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書畵 雲谷 姜張遠

 

 
작성일 : 12-03-11 18:40
빈센트 반 고호5
 글쓴이 : 운곡
조회 : 662  
Road with Man Walking, Carrige, Cypress, Star and Crescend Moon
Auvers-sur-Oise
Oil on canvas May 1890
Rijksmuseum Kröller-Müller Otterlo Netherlands
“최근에는 옆으로 별 하나가 보이는 사이프러스나무 그림을 그리고 있네.
눈에 뜨일락 말락 이제 겨우 조금 차오른 초생 달이 어두운 땅에서 솟아난 듯 떠 있는 밤하늘,
그 군청색 하늘 위로 구름이 흘러가고, 그 사이로 과장된 광채로 반짝이는 별 하나가 떠 있지.
분홍색과 초록의 부드러운 반짝임이야.
아래쪽에는 키 큰 노란색 갈대들이 늘어선 길이 보이고 갈대 뒤에는
파란색의 나지막한 산이 있지.
오래된 시골 여관에서는 창으로 오렌지 색 불빛이 새어나오고,
키가 무척 큰 사이프러스나무가 꼿꼿하게 서 있네.
길에는 하얀 말이 묶여 있는 노란색 마차가 서 있고, 갈 길이 저물어 서성거리는 나그네의 모습도 보인다네.
아주 낭만적이고 프로방스 냄새가 많이 나는 풍경이지.”
-1890. 6-
고흐는 프로방스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서 그린 마지막 작품 중의 하나인 이 그림을
유명한 비평가 알베르 오리에르에게 선물로 주었다.
알베르는 [르 메르퀴르 드 프랑스] 지에 고흐에 관한 최초의 진지한 기사를 써서
그에게 많은 용기를 주었다.
"그는 위대한 화가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술과 팔레트, 자신의 성격에 스스로 황홀해지는,
상상과 환상 속에 사는 광신적인 신봉가이다."
반 고흐의 전 생애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단 한 번의 논평이었다.
Wheat Field under Clouded Sky
Oil on canvas 1890
100.5 x 50 cm
Vincent van Gogh, Amsterdam, the Netherlands
“건강을 위하여 뜰에서 제작을 하고, 꽃이 피는 것을 보기도 하는 것은 정말 좋은 일입니다.
바다와 같은 넓은 언덕을 향하여 펼쳐져 가는 보리밭의 그림에 지금 열중하고 있습니다.”
최후의 3점의 대작의 하나로, 이것도 어두운 폭풍 속에 있는 밀밭이다.
“저는 완전히 이 밀밭의 대작에 소모당하고 있습니다”
라고 그는 어머니에게 써 보내고 있었다.
그가 자살을 시도한 것은 그로부터 며칠 후였다.
이 작품은 색채 면에서 '까마귀가 있는 밀밭'만큼 불길해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공백감은 불길 이상의 종언의 예고와도 같은 작품이다.
Red Vineyards of Arles
Oil on canvas 1888
The Pushkin Museum of Fine Art Moscow Russia
1888년 2월 반 고흐는 무절제 했던 파리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프로방스(Provence)거쳐 아를로 떠났다.
맑은 하늘아래 그의 영혼과 예술 사이에 또 다른 교감이 시작되고
그곳의 따뜻한 태양아래에서 내면의 빛을 되찾게 되었다.
이 작품은 1888년 폴 고갱과 함께 생활하며 아를의 야외에서 그린 작품이다.
‘비가 내린 뒤 석양이 땅을 보라색으로 바꾸고
포도 잎을 와인처럼 붉게 물들일 때 그린 것이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테오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선물한 그림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그가 생전에 그린 1500여 점의 그림 중에서
테오가 단 400프랑에 팔았던 유일한 작품이다.
테오는 이 작품을 1890년에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인 전에 출품했는데,
그 때 반 고흐와 친분을 쌓고 있었던 시인 외젠 보흐의 누이이자
벨기에 인상주의 여류화가인 안나 보흐가 구입했다.
이후 이작품은 한 러시아 사업가를 통해 러시아 정부가 소유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모스크바의 푸슈킨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Wheatfield with Crows
Oil on canvas July 1890
50.5 x 103 cm
Van Gogh Museum Amsterdam Netherlands
고흐가 자살하기 전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로 죽음의 공포와 그에 반한 삶의 의지를 그린 것이다.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와서는 새로운 시도로
가로로 긴 캔바스에 그려 밀밭의 광활함을 강조했다.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그렸으나
Wheat Field under Clouded Sky 그림의 평온함과는 상반된 심리상태를 보인다.
고흐의 그림은 항상 자신의 내면을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세상을 향한 소통의 매개체였다.
다만 세상으로부터 적절한 응답을 못 들었을 뿐...
“그것은 폭풍의 하늘에 휘감긴 밀밭의 전경을 그린 것으로
나는 깊은 슬픔과 극도의 고독을 표현하려고 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는 전경의 세 갈래의 갈림길은
자살 직전 그의 절망감을 강하게 상징하는 듯하다.
, 대지가 폭풍 속에서 바다처럼 사납게 일렁이는 여기에선
요동치듯 거칠고 절박한 붓질로 그려진 어둡고 낮은 하늘과 불길한 까마귀 떼,
불안한 화면을 통하여 그는 영혼의 혼란과 고독, 슬픔을 절규하고 있다.
“앞날의 예감도 어둡다. 나는 미래를 행복한 빛 속에서 보는 것은 전혀 되지 않는다.”
끝없는 절망감은 그를 못견디게 했다.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산이 드문 나라이다.
어디를 바라보나 까마득한 지평선 끝까지 파란 논밭이 이어져 있다.
군데군데 집과 풍차와 숲이 흩어져 있고, 강물이 언제나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그런 지평선 끝에 빨갛게 타는 저녁 해가 하늘을 온통 핏빛으로 물들이고
조용히 가라앉으려는 순간이었다.
“야, 저것 좀 봐라! 얼마나 아름다우냐?”
풀밭에서 공차기를 하며 놀고 있던 대 여섯 명의 어린이 중 한 아이가 외쳤다.
“어쩌면 저녁 해가 저렇게 빨갈까?”
공기가 맑은 탓인지 오늘따라 저녁 해가 유난히도 아름답게 보였다.
어린이들은 저마다 한마디씩 말했다.
“정말 아름답구나!”
“피보다 더 빨갛지?”
그러자 아까부터 숨을 죽이고 뚫어지게 저녁 해를 바라보고 있던 한 아이가,
“틀려, 저건 빨강 빛이 아니고 노랑 빛이야.”하고 나섰다.
“뭐? 노랑 빛깔이라고? 네 눈엔 저게 노랗게 보이니?”
여러 아이들은 놀란 얼굴로 그 아이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보이는 게 다 뭐냐? 정말 빛깔이 노랑인데...”
“뭐라고? 저건 누가보든지 빨강빛깔이야. 그렇지 얘들아?”
“응, 그렇고말고. 저건 빨강이야.”
어린이들은 모두 빨강 빛깔이라고 말했다.
“네 눈이 좀 이상한 모양이구나.”
“이상한 건 내가 아니고 너희들이야. 그래서 너희들은 정말 빛깔을 보지 못하고 있어.”
저녁 해를 노랑빛깔이라고 우겨대는 그 어린이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서
저녁놀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어린이가 바로 뒷날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가 된 빈센트 반 고흐였다.
반 고흐는 네델란드의 어느 가난하고 엄격한 목사의 집에서 칠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불행했던 인생은, 자기가 태어나기 일 년 전에 죽었던 형으로 부터 시작한다.
자신보다 1년 전에 태어난 형이 사망한 뒤 태어난 고흐는
어머니로부터 대체된 아이라는 느낌을 매번 받아야 했다.
사망한 형의 이름까지 물려받은 고흐는 일요일마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묘지를 봐야했고,
어머니에게 죽은 형의 존재를 뛰어넘는 사랑을 바랬지만, 형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진지하고 조용하고 생각이 깊었던 반 고흐는 성격이 점점 어두워졌다.
가난으로 인해 열다섯 살 되던 해에 학교를 그만 두고
목사이던 아버지를 따라 성직자가 되기 위해 노력했지만
제도화된 종교 사회에서의 이면의 그늘을 받아들일 수 없어
목사의 길을 포기하게 되었다.
그 후 삼촌의 도움으로 구필 앤 씨(Goupil & Cie)에 일자리를 얻어
아트 딜러로 런던에서 일을 한 적도 있다.
그의 종교적 열성은 계속되어 신학공부를 위해 평 선교사로
잠간 동안 석탄 광산마을에서 광부들과 기숙하며 선교활동을 하기도 한다.
브뤼셀에 있는 로열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서 그림공부를 하면서
그림만이 구원의 길이라 생각하여
그림을 통해 하느님에게 봉사하기를 원했고, 하느님에게 인도하는 화가가 되기를 바랐다.
선생의 지도도 없이 독학과 독습으로 땅을 일구는 농부처럼 그림을 그려 나간다.
적은 돈, 적은 힘일지라도 온통 독서와 그림에 쏟아 붓는다.
“끓어오르는 내면의 불길, 어떻게 분출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나는 억지로 그 불길을 다잡고 있다.”
첫 주요 작품이 그 유명한 <Potato-Eaters 감자 먹는 사람들>이다.
그때부터 동생 테오의 재정적 도움을 받으며 서신왕래와 함께 본격적인 화가의 길로 들어선다.
열성적으로 많은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 하지만 지속되는 가난함과
미래에 대한 어두운 현실은 결국 그에게 우울증이라는 정신장애를 가져다주었다.
1986년 파리로 옮겨 독학으로 그림 공부를 시작하면서 인상파의 아름다운 색채와
화려한 일본 미술을 접하게 되고 그것이 그의 화려하고 밝은 색채를 쓰는 계기가 되었다.
고갱, 쇠라, 피사로 등..인상파 작가들과 전시도 하면서 활발한 교류도 하지만
무절제한 파리생활에 지친 고흐는
1888년 2월 그동안 그린 200여점의 작품을 가지고 남프랑스의 아를로 떠난다.
아를에서의 활기찬 밝은 햇살과 풍경은 과한 음주와 흡연으로 쇠약해진 그를
흥분시키며 색깔은 점점 강열하고 밝아졌다.
고흐는 ‘노란 집’에 세 들어 고갱을 기다리며 유명한 ‘해바라기’를 연작으로 그린다.
고갱과 같이 지내며 예술에 관한 견해차이로 격렬하게 논쟁이 시작되어
마침내 귀를 자르는 사건이 발생했다. 고갱은 같이 기거한지 두 달 만에 떠났고
그 충격으로 환각과 망상에 시달리다가 생 레미(Saint-Remy) 지방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스스로 찾아가 입원을 했다.
1년 남짓 정신병원에 고립 되어 있으면서 그의 작품은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포함해
소용돌이치는 특징으로 강렬한 색과 결합되어 감정을 더욱 격렬하게 표현한다.
더욱 열정적으로 꿈틀거리는 듯한 선은 별의 광채를 한층 두드러지게 하고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의 이미지을 떠오르게 한 곳이다.
1890년 5월, 반 고흐는 정신병원을 떠나 파리 근교의 오베르(Auvers-sur-Oise)의
닥터 가셰(Paul Gachet) 가까이 옮겼다.
그곳에서 가셰 박사의 깊은 이해로 마음의 안정을 갖는 듯 했으나 얼마가지 못했다.
비록 그가 전 인생에 걸쳐 정신적인 병으로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의 마지막 몇 년 동안 이러한 고통은 더욱 심각해져갔다.
능력의 절정에서 예술가의 좌절이 더해진 결과 그 당시 그의 심리 상태는 점점 더 악화되었고,
오베르로 온지 두 달 만에 반 고흐는 37세인 1890년 7월27일에
밀밭으로 가득한 들로 뛰쳐나가 가슴에 리볼버를 당겼다.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오후,
마을 위로 누런 밀밭의 대기가 한방의 총소리로 흩어질 때 아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사나이는 서른일곱 살의 빈센트 반 고흐였다.
그러나 그는 죽지 않았고 얼마나 치명적인 상태인지 알지 못한 채 라부 여인숙으로 돌아와
이틀 뒤 동생 테오가 바라보는 가운데 마지막 숨을 거두었다.
많이 아프고 짧았던 비운의 삶, 그는 그렇게 갔다!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있는 그 자체다.”
“La tristesse durera toujours(고통은 영원하다, The sadness will last forever)”
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불멸의 화가이자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
렘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한 네덜란드 화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인상주의, 야수파, 추상주의, 표현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고흐다.
불꽃같은 정열과 격렬한 필치로 눈부신 색채를 표현했으며,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제작된 그의 작품들은
강렬한 색채, 거친 붓놀림, 뚜렷한 윤곽을 지닌 형태를 통하여
그를 자살까지 몰고 간 아픈 영혼의 고통을 인상 깊게 전달하고 있다.
서른일곱 해의 짧은 생을 살면서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며 늘 고독했던 그는
노동자와 농민 등 하층민의 모습과 자연의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소박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고,
영혼을 담아 그림을 완성했던 그는 그림을 통해서만 말을 할 수 있는 고독한 사람이었다.
종교적인 신념,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했던 고흐의 삶은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채,
고독과 가난 속에서 온전히 예술을 위해 바쳐졌다.
“예술은, 사람의 영혼에서 솟아나오는 것”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창조하고 행동하는 것”
완전히 자신을 던져버린 채 작업을 했다. 영혼을 다해 그림을 그린 것이다.
바로 빈센트 반 고흐의 고뇌와 열정의 강열한 랩소디이다.
그러나 정작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인정받지 못하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후에야
그의 작품들은 불후의 명작이 되었고, 삶은 신화로 남았다.
한 인간의 고뇌와 슬픔이 내 마음을 이렇게 울린 적은 없는 것 같다.
내가 고흐가 되어 울다가, 가슴이 답답하다가... 우울하다가,
희망을 가져보다가 또 절망하다가....
마치 내가 그의 처연한 인생 여정을 함께 밟아온 것처럼 마음이 같이 치달았다.
온통 고흐 생각으로 가득 차서 그의 아름답고 슬픈 영혼 속으로
빨려들 듯 휘말려 들어갔다.
어질고 연약한 그가 예술의 열정으로 얼마나 눈물겹게 그림을 사랑하였는지,
세상과 사람과 사물을 얼마나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는지....
그가 얼마나 자기 삶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애썼는지...
그러나 얼마나 아팠는지....
자신조차 넘치고 제어하지 못하는 감정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가 파괴되고
또한 그의 넘치는 감정 때문에
깊은 외로움에서 고통스러워하는 하는 예술가로서의 숙명.
감당할 수없이 넘치는 감정으로 인해 사람과의 관계에 극심한 절망과 외로움을 느낀 나머지
그의 삶은 더 고독해지고 더 어려워지고 더 우울해 졌다.
너무나 순수하고 연약하여 부서지기 쉬운 영혼을 가졌던 반 고흐.
그러기에 존재에 대한 격한 사랑을 견뎌낼 수 없었던 사람,
그렇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하늘의 운행과 바람의 숨결과 별의 노래를
온몸으로 느끼고 또 그려낼 수 있었던 화가.
바로 그런 진실함이 우리에게 어떤 설명할 수 없는 엄숙함으로,
처연함으로 다가오는 그.
그의 작품이 지닌 진정한 가치는
반 고흐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영혼에, 삶의 이치에, 하늘의 부름에 진실했던 작가가 아니었을까.
아침에 눈을 뜨면... 가만히 생각하면... 뻐근하게 저려오던 순간들이
곧장 내 아픔이었다.
고흐가 내 안에서 아프게 울었다.
또 다시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미처 깨닫지 못했던,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고흐의 모습에 대해 새로운 깨달음을 느낀다.
‘광기의 화가’ ‘고독한 존재’였던 화가라고 흔히 생각하는 고흐가
실은 그림과 편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그 어느 누구보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는 진실을 우린 알아야 하지 않을까.
미치광이 같은 광기어린 예술가가 아닌,
누구보다 미술을 사랑하고 아름다운 인생을 산 예술가인 고흐의 삶과 작품,
비록 고독에 몸부림치며 좌절과 불안이 그의 짧았던 삶을 지배한 것 같지만
그의 내면에서 고이 숨 쉬던 그만의 모습을 나는 본 것만 같다,
주어진 삶 앞에 진지하게 탐구하며 지극히 성실했던 참다운 자세,
순수했기에 적당한 타협을 싫어했던 고지식함,
순수했기에 거침없던 자기감정의 표출....
남다른 그의 과열된 열정 등...
세상이 쉽게 말하는 소위 능하지 못해서, 괴팍한 외골수여서....
그래서 주변과 부딪치며 상처를 받아야 했던 그.
순수했기에 상처마저도 남다르게 크게 받았을 고흐 아닐까!
이러한 모습들이 객관적인 시각의 평범한 타인들의 눈에는 과연 어떻게 비쳐졌을까,
그의 뜨겁고 순수했던 여린 감성을 과연 누가 알아 줬을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꽃을 사랑하고
푸르고 너른 하늘 밑 끝없이 이어지는 평화로운 밀밭,
높은 하늘을 향해 끝없이 솟아있는 늘 푸른 사이프러스,
수없이 반짝이는 별 밭들, 해바라기....편지 쓸 때의 그 아름답고 따뜻하던 정이어린 마음....
‘광기의 화가’라는 반 고흐,
그의 안에서 고이 숨 쉬고 있는... 바로 자연인의 아름다운 맑은 영혼이었다.
끝없는 나락으로 추락하던 좌절과 기댈 데 없던 고독, 순간 엄습하던 우울, 불안을
오로지 붓 한 자루에 매달려서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흔들리던 그의 맑은 영혼을 꿈틀대는 붓질로 쏟아내던 고흐!
영혼이 아플수록 붓질은 더 꿈틀대며 휘몰리었고
더욱 더 강렬한 색채로 눈이 부신 작품들을 탄생 시켰다.
그건 살아서 꿈틀대는 그의 아픈 영혼의 외침이었다.
고통으로 부서지는 영혼의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매달리듯 흔들리는 영혼을 열정적으로 쏟아 낼 때만은 그래도 환희의 순간이었고
붓 자루에 물감을 듬뿍 묻힐 때만은 행복했던 고흐.
오직 그림만이 그의 위안이요, 영혼의 안식이고 구원이고 사랑이었다.
고흐가 고흐로....‘진정한 나’ 고흐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그림을 그리면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이 나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하드라도 아린 이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써도 써도 끝이 없다.
푸른 하늘 우러르면 이 아픈 마음 달래질까!
하늘은 저토록 푸르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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