헌기구하처요(아름다운 처마와 서까래가 먼 데서도 빛남)는 광한루를 이르는 것이라. 악양루 고소대(오나라의 서울에 있는 대)와 오초(오나라와 초나라의 지역) 동남수(東南水)는 동정호로 흐르고 연자(누대 이름) 서북의 패택(풀이 우거진 얕은 못)이 완연한데 또 한 곳 바라보니 백백홍홍(흰 꽃과 붉은 꽃) 난만 중에 앵무 공작 날아들고 산천 경개 둘러보니 에굽은 반송솔(소나무 이름) 떡갈잎은 아주 춘풍 못 이기어 흐늘흐늘 폭포 유수 시냇가의 계변화(시냇가에 피는 꽃)는 뻥긋뻥긋 낙락장송 울울하고 녹음방초승화시(녹음과 향기로운 풀이 꽃보다 나을 때)라. 계수(桂樹) 자단(紫壇) 모란 벽도(碧桃)에 취한 산색 장강(長江) 요천(남원에 있는 강 이름)에 풍덩실 잠겨 있고 또 한 곳 바라보니 어떠한 일 미인이 봉새 울음 한가지로 온갖 춘정(春情) 못 이기어 두견화 질끈 꺾어 머리에도 꽂아 보며 함박꽃도 질끈 꺾어 입에 함쑥 물어 보고 옥수나삼(곱게 수놓은 비단 적삼) 반만 걷고 청산유수 맑은 물에 손도 씻고 발도 씻고 물 머금어 양수(양치질)하며 조약돌 덥석 쥐어 버들까지 꾀꼬리를 희롱하니 타기황앵(꾀꼬리를 돌려 쳐서 날아가게 함)이 아니냐. 버들잎도 죽죽 훑어 물에 훨훨 띄워 보 고 백설같은 흰나비 웅봉자접(수펄과 암나비)은 화수(꽃술) 물고 너울너울 춤을 춘다. 황금같은 꾀꼬리는 숲숲이 날아든다. 광한 진경 좋거니와 오작교가 더욱 좋다. 방가위지(바야흐로 이를 만함) 호남의 제일성이로다. 오작교 분명하면 견우직녀 어디 있나. 이런 승지에 풍월이 없을소냐. 도련님이 글 두 귀를 지었으되,

"고명오작선(高明烏鵲船)이요 광한옥계루(廣寒玉階樓)라. : 높고 밝은 오작의 배에 광한루 옥섬돌

차문천상수직녀(借問天上誰織女)요 지홍금일아견우(至興今日我牽牛)라." : 감히 묻노니 하늘의 직녀 누구인가 지극히 흥겨운 오늘 내가 바로 견우일세.

이 때 내아(지방 관청의 안채)에서 잡술상이 나오거늘 일배주 먹은 후에 통인 방자 물려주고 취흥이 도도하여 담배 피워 입에다 물고 이리저리 거닐 제 경처(景處)의 흥에 겨워 충청도 고마 수영 보련암을 일렀은들 이 곳 경처 당할 소냐. 붉을 단(丹) 푸를 청(靑) 흰 백(白) 붉을 홍(紅) 고을고을이 단청 유막 황앵환우성(버들 장막에서 꾀꼬리가 벗을 부르는 소리)은 나의 춘흥 도와 낸다. 황봉백접(노랑 벌과 흰 나비) 왕나비는 향기 찾는 거동이라. 비거비래춘성내(날아가고 날아오니 봄성의 안이요)요 영주 방장 봉래산이 안하(眼下)에 가까우니 물은 보니 은하수요 경개는 잠깐 옥경이라. 옥경이 분명하면 월궁(月宮) 항아(남편이 비장한 불사약을 훔쳐 가지고 달로 달아났다는 예의 아내) 없을소냐.

이 때는 삼월이라. 일렀으되 오월 단오일이렷다. 천중지가절(단오)이라. 이때 월매 딸 춘향이도 또한 시서음율(詩書音律)이 능통하니 천중절을 모를 소냐. 추천(그네뛰기)을 하려고 향단이 앞세우고 내려올 제 난초같이 고운 머리 두 귀를 눌러 곱게 땋아 금봉채(금으로 봉황을 새긴 비녀)을 정제하고 나군(엷은 비단 치마)을 두른 허리 미양의 가는 버들 힘이 없이 드리운 듯 아름답고 고운 태도 아장 걸어 흐늘 걸어 가만가만 나올 적에 장림 속으로 들어가니 녹음방초 우거져 금잔디 좌르륵 깔린 곳에 황금같은 꾀꼬리는 쌍거쌍래 날아들제 무성한 버들 백척장고(백자나 되는 높은 곳) 높이 매고 추천을 하려 할 제 수화유문(수화주에 무늬가 있는 비단) 초록 장옷(부녀자가 나들이할 때에 머리에 써서 온 몸을 가리던 옷) 남방사(남빛 누에고치의 실을 켜서 짠 명주) 홑치마 훨훨 벗어 걸어두고 자주영초(자주빛의 영초단) 수당혜(아름답게 수놓은 당혜)를 썩썩 벗어 던져두고 백방사 진솔속곳(새 속곳) 턱 밑에 훨씬 추켜올리고 연숙마(잿물에 담갔다가 솥에 찐, 삼껍질) 추천줄을 섬섬옥수 넌지시 들어 양수(兩手)에 갈라 잡고 백릉(흰색 비단) 버선 두 발길로 섭적 올라 발구를 제 세류(가지가 가는 버드나무)같은 고운 몸을 단정히 놀리는데 뒤 단장 옥비녀 은죽절(대마디 모양으로 만들어 여자의 쪽에 꽂는 은장식품)과 앞치레 볼 것 같으면 밀화장도(밀화로 만든 장도, 즉 평복에 차는 작은 칼) 옥장도며 광원사(윤기나는 가공하지 않은 실) 겹저고리 제색 고름에 태가 난다.

"향단아 밀어라."

한 번 굴러 힘을 주며 두 번 굴러 힘을 주니 발 밑에 가는 티끌 바람 좇아 펄펄 앞 뒤 점점 멀어가니 머리 위의 나뭇잎은 몸을 따라 흔들흔들 오고갈 제 살펴보니 녹음 속의 홍상자락이 바람결에 내비치니 구만장천백운간(한없이 높고 넓은 하늘에 떠 있는 흰구름 사이)에 번갯불이 쏘는 듯 첨지재전홀언후(바라보니 앞에 있다가 갑자기 뒤에 가 있다는 뜻)라. 앞으로 얼른 하는 양은 가벼운 저 제비가 도화 일점 떨어질 제 찾으려 하고 좇는 듯 뒤로 번 듯 하는 양은 광풍에 놀란 호접(나비) 짝을 잃고 가다가 돌이키는 듯 무산선녀(무산지몽의 고사와 관련됨) 구름 타고 양대(陽臺) 상(上)에 내리는 듯 나뭇잎도 물어보고 꽃도 질끈 꺾어 머리에다 실근실근

"이 애 향단아. 그네 바람이 독하기로 정신이 어찔하냐. 그네줄 붙들어라."

붙들려고 무수히 진퇴(進退)하며 한창 이리 노닐 적에 시냇가 반석 상(上)에 옥비녀 떨어져 쟁쟁하고 비녀비녀 하는 소리 산호채(산호로 만든 비녀)를 들어 옥반(옥으로 만든 쟁반)을 깨뜨리는 듯 그 형용은 세상 인물 아니로다.

연자삼춘비거래(제비는 봄 내내 날아 다닌다)라. 이도령 마음이 울적하고 정신이 어찔하여 별 생각이 다 나것다. 혼잣말로 섬어(헛소리)하되, 오호(호주 동편에 있는 호수를 말함)에 편주(작은 배) 타고 범소백(범여를 말함)을 좇았으니 서시(오나라 임금 부차의 총희였던 월나라의 미인. 월나라가 부차에게 원수를 갚고 범여가 서시와 함께 편주를 타고 오호로 뜬 고사)도 올 리 없고 해성(한나라 유방과 항적이 싸우던 곳. 해하에 있는 섬) 월야에 옥장비가(장수가 거처하는 장막에서 부른 슬픈 노래)로 초패왕을 이별하던 우미인도 올 리 없고 단봉궐(천자의 대궐) 하직하고 백룡퇴(왕소군이 시집간 곳) 간 연후에 독류청총(홀로 푸른 무덤에 머무름)하였으니 왕소군(전한 효원제의 궁녀로 이름은 장.)도 올 리 없고 장신궁(궁전의 이름으로 한의 태후가 거처하던 곳) 깊이 닫고 백두음(악부의 곡 이름)을 읊었으니 반첩여(한 대의 여류시인)도 올 리 없고 소양궁(한나라의 성제가 세운 궁전) 아침날에 시측(측간 즉 변소에 모시고 감)하고 돌아오니 조비연(한나라 성제의 황후. 태생이 미천하나 가무에 뛰어난 절세의 미인으로서 여동생 합덕과 후궁이 되어 임금의 총애를 서로 다투었음)도 올 리 없고 낙포선녀인가 무산선녀인가. 도련님 혼비중천(혼이 중천에 날아다님)하여 일신이 고단이라. 진실로 미혼지인(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라.

"통인아"

"예."

"저 건너 화류(花柳) 중에 오락가락 희뜩희뜩 어른어른 하는 게 무엇인지 자세히 보아라."

통인이 살펴보고 여쭈오되

"다른 무엇 아니오라 이 고을 기생 월매 딸 춘향이란 계집아이로소이다."

도련님이 엉겁결에 하는 말이

"장히 좋다. 훌륭하다."

통인이 알외되,

"제 어미는 기생이오나 춘향이는 도도하여 기생 구실 마다하고 백화초엽(온갖 종류의 꽃과 풀잎)에 글자도 생각하고 여공재질(바느질이나 길쌈 등 여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술)이며 문장을 겸전(여러가지를 다 갖추어 완전함)하여 여염처자와 다름이 없나이다."

도령 허허 웃고 방자를 불러 분부하되,

"들은 즉 기생의 딸이라니 급히 가 불러오라."

방자놈 여쭈오되

"설부화용(눈처럼 흰 살갗과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남방(南方)에 유명키로 방(관찰사) 첨사(무관직) 병부사 군수 현감 관장님네 엄지발가락이 두 뼘 가웃씩 되는 양반 오입장이들도 무수히 보려 하되 장강(춘추시대 위장공의 부인)의 색과 임사(주나라의 태임과 태사)의 덕행이며, 이두(이백과 두보)의 문필이며 태사의 화순심(和順心)과 이비(우순의 두 비인 아황과 여영)의 정절을 품었으니 금천하지절색(오늘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인)이요 만고여중군자(덕이 높은 여자)오니 황공하온 말씀으로 초래(불러 옴)하기 어렵나이다. "

도령 대소(大笑)하고

"방자야, 네가 물각유주(물건마다 각기 임자가 있음)를 모르는도다. 형산백옥(형산에서 나는 백옥)과 여수황금이 임자 각각 있느니라. 잔말 말고 불러오라."

방자 분부 듣고 춘향 초래 건너갈 제 맵시있는 방자 녀석 서왕모(여자 신선 이름) 요지연(요지에서 벌이던 잔치. 요지는 주나라 목왕이 서왕모와 만났다는 선경)에 편지 전하던 청조(파랑새. 동방삭이 푸른 새가 온 것을 보고 서왕모의 사자라고 한 고사에서 사자 혹은 편지를 일컬음) 같이 이리저리 건너가서,

"여봐라, 이 애 춘향아!"

부르는 소리 춘향이 깜짝 놀래어

"무슨 소리를 그 따위로 질러 사람의 정신을 놀래느냐."

"이 애야, 말 마라. 일이 났다."

"일이라니 무슨 일?"

"사또 자제 도련님이 광한루에 오셨다가 너 노는 모양 보고 불러오란 영이 났다."

춘향이 화를 내어

"네가 미친 자식이로다. 도련님이 어찌 나를 알아서 부른단 말이냐. 이 자식 네가 내 말을 종달새 열씨(삼의 씨) 까 듯 하였나보다."

"아니다, 내가 네 말을 할 리가 없으되 네가 그르지 내가 그르냐. 너 그른 내력을 들어보아라. 계집아이 행실로 추천을 할 양이면 네 집 후원 담장 안에 줄을 매고 추천하는 게 도리에 당연함이라. 광한루 멀잖고 또한 이 곳을 논할진대 녹음방초승화시(녹음과 방초와 꽃들이 한창일 때)라. 방초는 푸렀는데 앞 내 버들은 초록장(초록색 장막) 두르고 뒷 내 버들은 유록장(柳綠帳) 둘러 한 가지 늘어지고 또 한 가지 펑퍼져 광풍을 겨워(이기지 못하여) 흐늘흐늘 춤을 추는데 광한루 구경처에 그네를 매고 네가 뛸 제 외씨같은 두 발길로 백운간(白雲間)에 노닐 적에 홍상 자락이 펄펄 백방사 속곳 갈래 동남풍에 펄렁펄렁 박속같은 네 살결이 백운간에 희뜩희뜩 도련님이 보시고 너를 부르실 제 내가 무슨 말을 한단 말까. 잔말 말고 건너가자."

춘향이 대답하되

"네 말이 당연하나 오늘이 단오일이라. 비단 나 뿐이랴. 다른 집 처자들도 예 와 함께 추천하였으되 그럴 뿐 아니라 설혹 내 말을 할지라도 내가 지금 시사(아전이나 기생 등이 그 매인 관아에서 맡은 일을 치르는 것)가 아니거든 여염 사람을 호래척거(사람을 오라고 불러놓고 다시 곧 쫓아 버리는 것)로 부를 리도 없고 부른데도 갈 리도 없다. 당초에 네가 말을 잘 못 들은 바라."

방자 이면에 볶이어(속 마음에 성가시어) 광한루로 돌아와 도련님께 여쭈오니 도련님 그 말 듣고,

"기특한 사람이로다. 언즉시야(말인즉 바른 말이다)로되 다시 가 말을 하되 이리이리 하여라."

방자 전갈 모아 춘향에게 건너가니 그 새에 제 집으로 돌아갔거늘 저의 집을 찾아가니 모녀간 마주 않아 점심밥이 방장(곧 장차 시작하려고 한다는 뜻)이라. 방자 들어가니,

"너 왜 또 오느냐?"

"황송타. 도련님이 다시 전갈하시더라. '내가 너를 기생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하노라. 여가(여염집 즉 보통 사람의 집)에 있는 처자 불러 보기 청문(들음)에 괴이하나 혐의(의심할 만한 일)로 알지 말고 잠깐 와 다녀가라' 하시더라."

춘향의 도량(사물을 너그럽게 받아들여 처리하는 품성)한 뜻이 연분되려고 그러한 지 홀연이 생각하니 갈 마음이 나되 모친의 뜻을 몰라 침음양구(무엇을 깊이 생각하느라고 한참 있음)에 말 않고 앉았더니 춘향모 썩 나 앉아 정신 없게 말을 하되,

"꿈이라 하는 것이 전수이(모두) 허사가 아니로다. 간 밤에 꿈을 꾸니 난데없는 청룡 하나 벽도지(그 가장자리에 푸른 복숭아가 서 있는 연못)에 잠겨 보이거늘 무슨 좋은 일이 있을까 하였더니 우연한 일 아니로다. 또한 들으니 사또 자제 도련님 이름이 몽룡이라 하니 꿈 몽자 용 룡자 신통하게 맞추었다. 그러나 저러나 양반이 부르시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느냐. 잠깐 가서 다녀오라."

춘향이가 그제야 못 이기는 체로 겨우 일어나 광한루 건너갈 제 대명전(궁궐 이름) 대들보의 명매기(호연) 걸음으로 양지 마당의 씨암탉 걸음으로 백모래 바다 금자라 걸음으로 월태화용(아름다운 맵시와 얼굴) 고운 태도 완보로 건너갈 새 흐늘흐늘 월서시 토성습보(월나라의 왕 구천이 서시를 오나라의 왕 부차에게 바칠 때 예의범절을 가르치면서 토성에서 걸음걸이를 가르쳤다는 말)하던 걸음으로 흐늘거려 건너올 제 도련님 난간에 절반만 비껴 서서 완완히 바라보니 춘향이가 건너오는데 광한루에 가까운지라. 도련님 좋아라고 자세히 살펴보니 요요정정(나이가 젊어 얼굴에 화색이 도는 한편 정숙한 모양)하여 월태화용이 세상에 무쌍이라. 얼굴이 조촐하니 청강에 노는 학이 설월(雪月)에 비침 같고 단순호치(붉은 입술과 흰 이) 반개(반쯤 열다)하니 별도 같고 옥도 같다. 연지를 품은 듯 자하상(자줏빛 운기가 도는 치마) 고운 태도 어린 안개 석양에 비치는 듯 취군(푸른 치마)이 영롱하여 문채(무늬)는 은하수 물결같다. 연보(미인의 고운 걸음걸이)를 정히 옮겨 천연히 누에 올라 부끄러이 서 있거늘 통인 불러,

"앉으라고 일러라."

춘향의 고운 태도 염용(용모를 단정히 함)하고 앉는 거동 자세히 살펴보니 백색창파 새 비 뒤에(허연 바다물결 위에 새로 비가 내린 뒤에) 목욕하고 앉은 제비 사람을 보고 놀라는 듯 별로 단장한 일 없이 천연한 국색(나라 안의 첫째 가는 미인)이라. 옥안(아름다운 얼굴)을 상대하니 여운간지명월(구름 사이로 내보이는 밝은 달과 같음)이요 단순(丹脣)을 반개(半開)하니 약수중지연화(못에 떠 있는 연꽃과 같음)로다. 신선을 내 몰라도 영주에 놀던 선녀 남원에 적거(귀양살이를 함)하니 월궁(달 속에 있는 항아가 산다는 궁전)에 모시던 선녀 벗 하나를 잃었구나. 네 얼굴 네 태도는 세상 인물 아니로다.

이 때 춘향이 추파(사랑의 정을 나타내는 넌짓한 눈짓)를 잠깐 들어 이도령을 살펴보니 금세의 호걸이요 진세간(인간 세상) 기남자(기이한 남자)라. 천장(이마의 한가운데)이 높았으니 소년공명(아주 젊은 사람으로 공적을 쌓고 명성을 얻음)할 것이요 오악(여기서는 이마, 턱, 코, 좌우 광대뼈를 말함)이 조귀(朝歸)하니 보국충신(나라를 돕는 충성스러운 신하) 될 것이매 마음에 흠모하여 아미(미인의 눈썹)를 숙이고 염슬단좌(무릎을 단정히 하고 앉음)뿐이로다. 이도령 하는 말이

"성현도 불취동성(같은 성끼리는 결혼하지 아니함)이라 일렀으니 네 성은 무엇이며 나이는 몇 살이뇨?"

"성은 성(成)가옵고 연세는 십육 세로소이다."

이도령 거동 보소,

"허허 그 말 반갑도다. 네 연세 들어보니 나와 동갑 이팔이라. 성자(姓字)를 들어보니 천장(하늘이 정해준 인연)일시 분명하다. 이성지합(두 개의 성이 결합함 곧, 결혼)은 좋은 연분 평생동락하여 보자. 너의 부모 구존(부모가 다 살아계심)하냐?"

"편모하(下)로소이다."

"육십당년(올해 육십 세인) 나의 모친 무남독녀 나 하나요."

"너도 남의 집 귀한 딸이로다. 천장(天定)하신 연분으로 우리 둘이 만났으니 만년락(萬年樂)을 이뤄 보자."

춘향이 거동 보소. 팔자청산(미인의 고운 눈썹) 찡그리며 주순(붉은 입술)을 반개하여 가는 목 겨우 열어 옥성(고운 음성)으로 여쭈오되,

"충신은 불사이군(두 임금을 섬기지 않음)이요 열녀 불경이부절(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 정절)은 옛글에 일렀으니 도련님은 귀공자요 소녀는 천첩이라. 한 번 탁정(정을 맡김)한 연후에 인하여 버리시면 일편단심 이내 마음 독숙공방(獨宿空房) 홀로 누워 우는 한은 이내 신세 내 아니면 누구일꼬. 그런 분부 마옵소서."

이도령 이른 말이,

"네 말을 들어 보니 어이 아니 기특하랴. 우리 둘이 인연 맺을 적에 금석뇌약(쇠나 돌처럼 굳은 약속) 맺으리라. 네 집이 어디메냐?"

춘향이 여쭈오되,

"방자 불러 물으소서."

이도령 허허 웃고,

"내 너더러 묻는 일이 허황하다. 방자야."

"예"

"춘향의 집을 네 일러라."

방자 손을 넌지시 들어 가리키는데,

"저기 저 건너 동산은 울울하고 연당(연못)은 청청(淸淸)한데 양어생풍(기르는 물고기가 바람을 일으킴. 즉, 물에서 뛰놀고 있음)하고 그 가운데 기화요초(선경에 있다고 하는 아름다운 꽃과 풀) 난만하여 나무나무 앉은 새는 호사(대단한 사치)를 자랑하고 암상(바위 위)의 굽은 솔은 청풍(淸風)이 건듯 부니 노룡이 굼니는 듯(몸을 구부렸다 일으켰다 하는 듯) 문 앞의 버들 유사무사양류지(있는 듯 없는 듯한 버들가지)요 들쭉(들쭉나무) 측백(측백나무) 전나무며 그 가운데 행자목(은행나무)은 음양을 좇아 마주 서고 초당문전(초당의 문 앞) 오동 대추나무 깊은 산중 물푸레나무 포도 다래 으름(으름덩굴 나무) 넌출 휘휘친친 감겨 단장(나지막한 담)밖에 우뚝 솟았는데 송정(소나무 정자) 죽림 두 사이로 은은히 보이는 게 춘향의 집입니다."

도련님 이른 말이,

"장원(담)이 정결하고 송죽이 울밀(빽빽함)하니 여자 절행 가지(可知)로다."

춘향이 일어나며 부끄러이 여쭈오되,

"시속인심(세상사람들의 마음 씀씀이) 고약하니 그만 놀고 가겠습니다."

도련님 그 말을 듣고,

"기특하다. 그럴 듯한 일이로다. 오늘 밤 퇴령(지방 관아에서 아전이나 심부름꾼 등에게 퇴근을 허락하던 명령) 후에 너의 집에 갈 것이니 괄시나 부디 마라."

춘향이 대답하되,

"나는 몰라요."

"네가 모르면 쓰겠느냐. 잘 가거라 금야(今夜)에 상봉하자."

누에(서) 내려 건너가니 춘향모 마주 나와,

"애고, 내 딸 다녀오냐. 도련님이 무엇이라 하시더냐?"

"무엇이라 하여요. 조금 앉았다가 가겠노라 일어나니 저녁에 우리 집 오시마 하옵디다."

"그래 어찌 대답하였느냐?"

"모른다 하였지요."

"잘 하였다."

이 때 도련님이 춘향을 아연히(급히) 보낸 후에 미망(도저히 잊을 수 없음)이 둘 데 없어 책실(책방, 고을 원의 자식이 독서하던 방)로 돌아와 만사에 뜻이 없고 다만 생각이 춘향이라. 마소리 귀에 쟁쟁 고운 태도 눈에 삼삼 해 지기를 기다릴 새,

방자 불러,

"해가 어느 때나 되었느냐?"

"동에서 아귀 트나이다.(아침 해가 떠오르다.)"

도련님 대노하여,

"이 놈 괘씸한 놈. 서쪽으로 지는 해가 동으로 도로 가랴. 다시금 살펴보라."

이윽고 방자 여쭈오되,

"일락함지(해가 서쪽 바다에 떨어짐) 황혼되고 월출동령(달이 동쪽 고갯마루에서 나옴) 하옵내다."

석반(저녁밥)이 맛이 없어 전전반측 어이 하리. 퇴령을 기다리려 하고 서책을 보려 할 제 책상을 앞에 놓고 서책을 상고(자세히 참고함)하는데, 중용 · 대학 · 논어 · 맹자 · 시전 · 서전 · 주역 · 고문진보 · 통('통지'라는 역사책 이름) · 사략(십팔사략, 역사책 이름) · 이백 · 두시 · 천자문까지 내어놓고 글을 읽을 새,

"시전이라. 관관저구재하지주(암수 정다운 징경이새 물가에 노닐다)로다. 요조숙녀는 군자호구(아름다운 여인은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로다.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대학을 읽을 새,

"대학지도(대학의 가르침)는 재명명덕재신민(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다)하며 재춘향(在春香)이로다. 그 글도 못 읽겠다."

주역을 읽는 데,

"원은 형코 정코(원(元)은 형(亨)하고 정(貞)하다는 말로, 주역 건괘에 나오는 '건원형이정'을 풀이한 것에 대한 오독인 듯함) 춘향이 코 딱 댄 코 좋고 하니라. 그 글도 못 읽겠다. 등왕각(고문진보에 나오는 왕발의 글 이름)이라. 남창은 고군이요 홍도는 신부(남창이라는 곳은 옛 고을이고 홍도라는 곳은 새 고을이다)로다. 옳다. 그 글 되었다."

맹자를 읽을 새,

"맹자 견양혜왕하신대 왕왈 수불원천리이래(맹자가 양혜왕을 뵈니 왕이 말하기를 노인장께서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찾아주시니)하시니 춘향이 보시러 오셨습니까?"

사략을 읽는데,

"태고라. 천황씨(옛날 중국 처음 임금인 삼황의 우두머리)는 이쑥덕(쑥덕으로. 목덕(木德. 오덕의 하나)의 잘못인 듯함)으로 왕하여 세기섭제(섭제는 별 이름. 오랜 옛날 천황씨가 목덕으로 임금이 되었는데 태평한 세상을 섭제에서 일으키니 아무런 힘을 쓰지 않아도 백성이 감화되어 나라가 잘 다스려졌으며 또 형제 십이인이 각각 일만 팔천 세를 누리다)하니 무위이화(無爲而化)이라. 하여 형제 십이인이 각 일만팔천세하다."

방자 여쭈오되,

"여보 도련님. 천황씨가 목덕으로 왕이란 말은 들었으되 쑥떡으로 왕이란 말은 금시초문이오."

"이 자식 네 모른다. 천황씨 일만팔천 세를 살던 양반이라 이가 단단하여 목떡을 잘 자셨거니와 시속(時俗) 선비들은 목떡을 먹겠느냐. 공자님께옵서 후생(後生)을 생각하사 명륜당(성균관에 있던 유학을 강의하던 곳)에 현몽하고 시속 선비들은 이가 부족하여 목떡을 못 먹기로 물씬물씬한 쑥떡으로 하라 하여 삼백 육십 주(조선시대에 나라 전체를 삼백육십 주로 나누었음) 향교(시골의 학교)에 통문(글로 기별하여 알림)하고 쑥떡으로 고쳤느니라."

방자 듣다가 말을 하되

"여보, 하느님이 들으시면 깜짝 놀라실 거짓말도 듣겠소."

또 적벽부를 들어놓고

"임술지추칠월기망(壬戌之秋七月旣望)에 소자(蘇子) 여객(與客)으로 범주유어적벽지하(泛舟遊於赤壁之下)할 새 청풍은 서래(徐來)하고 수파(水波)는 불흥(不興)이라. (소식의 '전적벽부' 맨 앞에 나오는 글. 임술년 가을 칠월 십육 일에 내가 나그네와 더불어 적벽 밑에서 배를 띄우고 노닐 때 맑은 바람은 가볍게 불어 오고 물결은 잔잔하였다.). 아서라 그 글도 못 읽겠다."

천자문을 읽을 새

"하늘 천 땅 지"

방자 듣고,

"여보 도련님. 점잖이(점잖치 않게) 천자는 웬 일이오?"

"천자라 하는 글이 칠서(사서 삼경)의 본문이라. 양나라 주사봉 주흥사(사봉 벼슬의 주흥사)가 하룻밤에 이 글을 짓고 머리가 희었기로 책 이름을 백수문(주흥사가 지은 천자문의 별칭. 그가 이 글을 짓느라고 고심참담한 나머지 머리가 하룻밤 사이에 허옇게 세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라. 낱낱이 새겨 보면 뼈똥 쌀 일이 많지야."

"소인놈도 천자 속은 아옵니다."

"네가 알더란 말이냐?"

"알기를 이르겠소."

"안다 하니 읽어 봐라."

"예 들으시오. 높고 높은 하늘 천(天) 깊고 깊은 땅 지(地) 홰홰친친 검을 현(玄) 불타다 누를 황."

"예 이놈. 상놈은 적실(틀림이 없음)하다. 이놈 어디서 장타령(속된 잡가의 한 가지. 동냥하는 사람이 장판이나 길거리로 돌아다니면서 부르는 것이 보통임)하는 놈의 말을 들었구나. 내 읽을 게 들어라. 천개자시생천(하늘이 자시에 열려 생김)하니 태극(우주를 구성하는 음양이원기의 근본)이 광대(廣大) 하늘 천(天) 지벽어축시(땅은 축시에 열림)하니 오행(만물을 낳는 5원소. 水火木金土) 팔괘(여덟 종류의 괘. 乾坤坎離艮震巽兌)로 땅 지(地) 삼십삼천(수미산 꼭대기의 네 봉우리에 각각 있는 팔천(八天)과 중앙에 있어서 이것을 통치하는 제석천) 공부공(불가에서 쓰는 말로 빌고 또 빈다는 말)의 인심지시(人心指示) 검을 현(玄) 이십팔수(옛날 천문학에서 하늘을 사궁 사신으로 나누고 다시 각 궁마다 일곱 성수로 나눈 것) 금목수화토지 정색(섞인 것이 없는 순수한 빛 곧, 청적황백흑의 오색을 말함) 누를 황(黃) 우주일월 중화(거듭 빛남)하니 옥우(천제가 거처하는 곳) 쟁영(가파른 모양) 집 우(宇) 연대국도흥성쇠(해마다 국도가 흥하고 성하고 쇠퇴함) 왕고래금에 집 주(宙) 우치홍수(처음 요순 이제를 섬기다 우가 9년 동안 홍수를 잘 다스린 공로로 순을 계승하게 되었음) 기자 추(추연. 미루어 넓힘)에 홍범구주(천하를 다스리는 아홉가지 대법. 본래 우왕이 하늘의 계시에 의하여 얻은 것으로서 대대로 전하여 기자에 이르러 기자가 무왕의 물음에 대답한 후 비로소 세상에 알려졌다 함) 넓을 홍(洪) 삼황오제(중국 태고 때의 황제들) 붕(崩)하신 후 난신적자(나라를 어지럽게 하고 군부를 죽이는 악인) 거칠 황(荒) 동방이 장차 계명(啓明)키로 고고천변일륜홍(고고는 햇빛의 밝음을 말함. 눈부신 하늘의 가장자리에 해가 붉음) 번 듯 솟아 날 일(日) 억조창생(수많은 백성) 격양가에 강구연월에 달 월(月) 한심(마음이 선뜩함) 미월(초승달) 시시(時時) 불어 삼오일야(십오일 밤)에 찰 영(盈) 세상만사 생각하니 달빛과 같은지라 십오야(십오일 밤) 밝은 달이 기망(旣望)부터 기울 측(仄) 이십팔수(二十八宿) 하도낙서(하도와 낙서, 하도는 복희씨 때 황하에서 길이 팔척이 넘는 용마가 등에 지고 나왔다는 그림으로서 <주역>의 팔괘의 근원이 된 것. 낙서는 하우씨가 9년 동안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에서 나온 신령스러운 거북이의 등에 있었다는 글로서 <서경> 중의 홍범구조의 기원이 된 것) 벌인 법(法) 일월성신 별 진(辰) 가련금야숙창가(애닯게도 오늘 밤에는 기생집에서 자겠구나)라 원앙금침에 잘 숙(宿) 절대가인(당대의 뛰어난 미인) 좋은 풍류 나열춘추(봄이나 가을이나 죽 늘어섬)에 벌일 렬(列) 의의월색(어렴풋한 달빛) 야삼경에 만단정회 베풀 장(張) 금일한풍소소래(오늘은 찬 바람이 쓸쓸히 불어오니)하니 침실에 들거라 찰 한(寒) 베개가 높거든 내 팔을 베어라 이만큼 오너라 올 래(來) 에후로혀(고어로 '둘러 당겨'라는 뜻) 질끈 안고 님 각(님의 다리)에 드니 설한풍(눈섞인 찬 바람)에도 더울 서(署) 침실이 덥거든 음풍(陰風)을 취하여 이리저리 갈 왕(往) 불한불열(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음) 어느 때냐 엽락오동(낙엽지는 오동나무)에 가을 추(秋) 백발이 장차 우거지니 소년풍도(소년다운 풍채와 태도)를 거둘 수 (收) 낙목한풍 찬 바람 백설강산에 겨울 동(冬) 오매불망 우리 사랑 규중심처(부녀자가 거처하는 집안 깊숙한 곳)에 갈물(갈무리할) 장(藏) 부용(연꽃) 작야(지난 밤) 세우(細雨) 중에 광윤유태(윤기가 몸에 흐름) 부루(부드러울) 윤(潤) 이러한 고운 태도 평생을 보고도 남을 여(餘) 백년기약 깊은 맹서 만경창파 이룰 성(成) 이리저리 노닐 적에 부지세월(세월이 흐름을 알지 못함) 해 세(歲) 조강지처불하당(고생을 같이 해온 아내는 존중하고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 아내 박대 못하나니 대전통편(<경국대전>과 <속대전> 및 그 이후에 임금이 내린 교명과 현행법을 묶은 책) 법중 율(律) 군자호구 이 아니냐 춘향 입 내 입을 한테다 대고 쪽쪽 빠니 법중 려(呂)자 이 아니냐. 애고애고 보고지고."

소리를 크게 질러 놓으니 이 때 사또 저녁 진지를 잡수시고 식곤증이 나계옵서 평상에 취침하시다 애고 보고지고 소리에 깜짝 놀래어,

"이리 오너라!"

"예."

"책방에서 누가 생침을 맞느냐 신다리(아픈 다리)를 주물렀냐? 알아 들여라(일의 사정을 알아보고 알리라는 말)."

통인 들어가,

"도련님 웬 목통(목구멍의 넓이)이오? 고함소리에 사또 놀라시사 염문(비밀히 사정을 물어봄)하라 하옵시니 어찌 아뢰리까?"

"딱한 일이로다. 남의 집 늙은이는 이농증(소리를 듣지 못하는 병)도 있느니라마는 귀 너무 밝은 것도 예사 일 아니로다."

그러하다 하지마는 그럴 리가 왜 있을꼬.

도련님 대경(大驚)하여,

"이대로 여쭈어라. 내가 논어라 하는 글을 보다가 차호(嗟乎)라 오로의구의(吾老矣久矣)라 몽불견주공(夢不見周公)(아아 슬프다. 내 늙어서 오랫동안 주공을 꿈에 보지 못했도다)이란 대문을 보다가 나도 주공을 보면 그리하여 볼까 하여 흥치(흥미와 운치)로 소리가 높았으니 그대로만 여쭈어라."

통인이 들어가 그대로 여쭈오니 사또 도련님 승벽(남을 꼭 이기고자 하는 성벽) 있음을 크게 기뻐하여

"이리 오너라! 책방에 가 목낭청(목씨 성을 가진 향관)을 가만히 오시래라."

낭청이 들어오는데 이 양반이 어찌 고리게(하는 짓이 용렬하고 더럽게) 생겼든지 만큼 걸음쏙(경솔하고 거리낌 없이 걷는 걸음)까지 근심이 담쏙 들었던 것이었다.

"사또 그 새 심심하지요."

"아 게 앉소. 할 말 있네. 우리 피차 고우(오래 사귄 벗)로서 동문수업하였거니와 아시(아이 적)에 글 읽기같이 싫은 것이 없건마는 우리 아(兒) 시흥(시를 짓는 흥미) 보니 어이 아니 기쁠 손가."

이 양반은 지여부지간(알 듯 모를 듯하는 순간에)에 대답하것다.

"아이 때 글 읽기같이 싫은 게 어디 있으리오."

"읽기가 싫으면 잠도 오고 꾀가 무수하지. 이 아이는 글 읽기를 시작하면 읽고 쓰고 불철주야(밤낮을 가리지 아니하고 일에 힘씀)하지."

"예 그럽디다."

"배운 바 없어도 필재(문장의 재능) 절등(월등하게 뛰어남)하지."

"그렇지요. 점 하나만 툭 찍어도 고봉추석(높은 산봉우리에서 돌을 떨어뜨림)같고 한 일(一)을 그어놓면 천리진운(천리에 구름이 뭉게뭉게 올라 진의 모양을 이룸)이요, 갓머리는 작규첨(작규첨단, 새가 처마에서 엿봄)이요 필법논지(글씨 쓰는 법을 논함)하면 풍랑뇌전(풍랑이 일고 천둥과 번개가 치는 것 같다)이요, 내리 그어 채는 획은 노송도괘절벽(늙은 소나무가 절벽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것 같다.)이라. 창과(戈)로 이를 진대 바른 등 넌출같이 뻗어갔다 도로 채는 데는 성난 쇠뇌(노, 여러 개의 화살이나 돌을 잇달아 쏘게 된 큰 활) 끝같고 기운이 부족하면 발길로 툭 차올려도 획은 획대로 되나니 글씨를 가만히 보면 획은 획대로 되옵디다."

"글쎄 듣게. 저 아이 아홉 살 먹었을 제 서울 집 뜰에 늙은 매화 있는 고로 매화나무를 두고 글을 지어라 하였더니 잠시 지었으되 정성 들인 것과 용사비등(매한가지라는 뜻)하니 일람첩기(한번 들으면 문득 기억한다)라. 묘당(조정)의 당당한 명사(명망있는 선비) 될 것이니 남면이북고(남쪽을 곁눈질하며 북쪽을 돌아봄)하고 부춘추어일수(<춘추>의 한 수를 짓다)하였데."

"장래 정승 하오리다."

사또 너무 감격하여

"정승이야 어찌 바라겠나마는 내 생전에 급제는 쉬 하리마는 급제만 쉽게 하면 출육(육품의 벼슬에 오르는 것)이야 범연히 지나겠나."

"아니요. 그리 할 말씀이 아니라 정승을 못하오면 장승(옛날 이수(里數)를 표하기 위해 나무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새겨 세웠던 푯말)이라도 되지요."

사또가 호령하되,

"자네 뉘 말로 알고 대답을 그리 하나?"

"대답은 하였사오나 뉘 말인지 몰라요."

그렇다고 하였으되 그게 또 다 거짓말이었다.

이 때 이도령은 퇴령 놓기를 기다릴 제,

"방자야!"

"예."

"퇴령 놓았나 보아라."

"아직 아니 놓았소."

조금 있더니 '하인 물리라' 퇴령 소리 길게 나니,

"좋다 좋다. 옳다 옳다. 방자야. 등롱(등불을 켜서 어두운 곳을 밝히는 기구)에 불 밝혀라."

통인 하나 뒤를 따라 춘향의 집 건너갈 제 자취없이 가만가만 걸으면서,

"방자야 상방(관청의 우두머리가 있던 방. 여기에서는 사또가 거처하는 방)에 불 비친다. 등롱을 옆에 껴라."

삼문 밖 썩 나서 협로지간(좁은 길 사이)에 월색이 영롱하고 화간(꽃들이 피어 있는 사이) 푸른 버들 몇 번이나 꺾었으며 투계소년(닭싸움을 붙이는 소년) 아이들은 야입청루(밤에 기생집에 들어감) 하였으니 지체말고 어서가자. 그렁저렁 당도하니 가련금야요적(애닯도다 오늘 밤의 적막함이여)한데 가기물색(애인을 만나는 아름다운 시기)이 아니냐. 가소롭다 어주사(어부)는 도원(선경, 별천지) 길을 모르던가. 춘향 문전 당도하니 인적야심(사람의 발길도 끊어진 깊은 밤)한데 월색은 삼경이라. 어약(뛰는 물고기)은 출몰(나타났다 숨었다 함)하고 대접같은 금붕어는 님을 보고 반기는 듯 월하(月下)의 두루미는 흥을 겨워 짝 부른다.

이 때 춘향이 칠현금(일곱줄로 된 거문고)를 비껴 안고 남풍시(천하가 잘 다스려져 백성이 잘사는 것을 노래한 것)를 희롱타가 침석(寢席)에 졸더니 방자 안으로 들어가되 개가 짖을까 염려하여 자취없이 가만가만 춘향 방 영창(방을 밝게 하기 위하여 낸 두 쪽의 미닫이) 밑에 가만히 살짝 들어가서,

"이 애 춘향아, 잠 들었냐!"

춘향이 깜짝 놀래어

"네 어찌 오냐?"

"도련님이 와 계시다."

춘향이가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울렁울렁 속이 답답하여 부끄럼을 못이기어 문을 열고 나오더니 건넌방 건너가서 저의 모친 깨우는데,

"애고 어머니. 무슨 잠을 이다지 깊이 주무시오!"

춘향의 모 잠을 깨어,

"아가, 무엇을 달라고 부르느냐?"

"누가 무엇 달래었소."

"그러면 어찌 불렀느냐?"

엉겁결에 하는 말이,

"도련님이 방자 모시고 오셨다오."

춘향의 모 문을 열고 방자 불러 묻는 말이,

"누가 와야?"

방자 대답하되,

"사또 자제 도련님이 와 계시오."

춘향 어미 그 말 듣고,

"향단아!"

"예."

"뒤 초당(집의 원채밖에 억새나 짚 같은 것으로 지붕을 이은 조그마한 집채)에 좌석(座席) 등촉(燈燭) 신칙(알아듣도록 거듭 타이름)하여 포진(마련하여 둠)하라."

당부하고 춘향모가 나오는데 세상 사람이 다 춘향모를 일컫더니 과연이로다. 자고로 사람이 외탁을 많이 하는 고로 춘향같은 딸을 낳았구나. 춘향모 나오는데 거동을 살펴보니 반백이 넘었는데 소탈한 모양이며 단정한 거동이 표표정정(굳세고 강건한 모양)하고 기부(피부)가 풍영(토실토실함)하여 복이 많은지라. 숫접고 점잔하게 발막(신분이 높은 남녀 늙은이가 신는 마른 신의 한 가지)을 끌어 나오는데 가만가만 방자 뒤를 따라온다.

이 때 도련님이 배회고면(이리저리 거닐며 좌우를 돌아봄)하여 무료(심심하거나 열적음)히 서 있을 제 방자 나와 여쭈오되,

"저기 오는 게 춘향의 모로소이다."

춘향의 모가 나오더니 공수(공경하는 뜻을 표하기 위하여 두 손을 마주 잡음)하고 우뚝 서며,

"그 새에 도련님 문안이 어떠하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의 모라지, 평안한가?"

"예 겨우 지내옵니다. 오실 줄 진정 몰라 영접이 불민(不敏)하오니다."

"그럴 리가 있나."

춘향모 앞을 서서 인도하여 대문 중문 다 지나서 후원을 돌아가니 연구(오래 묵음)한 별초당에 등롱을 밝혔는데 버들까지 늘어져 불빛을 가린 모양 구슬발(구슬을 실에 꿰어 만든 발, 주렴)이 갈고랑이(갈고리 진 물건)에 걸린 듯하고 우(右)편의 벽오동은 맑은 이슬이 뚝뚝 떨어져 학의 꿈을 놀래는 듯 좌(左)편에 섰는 반송(盤松) 청풍이 건듯 불면 노룡이 굼니는 듯 창전(窓前)에 심은 파초 일난초 봉미장은 속잎이 빼어나고 수심여주(연못 중앙의 귀한 구슬) 어린 연꽃 물 밖에 겨우 떠서 옥로(玉露)를 받쳐 있고 대접같은 금붕어는 어변성룡(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됨)하려 하고 때때마다 물결쳐서 출렁 툼벙 굼실 놀 때마다 조롱하고 새로 나는 연잎은 받을 듯이 벌어지고 급연삼봉(높이 솟아있는 세 봉우리) 석가산(뜰에 돌로 쌓아 놓은 산)은 층층이 쌓였는데 계하(階下)의 학 두루미 사람을 보고 놀래어 두 죽지를 떡 벌리고 긴 다리로 징검징검 끼룩 뚜르르 소리하며 계화(桂花) 밑에 삽살개 짖는구나. 그 중에 반갑구나 못 가운데 쌍 오리는 손님 오시노라 둥덩실 떠서 기다리는 모양이요 처마에 다다르니 그제야 저의 모친 영을 디디어서(받들어서) 사창(비단으로 바른 창문)을 반개하고 나오는데 모양을 살펴보니 뚜렷한 일륜명월(하나의 둥글고 맑은 달) 구름밖에 솟아난 듯 황홀한 저 모양은 측량키 어렵도다. 부끄러이 당에 내려 천연히 섰는 거동은 사람의 간장을 다 녹인다.

도련님 반만 웃고 춘향더러 묻는 말이,

"곤(困)치 아니하며 밥이나 잘 먹었냐?"

춘향이 부끄러워 대답치 못하고 묵묵히 서 있거늘 춘향이 모가 먼저 당에 올라 도련님을 자리로 모신 후에 차를 들어 권하고 담배 붙여 올리오니 도련님이 받아 물고 앉았을 제 도련님 춘향의 집 오실 때는 춘향에게 뜻이 있어 와 계시지 춘향의 세간 기물(器物) 구경온 바 아니로되, 도련님 첫 외입이라 밖에서는 무슨 말이 있을 듯 하더니 들어가 앉고 보니 별로이 할 말이 없고 공연히 천촉기(숨이 차서 헐떡거리고 힘없는 기침이 나는 증세)가 있어 오한증(오슬오슬 춥고 괴로운 증세)이 들면서 아무리 생각하되 별로 할 말이 없는지라 방중을 둘러보며 벽상(壁上)을 살펴보니 여간(보통으로) 기물 놓였는데 용장(용을 새긴 옷장) 봉장(봉황을 새긴 옷장) 가께수리(서랍이 많이 달린 궤) 이럭저럭 벌였는데 무슨 그림장도 붙여 있고 그림을 그려 붙였으되 서방 없는 춘향이요 학(學)하는 계집 아이가 세간 기물과 그림이 왜 있을까마는 춘향 어미가 유명한 명기(名妓)라 그 딸을 주려고 장만한 것이었다. 조선의 유명한 명필 글씨 붙여 있고 그 사이에 붙인 명화 다 후리쳐 던져두고 월선도(月仙圖)란 그림 붙였으되 월선도 제목이 이렇던 것이었다.

상제고거강절조에 군신조회 받던(아주 오랜 옛날의 제왕이 강절있는 조정에 높이 앉아 조회를 받던. 강절이란 한나라 사자(使者)가 갖는 적색의 부절을 말함) 그림 청년거사(이백의 자호) 이태백이 황학전(황학루) 꿇어 앉아 황정경(도교의 경전) 읽던 그림 백옥루(문사가 죽어서 올라간다고 하는 하늘 위의 높은 누각. 당나라 시인 이하가 죽으려 할 때 천제로부터 천상세계에 있는 백옥루의 기(記)를 지으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 지은 후에 자기 불러 올려 상량문(집을 지을 때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올리는 일을 상량이라 하고, 그러한 것을 축복하는 글을 상량문이라 함) 짓던 그림 칠월 칠석 오작교에 견우직녀 만나는 그림 광한전 월명야(달이 밝은 밤)에 도약(약을 찧음)하던 항아 그림 층층이 붙였으되 광채가 찬란하여 정신이 산란한지라. 또 한 곳 바라보니 부춘산 엄자릉(후한 사람으로, 젊었을 때에 광무와 유학했기에 광무가 즉위한 후에 간의대부로 불렀건만 응하지 않고 부춘산에서 농사를 짓다 80여 세로 세상을 떠났다.)은 간의대부(임금에게 충고하는 벼슬 이름) 마다하고 백구(흰 갈매기)로 벗을 삼고 원학(원숭이와 학)으로 이웃 삼아 양구(양의 가죽으로 만든 옷)를 떨쳐 입고 추(秋) 동강 칠리탄(동강에서 칠리 쯤 떨어져 있는 여울)에 낚시줄 던진 경(景)을 역력히 그려 있다. 방가위지선경(바야흐로 신선의 경지라 이를 만하다)이라 군자호구 놀 데로다. 춘향이 일편단심 일부종사하려 하고 글 한 수를 지어 책상 위에 붙였으되,

대운춘풍죽(帶韻春風竹)이요 분향야독서(焚香夜讀書)라.

(운치를 띠었구나 봄바람의 대나무여. 향을 피워 밤에 책을 읽네.)

기특하다 이 글 뜻은 목란(양대의 효녀. 남장을 하고 부친을 대신하여 전쟁에 나가 이기고 열두 해만에 돌아온 것으로 유명함)의 절개로다.

이렇듯 치하할 제 춘향 어미 여쭈오되,

"귀중하신 도련님이 누지(누추한 곳)에 욕림(辱臨)하시니 황공감격하옵니다."

도련님 그 말 한마디에 말 궁기(말이 궁색한 지경에 처함)가 열리었지.

"그럴 리가 왜 있는가. 우연히 광한루에서 춘향을 잠깐 보고 연련히(사모하여서 잊지 못하는 모양) 보내기로 탐화봉접(꽃을 찾아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 취한 마음 오늘 밤에 오는 뜻은 춘향 어미 보러 왔거니와 자네 딸 춘향과 백년 언약을 맺고자 하니 자네의 마음이 어떠한가?"

춘향 어미 여쭈오되,

"말씀은 황송하오나 들어 보오. 자하(紫霞)골 성참판 영감이 보후(내직에 들어가기 전에 임시로 외관을 맡은 일)로 남원에 좌정하였을 때 소리개를 매로 보고 수청을 들라 하옵기로 관장의 영을 못 어기어 모신 지 삼삭(三朔)만에 올라가신 후로 뜻밖에 포태(아이를 뱀)하여 낳은 게 저것이라. 그 연유(이유)로 고목(옛날에 천한 사람이 존귀한 사람에게 보내는 편지)하니 젖줄 떨어지면 데려가련다 하시더니 그 양반이 불행하여 세상을 버리시니 보내질 못하옵고 저것을 길러낼 제 어려서 잔병조차 그리 많고 칠세에 소학(유서의 하나로, 송나라의 주희가 편집한 것이라 하나 실은 그의 문하에 있던 유자징이 지었음) 읽혀 수신제가 화순심(和順心)을 낱낱이 가르치니 씨가 있는 자식이라 만사를 달통(達通)이요 삼강행실 뉘라서 내 딸이라 하리요. 가세가 부족하니 재상가 부당(不當)이요 사서인(사대부와 서인, 곧 관리와 농공상인) 상하불급(위 아래에 다 미치지 못함) 혼인이 늦어가매 주야로 걱정이나 도련님 말씀은 잠시 춘향과 백년기약한단 말씀이오나 그런 말씀 말으시고 놀으시다 가옵소서."

이 말이 참말이 아니라 이도련님 춘향을 얻는다 하니 내두사(앞으로 닥쳐올 일)를 몰라 뒤를 눌러 하는 말이었다. 이도령 기가 막혀,

"호사에 다마로세. 춘향도 미혼전(未婚前)이요 나도 미장전(미장가 전, 아직 장가들기 전)이라. 피차 언약이 이러하고 육례(혼인의 여섯가지 의식. 곧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는 못할 망정 양반의 자식이 일구이언을 할 리 있나."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또 내 말 들으시오. 고서(古書)에 하였으되 지신(知臣)은 막여주(莫如主)요 지자(知子)는 막여부(莫如父)라(신하의 속내를 아는 데 있어서는 임금만한 이가 없고 자식의 속내를 아는 데 있어서는 부모만한 이가 없다는 뜻) 하니, 지녀(知女)는 모(母) 아닌가. 내 딸 심곡(마음 속) 내가 알지. 어려부터 결곡(얼굴이나 마음이 곧고 깨끗함)한 뜻이 있어 행여 신세를 그르칠까 의심이요 일부종사하려 하고 사사이(일마다) 하는 행실 철석같이 굳은 뜻이 청송(靑松) 녹죽(綠竹) 전나무 사시절(四時節)을 다투는 듯 상전벽해 될지라도 내 딸 마음 변할손가. 금은(金銀) 오촉지백(오나라와 촉나라에서 나는 비단)이 적여구산(언덕이나 산처럼 많이 쌓여있다는 뜻)이라도 받지 아니할 터이요 백옥같은 내 딸 마음 청풍인들 미치리요. 다만 고의(古義)를 효칙(본받아서 법으로 삼음)코자 할 뿐이온데 도련님은 욕심부려 인연을 맺었다가 미장전 도련님이 부모 몰래 깊은 사랑 금석같이 맺었다가 소문 어려(어려워, 무서워) 버리시면 옥(玉)결 같은 내 딸 신세 문채(文采) 좋은 대모(바다거북, 등껍데기는 누른 바탕에 검은 점이 있는데 각종 장식용품의 재료로 씀) 진주 고운 구슬 구멍노리(구멍이 있는 그 부분) 깨어진 듯 청강(淸江)에 놀던 원앙조가 짝 하나를 잃었은들 어이 내 딸 같을손가. 도련님 내정(속 마음)이 말과 같을 진대 심량(깊이 헤아림)하여 행하소서."

도련님 더욱 답답하여,

"그는 두 번 염려하지 마소. 내 마음 헤아리니 특별 간절 굳은 마음 흉중에 가득하니 분의(분수에 적당한 의리)는 다를 망정 저와 내가 평생기약 맺을 제 전안(혼인 때 신랑이 신부 집에 기러기를 가지고 가서 상 위에 놓고 절하는 예) 납폐(신랑 집에서 신부 집에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을 보내는 일) 아니 한들 창파(바다 물결)같이 깊은 마음 춘향사정 모를 손가."

이렇듯이 이같이 설화(說話)하니 청실홍실 육례 갖춰 만난대도 이 위에 더 뾰족할까.

"내 저를 초취(첫 번 장가로 맞아들인 아내)같이 여길 테니 시하(부모 또는 조부모가 생존한 사람)라고 염려 말고 미장전도 염려 마소. 대장부 먹는 마음 박대(푸대접함) 행실 있을 손가. 허락만 하여 주소."

춘향 어미 이 말 듣고 이윽히 앉았더니 몽조(꿈자리 즉, 꿈에 나타났던 일)가 있는지라 연분인 줄 짐작하고 흔연히 허락하며,

"봉(鳳)이 나매 황(凰)이 나고 장군 나매 용마(빨리 달리는 말) 나고 남원에 춘향 나매 이화춘풍(봄바람에 오얏꽃) 꽃다웁다. 향단아, 주반(술상) 등대하였느냐?"

"예."

대답하고 주효(술과 안주)를 차릴 적에 안주 등물(등등의 것들) 볼 것 같으면 괴임새(음식을 그릇 위에 쌓아올리는 모양새)도 정결하고 대양푼(음식을 담거나 데우는 데 쓰는 놋그릇) 가리찜(쇠고기의 갈비를 토막쳐서 삶아 만든 음식) 소양푼 제육찜 풀풀 뛰는 숭어찜 포도동 나는 매추리탕에 동래 울산 대전복 대모 장도(대모로 꾸민 장도) 드는 칼로 맹상군의 눈썹처럼 어슷비슷(생김새가 서로 비슷함) 오려놓고 염통산적 양볶이와 춘치자명(봄철의 꿩이 스스로 운다는 뜻으로 남의 명령이나 요구에 의하지 아니하고 자발적으로 이르는 말) 생치(익히지 않은 꿩) 다리 적벽 대접(적벽 지방에서 나는 대접) 분원기(분원사기)에 냉면조차 비벼놓고 생률 숙률(날 밤과 찐 밤) 잣송이며 호도 대추 석류 유자 준시(꼬챙이에 꿰지 않고 말린 감) 앵두 탕기(탕을 담는 그릇)같은 청술레(껍질 색이 푸르며 물기가 많아서 맛이 좋은 배의 한 가지)를 칫수있게 괴었는데 술병 치레 볼 것 같으면 티끌 없는 백옥병과 벽해수상(푸른 바닷물 위) 산호병과 엽락금정(금정(샘 이름)에 나뭇잎이 떨어진다는 뜻) 오동병과 목 긴 황새병 자라병 당화병(중국의 동양화를 그려 넣은 병) 쇄금병(겉에다 금물을 칠한 병) 소상동정 죽절병(중국 동정호 남쪽의 소상 지방에서 나는 대나무로 만든 병) 그 가운데 천은 알안자(품질이 좋은 은으로 만든 주전자) 적동자(적동으로 만든 주전자) 쇄금자(금물을 칠한 주전자)를 차례로 놓았는데 구비함도 갖을시고. 술 이름을 이를진대 이적선(이백) 포도주와 안기생(진나라 때 사람으로, 장수한 인물) 자하주(신선들이 먹는 술)와 산림처사 송엽주(솔잎으로 만든 술)와 과하주(소주와 약주를 섞어서 빚은 술) 방문주(특별한 방법으로 담근 술) 천일주 백일주(빚어 넣은 지 천 일만에 혹은, 백일 만에 먹는 술) 금로주 팔팔 뛰는 화주(소주) 약주 그 가운데 향기로운 연엽주(연잎으로 만든 술) 골라내어 알안자 가득 부어 청동화로 백탄 불에 남비 냉수 끓는 가운데 알안자 둘러 불한불열(不寒不熱) 데어 내어 금잔(금으로 만든 술잔) 옥잔(玉盞) 앵무배(앵무새의 부리 모양으로 만든 술잔)를 그 가운데 데웠으니 옥경(옥황상제가 산다고 하는 서울) 연화 피는 꽃이 태을선녀(태을이라는 별에서 사는 선녀) 연엽선(연잎으로 만든 배) 뜨듯 대광보국(조선시대 관리의 최고급) 영의정 파초선 뜨듯 둥덩실 띄워 놓고 권주가 한 곡조에 일배일배부일배(한잔 한잔에 다시 한잔이라는 뜻으로 계속해서 술을 마신다는 뜻)라.

이도령 이른 말이,

"금야(今夜)에 하는 절차 보니 관청이 아니거든 어이 그리 구비한가(잘 갖추었는가)?"

춘향 모 여쭈오되,

"내 딸 춘향 곱게 길러 요조숙녀 군자호구 가리어서 금슬우지(금슬지우. 금슬은 거문고와 큰 거문고로 부부의 사이를 말하므로 부부간의 우애를 말함) 평생동락 하올 적에 사랑에 노는 손님 영웅호걸 문장들과 죽마고우(어릴 때부터 같이 놀던 친한 벗) 벗님네 주야로 즐기실 제 내당의 하인 불러 밥상 술상 재촉할 제 보고 배우지 못하고는 어이 곧 등대하리. 내자(아내)가 불민하면 가장(家長) 낯을 깎음이라. 내 생전 힘써 가르쳐 아무쪼록 본받아 행하라고 돈 생기면 사모아서 손으로 만들어서 눈에 익고 손에도 익히라고 일시(一時) 반 때 놓지 않고 시킨 바라. 부족타 말으시고 구미대로 잡수시오."

앵무배 술 가득 부어 도련님께 드리오니 도령 잔 받아 손에 들고 탄식하여 하는 말이,

"내 마음대로 할 진대는 육례를 행할 터나 그러질 못하고 개구멍 서방(남의 눈을 피해 드나들면서 서방노릇을 한다는 뜻)으로 들고 보니 이 아니 원통하랴. 이 애 춘향아, 그러나 우리 둘이 이 술을 대례(혼인을 치르는 큰 예식) 술로 알고 먹자."

일배주 부어 들고,

"너 내 말 들어봐라. 첫째 잔은 인사주요 둘째 잔은 합환주(혼례 때 신랑 신부가 서로 잔을 바꾸어 마시는 술)라. 이 술이 다른 술 아니라 근원근본 삼으리라. 대순(순임금)의 아황 여영 귀히귀히 만난 연분 지중타 하였으되 월로(뤌하노인, 중매쟁이)의 우리 연분 삼생가약(전생과 현생으로부터 후생에 까지 이어질 아름다운 언약) 맺은 연분 천만 년이라도 변치 아니할 연분 대대로 삼태육경(삼태는 자미궁의 주위에 있는 상태, 중태, 하태의 각각 두 별씩 도합 여섯 별로, 삼공(가장 높은 세 가지 벼슬)의 뜻으로 쓰임. 육경은 주나라 때의 여섯 장관) 자손이 많이 번성하여 자손 증손 고손이며 무릎 위에 앉혀 놓고 죄암죄암 달강달강 백세상수(상수는 나이가 썩 많다는 뜻)하다가 한날 한시 마주 누워 선후 없이 죽게 되면 천하 제일가는 연분이지."

술잔 들어 잡순 후에,

"향단아, 술 부어 너의 마누라(나이 많은 여자)께 드려라. 장모, 경사(慶事) 술이니 한 잔 먹소."

춘향 어미 술잔 들고 일희일비(기쁘고 슬픈 일이 번갈아 일어남) 하는 말이,

"오늘이 여식의 백년지고락(百年之苦樂)을 맡기는 날이라. 무슨 슬픔 있으리까마는 저것을 길러낼 제 애비 없이 설이 길러 이 때를 당하오니 영감 생각이 간절하여 비창(悲愴)하여이다."

도련님 이른 말이

"이왕지사(已往之事) 생각 말고 술이나 먹소."

춘향 모 수삼배(數三杯) 먹은 후에 도련님 통인 불러 상 물려 주면서,

"너도 먹고 방자도 먹여라."

통인 방자 상 물려 먹은 후에 대문 중문 다 닫치고 춘향 어미 향단이 불러 자리 포진시킬 제 원앙금침 잣베개(모서리를 잣나무 열매 모양으로 장식한 베개)와 샛별같은 요강 대야 자리포진을 정히 하고,

"도련님 평안히 쉬옵소서. 향단아, 나오너라, 나하고 함께 자자."

둘이 다 건너갔구나.

춘향과 도련님 마주 앉아 놓았으니 그 일이 어찌 되겠느냐. 사양(저녁 때의 비껴 비치는 햇빛)을 받으면서 삼각산 제일봉 봉학 앉아 춤추는 듯 두 활개(두 팔)를 에구부시(에굽다:조금 휘우듬하게 굽다) 들고 춘향의 섬섬옥수 바듯이(겨우) 겹쳐 잡고 의복을 공교하게 벗기는데 두 손길 썩 놓더니 춘향 가는 허리를 담쏙 안고

"나삼을 벗어라."

춘향이가 처음 일일 뿐 아니라 부끄러워 고개를 숙여 몸을 틀 제 이리 곰실 저리 곰실 녹수에 홍련화 미풍 만나 굼니는 듯 도련님 치마 벗겨 제쳐 놓고 바지 속옷 벗길 적에 무한히 실랑(실랑이질, 남을 못살게 시달리는 짓)된다. 이리 굼실 저리 굼실 동해 청룡이 굽이는 치는 듯,

"아이고 놓아요. 좀 놓아요."

"에라, 안 될 말이로다."

실랑 중 옷끈 끌러 발까락에 딱 걸고서 끼어 안고 진득이(침착하고 참을성 있게) 누르며 기지개 켜니 발길 아래 떨어진다. 옷이 활딱 벗어지니 형산의 백옥(白玉) 덩이 이 위에 비할소냐. 옷이 활씬 벗어지니 도련님 거동을 보려 하고 슬그머니 놓으면서

"아차차! 손 빠졌다."

춘향이가 침금 속으로 달려든다. 도련님 왈칵 좇아 들어 누워 저고리를 벗겨내어 도련님 옷과 모두 한데다 둘둘 뭉쳐 한 편 구석에 던져두고 둘이 안고 마주 누웠으니 그대로 잘 리가 있나. 골즙낼(뼈에서 즙을 낼 때) 제 삼승 이불(석새 삼베로 만든 이불) 춤을 추고 샛별 요강은 장단을 맞추어 청그렁 쟁쟁 문고리는 달랑달랑 등잔불은 가물가물 맛이 있게 잘 자고 났구나. 그 가운데 진진한(재미가 좋음) 일이야 오죽하랴.

하루 이틀 지나가니 어린 것들이라 신맛이 간간 새로워 부끄럼은 차차 멀어지고 그제는 기롱도 하고 우스운 말도 있어 자연 사랑가가 되었구나. 사랑으로 노는데 똑 이 모양으로 놀던 것이었다.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동정칠백(중국 동정호의 주위가 칠백 리임) 월하초(月下初)에 무산(巫山)같이 높은 사랑 목단무변수(목단은 시력이 미치지 아니함을, 무변은 끝이 닿은 데가 없음을 뜻함. 즉, 아득하게 끝없이 펼쳐져 있는 물)에 여천창애(하늘처럼 크고 넓은 바다)같이 깊은 사랑 옥산전(옥산두. 산이름) 달 밝은데 추산천봉 완월(가을산 수많은 봉우리에서 달을 구경함) 사랑 증경학무(일찌기 춤을 배움) 하올 적 차문취소(시험삼아 퉁소를 불어 봄)하던 사랑 유유낙일(느릿느릿 떨어지는 해) 월렴간(달빛으로 이루어진 주렴 사이)에 도리화개(복숭아꽃과 오얏꽃이 피어남) 비친 사랑 섬섬초월(가늘고 고운 초생달) 분백(분처럼 흼)한데 함소함태(미소를 머금고 고운 자태를 지님) 숱한 사랑 월하(月下)에 삼생 연분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없는 부부 사랑 화우동산(동산에 내리는 꽃비) 목단화같이 펑퍼지고 고운 사랑 연평 바다 그물같이 얽히고 맺힌 사랑 은하 직녀 직금(비단을 짜다)같이 올올이 이은 사랑 청루미녀(기생집의 미녀) 침금같이 혼솔마다 감친 사랑 시냇가 수양(수양버들)같이 청처지고(꽉 조이지 않고 느슨하다) 늘어진 사랑 남창북창(관청에 딸린 곳간 이름) 노적(집밖에 쌓아둔 곡식)같이 담불담불(담불:곡식을 쌓은 무더기) 쌓인 사랑 은장 옥장(은이나 옥으로 장식한 옷장) 장식같이 모모이(이모저모 모두) 잠긴 사랑 영산홍록(꽃나무 이름) 봄바람에 넘노나니 황봉백접(누런 벌과 흰 나비) 꽃을 물고 즐긴 사랑 녹수청강 원앙조 격(格)으로 마주 둥실 떠 노는 사랑 연년(年年) 칠월 칠석 야(夜)에 견우직녀 만난 사랑 육관대사 성진이가 팔선녀와 노는 사랑 역발산(산을 뽑고 세상을 덮을 만한 웅대한 기력을 형용한 말) 초패왕(항우)이 우미인 만난 사랑 당나라 당명황(당나라 제8대 황제)이 양귀비 만난 사랑 명사십리(함경남도 원산에 있는 모래톱으로 곱고 부드러운 모래와 해당화로 아름다운 경치를 이룸) 해당화같이 연연히(빛이 곱고 엷음) 고운 사랑 네가 모두 사랑이로구나. 어화 둥둥 내 사랑아 어화 내 간간(드문드문, 또는 드문드문 때를 따라) 내 사랑이로구나.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만큼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빵긋 웃고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 보자. 너와 나와 만난 사랑 연분을 팔자 한들 팔 곳이 어디 있어. 생전 사랑 이러하고 어찌 사후 기약 없을소냐. 너는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글자 되되 땅 지(地)자 그늘 음(陰)자 아내 처(妻)자 계집 녀(女)자 변이 되고, 나는 죽어 글자 되되 하늘 천(天)자 하늘 건(乾) 지아비 부(夫) 사내 남(男) 아들 자(子) 몸이 되어 계집 녀(女) 변에다 딱 붙이면 좋을 호(好)자로 만나 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 또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물이 되되 은하수 폭포수 만경 창해수(한없이 넓고 큰 바다의 물) 청계수(淸溪水) 옥계수(玉溪水) 일대장강(한줄기 긴 강) 던져두고 칠년대한(칠년 동안의 큰 가뭄) 가물 때도 일상(늘) 진진(넉넉함) 추져(물기가 배어서 눅룩하여) 있는 음양수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새가 되되 두견조도 될라 말고 요지(주나라 목왕이 서왕모와 만났다는 선경. 여기에서는 서왕모의 사자로 알려진 파랑새) 일월 청조(靑鳥) 청학(靑鶴) 백학(白鶴)이며 대붕조(가상의 큰 새) 그런 새가 될라 말고 쌍거쌍래 떠날 줄 모르는 원앙조란 새가 되어 녹수에 원앙 격으로 어화둥둥 떠 놀거든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 아니 될라오."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경주 인경(옛날 밤에 통행금지를 알리기 위하여 치던 큰 종)도 될라 말고 전주 인경도 될라 말고 송도 인경도 될라 말고 장안 종로 인경 되고, 나는 죽어 인경 망치 되어 삼십삼천 이십팔수를 응하여 길마재(서울 서쪽에 있는 고개. 안현) 봉화 세 자루 꺼지고 남산 봉화 두 자루 꺼지면 인경 첫 마디 치는 소리 그저 뎅뎅 칠 때마다 다른 사람 듣기에는 인경소리로만 알아도 우리 속으로는 춘향 뎅 도련님 뎅이라 만나 보자꾸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내 사랑이야."

"아니 그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방아 확(절구의 아가리로부터 밑바닥까지의 구멍)이 되고 나는 죽어 방아 고(공이)가 되어 경신년 경신일 경신시에 강태공조작(옛날 방아를 만들 때 방아에다 지신의 재앙을 방지하기 위하여 쓴 말. 강태공은 주나라 사람으로 문왕의 스승이다) 방아 그저 떨거덩 떨거덩 찧거들랑 나인 줄 알려무나. 사랑 사랑 내 간간 사랑이야."

춘향이 하는 말이,

"싫소. 그것도 내 아니 될라오."

"어찌하여 그 말이냐?"

"나는 항시 어찌 이생이나 후생이나 밑으로만 되라니까 재미없어 못 쓰겠소."

"그러면 너 죽어 위로 가게 하마. 너는 죽어 돌매(맷돌) 윗 짝이 되고 나는 죽어 밑 짝이 되어 이팔청춘 홍안미색들이 섬섬옥수로 맷대를 잡고 슬슬 두르면 천원지방(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짐) 격으로 휘휘 돌아가거든 나인 줄 알려무나."

"싫소. 그것도 아니 될라오. 위로 생긴 것이 부아(분한 마음) 나게만 생기었소. 무슨 년의 원수로서 일생 한 구멍이 더하니 아무것도 나는 싫소."

"그러면 너 죽어 될 것 있다. 너는 죽어 명사십리 해당화가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나는 네 꽃송이 물고 너는 내 수염 물고 춘풍(春風)이 건듯 불거든 너울너울 춤을 추고 놀아보자.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내 간간 사랑이지. 이리 보아도 내 사랑 저리 보아도 내 사랑. 이 모두 내 사랑같으면 사랑 걸려 살 수 있나. 어화 둥둥 내사랑 내 예쁜 내 사랑이야. 방긋방긋 웃는 것은 화중왕(꽃중의 왕) 모란화가 하룻밤 세우(細雨) 뒤에 반만 피고자 한 듯 아무리 보아도 내 사랑 내 간간이로구나. 그러면 어쩌잔 말이냐. 너와 나와 유정(有情)하니 정자(情字)로 놀아보자. 음상동(소리를 한가지로 하여)하여 정자 노래나 불러보세."

"들읍시다."

"내 사랑아 들어봐라. 너와 나와 유정하니 어이 아니 다정하리. 담담 장강수(출렁대는 긴 강물) 유유(아득함)에 원객정(먼 곳에서 온 나그네의 정) 하교불상송 강수원함정(강의 다리에서 서로 보내지 못하니 다만 강가의 나무가 멀리 정을 머금었도다) 송군남포불승정(님을 남포로 보내며 정을 이기지 못하였도다) 무인불견송아정(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네 나를 보내는 정을) 한태조(한나라 태조 유방) 희우정(소식의 <희우정기>에 나오는 정자 이름) 삼태육경 백관조정(모든 벼슬아치들이 모여 있는 조정) 도량(불도를 닦는 곳) 청정(깨끗하여 더럽고 속됨이 없음) 각씨 친정 친고통정(친구 간에 정을 통함) 난세평정(어지러운 세상을 평온하게 진정시킴) 우리 둘이 천년인정 월명성희(달은 밝고 별은 드물다) 소상동정 세상만물 조화정(조화롭게 자리가 정해져 있다) 근심걱정 소지(하소연하는 글) 원정(사연을 하소연함) 주어 인정 음식투정 복없는 저 방정 송정(백성끼리의 분쟁을 판결하고 처리하는 곳) 관정(관청의 뜰) 내정 외정(속 마음과 겉 마음) 애송정 천양정(둘 다 정자 이름) 양귀비 침향정(당나라 때 궁중에 있던 정자 이름) 이비의 소상정 한송정(강릉 동쪽에 있는 정자 이름) 백화만발 호춘정 기린토월(완산팔경의 하나로 전주 동쪽에 있는, 기린봉 위에 솟아 오른 달) 백운정 너와 나와 만난 정 일정(한 번 작정함) 실정(진실한 정) 논지하면(논의하면) 내 마음은 원형이정(元亨利貞) 네 마음은 일편탁정(한조각 맡긴 정) 이같이 다정타가 만일 즉 파정(정이 틀어짐)하면 복통절정(끊어진 정을 마음 아파함) 걱정되니 진정으로 원정(原情)하잔 그 정자(情字)다."

춘향이 좋아라고 하는 말이

"정(情) 속은 도저(아주 잘 되어서 매우 좋다)하오. 우리 집 재수 있게 안택경(무당이 터주를 위로할 때 읽는 경문)이나 좀 읽어주오."

도련님 허허 웃고

"그 뿐인 줄 아느냐. 또 있지야. 궁자(宮字) 노래를 들어 보아라."

"애고 얄궂고 우습다. 궁자 노래가 무엇이오?"

"네 들어 보아라. 좋은 말이 많으니라. 좁은 천지 개탁궁(좁은 천지가 열리는 궁) 뇌성벽력 풍우 속에 서기(瑞氣) 삼광(해, 달, 별의 세 빛) 풀려 있는 엄장(몸을 가지는 태도가 장대함)하다 창합궁(하늘에 있는 궁전 이름) 성덕이 넓으시사 조림(군주가 국토와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 어인 일고. 주지객(술이 연못을 이룰 만큼 굉장하게 차린, 술잔치에 온 손님들) 운성(구름같이 모여듦)하던 은왕의 대정궁 진시황 아방궁 문천하득(천하를 얻게 된 까닭을 물음)하실 적에 한태조 함양궁(함양에 있던 궁전으로, 초패왕이 불을 놓아 삼개월 동안이나 불탔음) 그 곁에 장락궁(섬서성 장안현 서북쪽 옛 성중에 있다) 반첩여의 장신궁(반첩여가 참소당하여 물러가 태후를 모셨다고 하는 궁) 당명황제 상춘궁 이리 올라 이궁(임금의 유행을 위하여 궁성에서 떨어진 곳에 지은 궁전) 저리 올라서 별궁(왕이나 왕세자의 가례 때에 비빈을 맞아들이는 궁전) 용궁 속의 수정궁 월궁(月宮) 속의 광한궁 너와 나와 합궁(부부가 잠자리를 같이 함)하니 평생 무궁이라. 이 궁 저 궁 다 버리고 네 양각(두 다리) 새 수룡궁에 나의 심줄 방망이로 길을 내자꾸나."

춘향이 반만 웃고

"그런 잡담은 말으시오."

"그게 잡담 아니로다. 춘향아, 우리 둘이 업음질(번갈아 서로 업어주는 짓)이나 하여 보자."

"애고, 참 잡상스러워라. 업음질을 어떻게 하여요."

업음질 여러번 한성부르게(한 것처럼) 말하던 것이었다.

"업음질 천하 쉬우니라. 너와 나와 활씬 벗고 업고 놀고 안고도 놀면 그게 업음질이야."

"애고, 나는 부끄러워 못 벗겠소."

"에라, 요 계집아이야 안될 말이로다. 내 먼저 벗으마."

버선 대님 허리띠 바지 저고리 훨씬 벗어 한 편 구석에 밀쳐 놓고 우뚝 서니 춘향이 그 거동을 보고 삥긋 웃고 돌아서며 하는 말이

"영락없는 낮도깨비같소."

"오냐 네 말 좋다. 천지만물이 짝 없는 게 없느니라. 두 도깨비 놀아 보자."

"그러면 불이나 끄고 노사이다."

"불이 없으면 무슨 재미 있겠느냐, 어서 벗어라, 어서 벗어라."

"애고, 나는 싫어요."

도련님 춘향 옷을 벗기려 할 제 넘놀면서 어룬다. 만첩청산 늙은 범이 살찐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는 없어 먹든 못하고 흐르릉 흐르릉 아웅 어루는 듯 북해흑룡이 여의주를 입에다 물고 채운간(빛이 고운 구름 사이)에 넘노는 듯 단산(수은과 유황의 화합물인 단사가 나는 산) 봉황이 죽실(대나무 열매의 씨) 물고 오동 속에 넘노는 듯 구고(으슥한 늪지) 청학이 난초를 물고서 오송간(梧松間)에 넘노는 듯 춘향의 가는 허리를 후리쳐다 담쏙 안고 기지개 아드득 떨며 귓밥도 쪽쪽 빨며 입술도 쪽쪽 빨면서 주홍같은 혀를 물고 오색단청 순금장(순금으로 장식한 옷장) 안에 쌍거쌍래 비둘기같이 꾹꿍 끙끙 으흥거려 뒤로 돌려 담쏙 안고 젖을 쥐고 발발 떨며 저고리 치마 바지 속곳까지 활씬 벗겨 놓으니 춘향이 부끄러워 한편으로 잡치고 앉았을 제 도련님 답답하여 가만히 살펴보니 얼굴이 복짐(심한 운동으로 얼굴이 상기되고 좀 부어오른 듯이 보이는 모습)하여 구슬땀이 송실송실 앉았구나.

"이 애 춘향아, 이리 와 업히거라."

춘향이 부끄러하니

"부끄럽기는 무엇이 부끄러워. 이왕에 다 아는 바니 어서 와 업히거라."

춘향을 업고 치키시며

"어따, 그 계집아이 똥집 장히 무겁다. 네가 내 등에 업히니까 마음이 어떠하냐?"

"한껏나게 좋소이다."

"좋냐?"


"좋아요."

"나도 좋다. 좋은 말을 할 것이니 네가 대답만 하여라."

"말씀 대답하올 테니 하여 보옵소서."

"네가 금(金)이지야?"

"금이라니 당치 않소. 팔년풍진 초한시절(초나라와 한나라 간에 팔년 동안 벌어졌던 전쟁)에 육출기계(여섯 번의 기이한 계책) 진평(전한의 공신)이가 범아부(범증. 초나라 항우의 모신)를 잡으려고 황금 사만을 흩었으니 금이 어이 남으리까."

"그러면 진옥(眞玉)이냐?"

"옥이라니 당치 않소. 만고영웅 진시황이 형산의 옥을 얻어 이사(초나라 사람. 진나라의 객경이 되어 시황제를 도와 천하를 통일하고 군현제를 창립함)의 명필로 수명우천기수영창(명을 하늘로부터 받았으니 오래 살 것이며 길이 번창하리로다.)이라. 옥새(임금의 도장)를 만들어서 만세유전(영원히 후손에게 물려줌)을 하였으니 옥이 어이 되오리까."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해당화냐?"

"해당화라니 당치 않소. 명사십리 아니거든 해당화가 되오리까."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밀화 금패(누르고 투명한 호박의 한 가지) 호박 진주냐?"

"아니 그것도 당치 않소. 삼태육경 대신재상 팔도방백(팔도의 관찰사) 수령님네 갓끈 풍잠(망건의 앞이마에 대는 장식) 다 하고서 남은 것은 경향의 일등명기 지환(가락지) 벌 허다히 다 만드니 호박 진주 부당하오."

"네가 그러면 대모 산호냐?"

"아니 그것도 내 아니오. 대모 간 큰 병풍 산호로 난간하여 광리왕(남해의 해신) 상량문에 수궁보물 되었으니 대모 산호가 부당이오."

"네가 그러면 반달이냐?"

"반달이라니 당치 않소. 금야 초생 아니거든 벽공(푸른 하늘)에 돋은 명월 내가 어찌 기오리까."

"네가 그러면 무엇이냐. 날 호려 먹는 불여우냐? 네 어머니 너를 낳아 곱도 곱게 길러내어 나만 호려 먹으라고 생겼느냐. 사랑 사랑 사랑이야 내 간간 내 사랑이야. 네가 무엇을 먹으려느냐. 생률 숙률을 먹으려느냐. 둥글둥글 수박 웃봉자(수박 윗 부분에 딸린 꽁지) 대모장도 드는 칼로 뚝 떼고 강릉 백청(희고 품질이 좋은 꿀)을 두루 부어 은수저 반간자(수저의 일종)로 붉은 점 한 점을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시금털털 개살구를 먹으려느냐?"

"아니 그것도 내사 싫소."

"그러면 무엇을 먹으려느냐. 돝 잡아 주랴 개 잡아 주랴. 내 몸 통채 먹으려느냐."

"여보 도련님, 내가 사람 잡아먹는 것 보았소?"

"예라 요 것, 안 될 말이로다. 어화 둥둥 내 사랑이지. 이 애 그만 내리려무나. 백사만사(모든 일)가 다 품앗이가 있느니라. 내가 너를 업었으니 너도 나를 업어야지."

"애고, 도련님은 기운이 세어서 나를 업었거니와 나는 기운이 없어 못 업겠소."

"업는 수가 있느니라. 나를 돋워 업으려 말고 발이 땅에 자운자운하게(닿을 듯 말 듯 하게) 뒤로 잦은 듯하게 업어다오."

도련님을 업고 툭 추어 놓으니 대중이 틀렸구나.

"애고, 잡상스러워라."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내가 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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