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書畵 雲谷 姜張遠

 

 
작성일 : 05-03-07 09:30
원각경(2)
 글쓴이 : 雲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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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각경 (2)


제6. 청정혜보살장

수행의 계위

이에 청정혜보살(淸淨慧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무릎을 세워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께서 저희들을 위하시어 널리 이같은 불가사의한 일을 설해 주시니, 본래 보지 못한 바이며 본래 듣지 못한 바입니다. 저희들이 이제 부처님의 간곡하신 가르침을 받고 몸과 마음이 태연하여 큰 요익을 얻었습니다. 원하오니 이 법회에 온 일체 대중들을 위하여 법왕의 원만한 각성(覺性)을 거듭 말씀해주소서. 일체 중생과 모든 보살들과 여래 세존의 증득하는 바와 얻는 바가 어떻게 차별합니까? 말세 중생들로 하여금 이 성스러운 가르침을 듣고 수순 개오하여 점차 능히 들어가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투지하며 이와 같이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에 세존께서 청정혜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선재라, 선남자여. 그대들이 이에 모든 보살들과 말세 중생들을 위해서 여래에게 점차와 차별을 물으니 그대는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이에 청정혜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원각자성은 성(性)이 아닌 성으로 있어서 모든 성을 따라 일어나니 취함도 없고 증득함도 없는지라, 실상 가운데에는 실제로 보살과 모든 중생들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보살과 중생이 다 환화(幻化)이니, 환화가 멸하므로 취하고 증득할 자도 없느니라. 비유하면 안근이 자기 눈을 보지 못함과 같아서 성품이 스스로 평등하여 평등한 자가 없느니라. 중생이 미혹하고 전도되어 능히 일체 환화를 제하여 멸하지 못하니, 멸함과 멸하지 못함에 대한 허망한 공용(功用) 가운데 문득 차별을 나타내거니와, 만약 여래의 적멸에 수순함을 얻으면 진실로 적멸함과 적멸한 자도 없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옛부터 망상의 나와 나를 사랑하는 것을 말미암아 일찍이 스스로 생각에 생하고 멸함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미워하고 사랑함을 일으켜서 오욕에 탐착하느니라. 만약 선우(善友)가 청정한 원각의 성품을 가르쳐 깨닫게 함을 만나서 일어나고 멸함을 밝히면 곧 이 삶의 성(性)이 스스로 노고로운 줄 알게 되리라. 만약 또 어떤 사람이 노고로움이 영원히 끊어져서 법계의 청정함을 얻으면 곧 그 청정하다는 견해가 자기의 장애가 되어서 원각에 자재하지 못하니, 이것을 범부가 원각의 성품에 수순하는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보살이 견해가 장애가 됨에 비록 견해의 장애[解碍]를 끊었으나 오히려 깨달음을 보려는데 머물러서 깨달으려는 장애[覺碍]가 걸림이 되어 자재하지 못하니, 이것을 보살로서 지(地)에 들어가지 못한 자가 원각의 성품에 수순하는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비춤이 있고[有照] 각이 있음[有覺]을 모두 장애라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항상 깨달음에 머무르지 아니하여 비추는 것과 비추는 자가 동시에 적멸하느니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스스로 그 머리를 끊음에 머리가 이미 끊어진 까닭에 능히 끊는 자마저 없는 것과 같다. 곧 장애가 되는 마음으로 스스로 모든 장애를 멸함에 장애가 이미 멸하면 장애를 멸하는 자도 없다. 수다라의 가르침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으니 만일 다시 달을 보면 가리킨 것은 필경 달이 아님을 분명히 아는 것과 같아서, 일체 여래의 갖가지 언설로 보살들에게 열어 보임도 이와 같다. 이것을 보살로서 이미 지(地)에 들어간 자가 원각의 성품에 수순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여, 일체 장애가 곧 구경각이니 얻은 생각과 잃은 생각이 해탈 아님이 없으며, 이루어진 법과 파괴된 법이 모두 이름이 열반이며, 지혜와 어리석음이 통틀어 반야가 되며, 보살과 외도가 성취한 법이 한가지 보리며, 무명과 진여가 다른 경계가 없으며, 모든 계, 정, 혜와 음, 노, 치[淫怒癡)가 함께 범행이며, 중생과 국토가 동일한 법성이며, 지옥과 천궁이 다 정토가 되며, 성품이 있는 이나 없는 이나 모두 불도를 이루며, 일체 번뇌가 필경 해탈이라, 법계 바다[法界海]의 지혜로 모든 상을 비추어 요달함이 마치 허공과 같으니, 이것을 여래가 원각에 수순하는 것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다만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일체시(一切時)에 머물러서 망념을 일으키지 말며, 또한 모든 망심을 쉬어 멸하려 하지도 말며, 망상 경계에 머물러 알려고 하지도 말며, 요지할 것이 없음에 진실함을 분별하지도 말지니라. 저 중생들이 이 법문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녀[信解受持] 두려움을 내지 않으면, 이것이 곧 원각의 성품을 수순함이니라.
선남자여, 그대들은 마땅히 알아라. 이러한 중생들은 이미 일찍이 백천만억 항하사 모든 부처님과 대보살들에게 공양하여 온갖 공덕의 근본을 심었으니, 부처님께서 설하시되 이 사람은 이름이 일체 종지(一切種智)를 성취함이라고 하시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거듭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청정혜여, 마땅히 알아라.
원만한 보리의 성품은
취할 것도 없고 증득할 것도 없으며
보살과 중생도 없으나
깨닫고 깨닫지 못할 때에
점차 차별이 있으니
중생은 견해가 장애 되고
보살은 깨달음을 여의지 못하며
지(地)에 들어간 이는 영원히 적멸하여
일체상에 머물지 않음이요
대각은 다 원만하여
이름이 두루 수순함이 되느니라.

말세의 중생들이
마음에 허망함을 내지 않으면
부처님께서 이러한 사람은
현세에 곧 보살이라
항하사 부처님께 공양하여
공덕이 이미 원만했다고 하시니라.
비록 많은 방편이 있으나
다 수순하는 지혜[隨順智]라고 이름하느니라.


제7. 위덕자재보살장

세 가지 관행법

그때 위덕자재보살(威德自在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세워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께서 널리 저희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원각의 성품에 수순함을 널리 분별하시어 보살들로 하여금 마음의 광명을 깨닫게 하시니 부처님의 원음(圓音)을 받아서 닦아 익히지 않고도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비유하면 큰 성(城)에 밖으로 네 문이 있어 방소를 따라 오는 이가 한 길에 그치지 않음과 같아서, 일체 보살이 불국토를 장엄하고 보리를 이루는 것도 한 가지 방편만이 아닙니다.
오직 원하옵니다. 세존께서 널리 저희들을 위하여 일체의 방편 점차와 아울러 수행하는 사람이 모두 몇 종류가 있는가를 말씀하셔서, 이 모임의 보살과 말세의 중생들로서 대승을 구하는 이로 하여금 속히 깨달음을 얻어서 여래의 대적멸 바다에 노닐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며 오체투지하고, 이같이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위덕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 선재라, 선남자여. 그대들이 보살들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와 같은 방편을 물으니, 자세히 들어라. 그대들에게 말해 주리라."
이에 위덕자재보살이 가르침을 받들고 기뻐하며 대중들과 함께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위없는 묘각이 시방에 두루 하여 여래와 일체 법을 출생하나니, 동체(同體)이므로 평등하여 모든 수행에 실제로 둘이 없지만 방편으로 수순하는 데는 그 수가 무량하나, 돌아갈 바를 원만히 거둔다면 성품을 따라 차별함이 마땅히 세 종류가 있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서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 고요함을 취하여 수행을 삼으면, 모든 망념이 맑아진 까닭에 심식[識]이 번거롭게 요동했음을 깨닫고 고요한 지혜가 생겨나서 몸과 마음의 객진(客塵)이 이로부터 영원히 소멸하므로 문득 안으로 적정한 경안(輕安)을 일으키느니라. 적정을 말미암아 시방 세계의 모든 여래의 마음이 그 가운데 나타남이 거울 속의 영상과 같으니, 이 방편은 사마타(奢摩他)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서 심성(心性)과 근진(根塵)이 다 환화로 인한 것임을 지각하고, 곧 온갖 환을 일으켜서 환을 제거하며, 온갖 환을 변화하여 환의 무리를 깨우쳐 주면 환을 일으키는 까닭에 안으로 대비의 경안을 능히 일으키느니라. 일체 보살이 이로부터 수행을 일으켜 점차 증진하나니, 환인 것을 관찰함은 환과 같지 않은 까닭이며, 환과 같지 않다고 관하는 것도 다 환인 까닭에 환의 모습을 영원히 여의느니라. 이 보살들이 원만히 하는 묘한 수행은 흙이 싹을 자라게 하는 것과 같으니, 이 방편은 삼마발제(三摩鉢提)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보살들이 청정한 원각을 깨달아 청정한 원각의 마음으로 환화(幻化)와 고요한 모습들에 집착하지 아니하면, 몸과 마음이 다 걸림이 되는 줄 분명히 알며 지각없는 명(明)은 온갖 장애에 의지하지 아니하여 장애와 장애없는 경계를 영원히 초과하느니라. 수용하는 세계와 몸과 마음이 서로 티끌 세상에 있으나, 마치 그릇 속의 쇠북소리가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이 번뇌와 열반이 서로 걸리지 않으니 안으로 능히 적멸의 경안을 일으키느니라. 묘각이 수순하는 적멸의 경계는 나와 남의 몸과 마음으로 능히 미치지 못하는 바이며, 중생과 수명이 다 들뜬 생각이니 이 방편은 선나(禪那)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이 세 가지 법문은 모두 원각을 친근하고 수순함이라. 시방의 여래께서 이로 인하여 성불하시며 시방 보살들의 갖가지 방편인 일체 같고 다른 것이 다 이 세 가지 사업(事業)에 의한 것이니, 만일 원만히 증득하면 곧 원각을 이루리라.
선남자여, 가령 어떤 사람이 거룩한 도를 닦아서 백천만억의 아라한과와 벽지불과를 교화해 성취케 하더라도 이 원각의 무애 법문을 듣고 한 찰나 사이에 수순하고 닦아 익힌 것만 같지 못하느니라."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위덕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아라.
위없는 대각의 마음은
본제(本際)가 두 모습 없으나
온갖 방편에 따라서
그 수가 무량하니
여래가 모두 열어 보임에
문득 세 종류가 있느니라.

적정(寂靜)인 사마타는
거울이 모든 영상을 비춤과 같고
환(幻) 같은 삼마제는
싹이 점점 자라남과 같고
선나의 오직 적멸한 것은
그릇 속의 쇠북소리와 같나니
세 가지 묘한 법문이
다 원각의 수순함이니라.

시방의 모든 여래와
대보살들이
이로 인하여 도를 이루나니
세 가지 일을 원만히 증득하므로
구경 열반이라 하느니라.


제8. 변음보살장

스물 다섯 가지 선정

그때 변음보살(變音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 발에 정례하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세워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법문이 매우 희유(希有)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방편은 일체 보살이 원각의 문에 몇 가지로 닦아 익혀야 됩니까? 원하오니 대중과 말세의 중생들을 위하여 방편으로 열어 보이시어 실상(實相)을 깨닫게 하소서."
이렇게 말하고는 오체투지하며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변음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 선재라, 선남자여. 그대들이 모든 대중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같이 닦아 익히는 법을 물으니, 그대들은 이제 자세히 들어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이에 변음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며 대중들과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일체 여래의 원각이 청정하여 본래 닦아 익힐 것과 닦아 익힐 자도 없으나, 일체 보살과 말세 중생이 깨닫지 못함에 의하여 환의 힘으로 닦아 익히므로 그때 문득 이십 오종(二十五種)의 청정한 선정의 바퀴[定輪]가 있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오직 지극히 고요함[極靜]만을 취하면 고요함의 힘 때문에 영원히 번뇌를 끊고 구경에 성취하여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문득 열반에 드나니, 이 보살은 홑으로 사마타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오직 환 같음[如幻]만 관찰하면 부처님의 힘으로써 세계의 갖가지 작용을 변화시켜 보살의 청정하고 미묘한 행을 갖춰 행하되 다라니에서 조용한 생각[寂念]과 모든 고요한 지혜[靜慧]를 잃지 않나니, 이 보살은 홑으로 삼마발제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오직 모든 환을 멸하여 작용을 취하지 않고 홀로 번뇌를 끊어 번뇌가 끊어져 다하면 문득 실상을 증득하나니, 이 보살은 홑으로 선나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먼저 지극히 고요함을 취하여 고요한 지혜의 마음으로 모든 환인 것을 비추고 문득 이 가운데서 보살행을 일으키면, 이 보살은 먼저 사마타를 닦고 후에 삼마발제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고요한 지혜로 지극히 고요한 성품을 증득하고 문득 번뇌를 끊어서 영원히 생사를 벗어나면, 이 보살은 먼저 사마타를 닦고 후에 선나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먼저 보살들이 적정한 지혜로 다시 환력(幻力)의 갖가지 변화를 나타내어 중생들을 제도하고 후에 번뇌를 끊어서 적멸에 들면, 이 보살은 먼저 사마타를 닦고 중간에 삼마발제를 닦고 후에 선나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 마음에 번뇌를 끊고 뒤에 중생을 제도하여 세계를 건립하면, 이 보살은 먼저 사마타를 닦고 가지런히 삼마발제와 선나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 도와서 변화를 일으키고 뒤에 번뇌를 끊으면, 이 보살은 가지런히 사마타와 삼마발제를 닦고 후에 선나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지극히 고요한 힘으로 적멸을 돕고, 뒤에 작용을 일으켜 경계를 변화하면, 이 보살은 가지런히 사마타와 선나를 닦고 후에 삼마발제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 갖가지로 수순하되 지극히 고요함을 취하면,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후에 사마타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 갖가지 경계에 적멸을 취하면,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후에 선나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 불사(佛事)를 하고 편안히 적정에 머물러서 번뇌를 끊으면,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중간에 사마타를 닦고 후에 선나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 걸림 없이 작용하고 번뇌를 끊는 까닭에 지극히 고요함에 머무르면,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중간에 선나를 닦고 후에 사마타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 방편으로 작용하고 지극히 고요함과 적멸을 둘 다 함께 수순하면, 이 보살은 먼저 삼마발제를 닦고 가지런히 사마타와 선나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 갖가지 작용을 일으켜 지극히 고요함을 돕고 뒤에 번뇌를 끊으면, 이 보살은 가지런히 삼마발제와 사마타를 닦고 후에 선나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변화의 힘으로 적멸을 돕고 뒤에 청정한 지음 없는[無作] 정려(精慮)에 머무르면, 이 보살은 가지런히 삼마발제와 선나를 닦고 후에 사마타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적멸의 힘으로 지극히 고요함을 일으켜 청정에 머무르면, 이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후에 사마타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적멸의 힘으로 작용을 일으켜 일체 경계에서 적멸의 작용에 수순하면, 이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후에 삼마발제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적멸의 힘인 갖가지 자성으로 정려에 안주하여 변화를 일으키면, 이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중간에 사마타를 닦고 후에 삼마발제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적멸의 힘인 무작(無作) 자성으로 작용의 청정 경계를 일으켜 정려에 돌아가면, 이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중간에 삼마발제를 닦고 후에 사마타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적멸의 힘인 갖가지 청정으로 정려에 머물러 변화를 일으키면, 이 보살은 먼저 선나를 닦고 가지런히 사마타와 삼마발제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적멸의 힘으로 지극히 고요함을 도와 변화를 일으키면, 이 보살은 가지런히 선나와 사마타를 닦고 후에 삼마발제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적멸의 힘으로 변화를 도와 지극히 고요한 맑고 밝은 경계의 지혜를 일으키면, 이 보살은 가지런히 선나와 삼마발제를 닦고 후에 사마타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만일 보살들이 원각의 지혜로 뚜렷이 일체를 합하여 모든 성(性)과 상(相)에 각성(覺性)을 여윔이 없으면, 이 보살은 세 가지를 원만히 닦아서 자성의 청정함을 수순한다고 하느니라.
선남자여, 이를 보살의 이십 오륜(二十五輪)이라 이름하니 일체 보살의 수행이 이와 같느니라.
만일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이 륜(輪)에 의하려는 이는 마땅히 범행을 지니고 적정하게 사유하여 슬피 참회를 구하되, 삼칠일이 지나도록 이십 오륜에 각각 표기해 두고 지극한 마음으로 슬피 구해서 손닿는 대로 결(結)을 취하여 결이 보여 줌에 의하면 문득 돈(頓)과 점(漸)을 알리니 한 생각이라도 의심하거나 뉘우치면 곧 성취하지 못하리라."
그때에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변음이여, 그대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보살의 걸림 없는 청정한 지혜가
다 선정에 의하여 생기느니라.

이른바 사마타와
삼마제와 선나이니,
세 가지 법을 돈(頓)과 점(漸)으로 닦아서
이십 오종이 있느니라.

시방의 모든 여래와
삼세의 수행자들이
이 법으로 인하여
보리를 이루지 아니함이 없으니
오직 몰록 깨달은 사람과
법에 수순하지 않는 이는 제하느니라.

일체 모든 보살과
말세 중생이 항상 마땅히 이 륜(輪)을 지니어
수순하고 부지런히 닦아 익히면
부처님의 대비하신 힘에 의하여
오래지 않아서 열반을 증득하리라.


제9. 정제업장보살장

네 가지 상을 제하는 법

그때 정제업장보살(淨諸業障菩薩)이 대중 가운데 있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의 발에 정례하며, 오른쪽으로 세 번 돌고 두 무릎을 세워 꿇고 합장하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대비하신 세존께서 저희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불가사의한 일인 일체 여래의 인지(因地)의 행상을 널리 말씀하시어, 대중들로 하여금 미증유를 얻어 조어(調御)께서 항사겁을 지나도록 애쓰신 경계인 일체 공용을 모두 보기를 마치 일념과 같이 하게 하시니, 저희 보살들은 깊이 스스로 기뻐합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원각의 마음이 본성이 청정하다면 무엇 때문에 더럽혀져서 중생들로 하여금 답답하여[迷悶]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까. 오직 원하옵니다. 여래께서 널리 저희들을 위하여 법성을 개오(開悟)하여 이 대중과 말세 중생으로 하여금 장래의 안목을 짓게 하소서."
이렇게 말씀드리고는 오체투지하며 이같이 세 번 거듭 청하였다.
그때 세존께서 정제업장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재 선재라, 선남자여, 그대들이 이에 모든 대중과 말세 중생을 위하여 여래에게 이같은 방편을 물으니, 이제 자세히 들으라. 마땅히 그대를 위하여 설하리라."
이에 정제업장보살이 가르침을 받들어 기뻐하면서 대중들과 조용히 들었다.
"선남자여, 일체 중생이 비롯함이 없는 옛부터 망상으로 아, 인, 중생, 수명(我人衆生壽命)이 있다고 집착하여 네 가지 뒤바뀜[顚倒]을 잘못 알아 참 나의 체로 삼는다. 이로 말미암아 문득 미움과 사랑의 두 경계를 내어서 허망한 체에 거듭 허망을 집착하는지라, 두 허망이 서로 의지하여 허망한 업의 길을 내니, 망업(妄業)이 생기므로 망령되이 유전함을 보며 유전을 싫어하는 이는 망령되이 열반을 보느니라.
이로써 능히 청정한 깨달음에 들지 못하나니, 깨달음이 들어가는 이들을 거부함이 아니며, 능히 들어가는 이가 있더라도 깨달음이 들어가게 함이 아닌 까닭이다. 그러므로 생각을 움직이고 생각을 쉼이 다 답답함으로 돌아가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비롯함이 없이 본래 일어난 무명으로써 자기의 주재(主宰)를 삼았기 때문이다. 일체 중생이 태어날 때부터 지혜의 눈이 없어서 몸과 마음 등의 성품이 다 무명이다. 비유하면 사람이 스스로 자기의 목숨을 끊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분명히 알아라. 나를 사랑하는 이는 내가 수순해주고 수순하지 않는 이에게는 원망을 품나니,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무명을 자라게 하는 까닭에 상속하여 도를 구하여도 다 성취하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아상(我相)인가? 이른바 중생들이 마음으로 증득한 바이니라. 선남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온몸이 건강하고 평안해서 홀연히 나의 몸을 잊었다가 섭양(攝養)하는 방법이 어긋나서 사지가 불편할 때 조금만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곧 나[我]가 있는 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증득해 취하여야 비로소 나의 본체[體]가 나타나느니라. 선남자여, 그 마음이 여래께서 필경에 분명히 아신 청정 열반까지 증득할지라도 모두 아상이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인상(人相)인가? 이른바 중생들이 마음으로 증득한 것을 깨닫는 것이니라. 선남자여, 나[我]가 있다고 깨달은 이는 다시는 나를 잘못 집착하지 않거니와 나[我]가 아니라고 깨달은 깨달음도 그와 같나니, 깨달음이 이미 일체 증득한 것을 초과하였다는 것이 다 인상이니라. 선남자여, 그 마음이 내지 열반이 함께 나[我]라고 뚜렷이 깨달을지라도, 조금이라도 마음에 깨달았다는 생각을 두면 진리를 증득했다는 생각을 다 없앴다고 하더라도 인상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중생상(衆生相)인가? 이른바 중생들 스스로 마음으로 증득하거나 깨달음으로 미치지 못하는 바이니라. 선남자여,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중생이다'고 하면, 그 사람이 중생이라 말한 것은 나도 아니며, 저도 아닌 줄 아는 것과 같다. 어찌하여 나[我]가 아닌가? 내가 중생이므로 나[我]가 아니다. 어찌하여 저가 아닌가? 내가 중생이라 했으므로 저의 나가 아닌 까닭이다. 선남자여, 단지 중생들의 증득함과 깨달음이 모두 아상, 인상이니, 아상, 인상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요달한 바를 두면 중생상이라 이름하느니라.
선남자여, 무엇이 수자상(壽者相)인가? 이른바 중생들의 마음의 비춤이 청정하여 요달한 바를 깨닫는 것이니, 일체 업지(業智)가 볼 수 없는 것이 마치 목숨[命根]과 같느니라. 선남자여, 마음으로 일체 깨달음을 비추어 보는 것은 다 티끌이니, 깨달은 이와 깨달은 바가 티끌을 여의지 못한 때문이니라. 마치 끓는 물로 얼음을 녹임에 따로 얼음이 있어 얼음이 녹은 것인 줄 아는 이가 없음과 같아서, 나를 두어 나를 깨닫는 것도 이와 같느니라.
선남자여, 말세 중생이 네 가지 상[四相]을 알지 못하면 비록 여러 겁을 지내도록 힘써 도를 닦더라도 단지 유위(有爲)라 이름할 뿐이요, 마침내 능히 일체 성스러운 과보를 이루지 못하리니, 그러므로 정법(正法)의 말세라 이름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일체 나를 잘못 알아서 열반을 삼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도적인 줄 모르고 아들로 삼음에 그 집의 재산을 마침내 보전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무슨 까닭인가. 나를 애착함[我愛]이 있는 이는 또한 생사도 미워하는지라, 사랑하는 것이 참으로 생사임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따로 생사를 미워하나니, 해탈하지 못한 것이니라.
어찌하여 마땅히 법이 해탈치 못함을 아는가? 선남자여, 저 말세 중생으로서 보리를 익히는 자가 자기의 조그마한 증득으로써 스스로 청정을 삼음은 능히 아상의 근본을 다하지 못함이니라. 만일 다시 어떤 사람이 그 법을 칭찬하면 곧 환희를 내어서 문득 제도하려 하고, 만일 다시 그가 얻은 것을 비방하면 문득 화를 내나니, 곧 아상을 견고하게 집착해 가져 장식(藏識)에 잠복하고 여러 감관[根]에 유희해서 일찍이 끊이지 않은 줄 알 수 있느니라.
선남자여, 저 도를 닦는 이가 아상을 제거하지 아니하여 능히 청정한 깨달음에 들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만일 나가 공한 줄[我空] 알면 나를 헐뜯을 이가 없으며, 나를 두고 설법함은 나가 끊어지지 않은 때문이니, 중생과 수명도 그러하니라.
선남자여, 말세 중생이 병을 법이라 하리니, 그러므로 가여운 자라고 이름한다. 비록 부지런히 정진하나 온갖 병을 더할 뿐이다. 그런 까닭에 능히 청정한 깨달음에 들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말세 중생이 사상[(四相)을 요달하지 못하고 여래의 견해와 행한 자취로써 자기의 수행을 삼으면 마침내 성취하지 못하느니라. 혹 어떤 중생이 얻지 못함을 얻었다 하고, 증득하지 못함을 증득했다고 하며, 이겨 나아가는 이를 보고 질투하는 것은, 그 중생이 자신에 대한 사랑[我愛]을 끊지 못한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청정한 깨달음에 들지 못하느니라.
선남자여, 말세 중생이 도 이루기[成道]를 희망하되 깨달음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다문(多聞)만 더하여 아견을 자라게 하나니, 다만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번뇌를 항복시키고 대용맹을 일으켜서 얻지 못한 것을 얻게 하며, 끊지 못한 것을 끊게 하여, 탐냄[貪], 성냄[瞋], 애착[愛], 교만[慢]과 아첨[諂], 왜곡[曲], 질투가 경계를 대하여도 생기지 않고 저와 나의 은애(恩愛)가 일체 적멸하면, 부처님께서 이 사람은 점차로 성취하리라 설하시니라. 선지식을 구하면 사견에 떨어지지 않으려니와 만일 구하는 바에 따로 미움과 사랑을 일으키면 곧 능히 청정한 깨달음[覺海]에 들지 못하리라."
그때 세존께서 이 뜻을 거듭 펴시기 위하여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정업(淨業)아, 그대는 마땅히 알아라.
일체 중생들이
모두 아애에 집착하여
비롯함이 없이 허망하게 유전하나니
네 가지 상을 제하지 못하면
보리를 이루지 못하느니라.

사랑과 미움이 마음에서 생기고
아첨과 왜곡이 생각 속에 있으니
그 까닭에 답답함이 많아서
능히 각성(覺城)에 들지 못하느니라.

만일 능히 깨달음의 세계에 돌아가서
먼지 탐, 진, 치를 버리고
법애(法愛)도 마음에 두지 아니하면
점차로 성취할 수 있으리라.
나의 몸도 본래 있지 아니한데
미움과 사랑이 어디서 생기리오.
이 사람은 선지식을 구하여
마침내 사견에 떨어지지 않으려니와
구하는 바에 따로 생각을 내면
구경에 성취하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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