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書畵 雲谷 姜張遠

 

 
작성일 : 12-10-04 16:20
[백가쟁명:유주열] 라오산(?山)의 道敎이야기
 글쓴이 : 운곡
조회 : 613  
 
라오산 가는 길

서울 경복궁의 동편 삼청동(三淸洞)은 한국의 도교와 관련되는 곳이다. 그곳은 조선왕조 시대 도교를 관장하는 소격서가 있었던 곳으로 소격서에는 도교의 3대 기둥인 玉淸 上淸 太淸을 모신 三淸殿이 있었다.
도교의 발상지는 한반도에서 멀지 않은 산동성 칭다오(靑島)시의 라오산(?山)으로 알려져 있다. 칭다오에 자주 가지만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 그리고 옛 독일식 저택을 보고 돌아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라오산 태청궁을 방문할 수 있었다.
“海上名山第一”로 알려진 라오산 가는 길은 절벽을 깎아 만들어 길도 좁아 위태롭게 지나가야 한다. 바다 건너편이 한반도이지만 물 빛깔은 인천 앞바다와는 사뭇 다르게 푸르고 시원하다.
태청궁에 들어서자 천년이상 된 은행나무가 사람들을 반겨준다. 그리고 8백년 된 동백나무등 기이한 아열대 나무가 눈에 뜨인다. 태청궁은 뒤로 해발 1000m의 라오산이 품듯이 감싸고 있고 남향으로만 바다로 열려 있다. 보기에도 아늑하고 겨울에도 춥지 않아 아열대 나무들도 잘 자라고 있는지 모른다. 道士들이 세상을 잊고 수행하기 너무 좋은 곳 같다.
도교는 중국에서 다신교적 자연과 더불어 살면서 인간의 원초적 희망인 불로장생을 간구하는 민간 신앙으로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던 토착종교이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여 인간으로서 최고의 경지에 오르자 仙界를 넘어다보고 神仙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도교의 도사(方士)들을 불러 불로상생의 불로초를 구하도록 하였다.


라오산과 泰山
라오산에서 멀지 않은 태산에서 진시황이 제사(封禪祭)를 지내면서 중국의 첫 황제임을 하늘과 신선들에게 보고하였다. 태산은 중국의 가장 동쪽의 聖山으로 東岳으로 불리어지면서 동해 바다 건너 신선들과 교류할 수 있는 좋은 위치로 생각했다. 태산에서 보면 실제 동쪽 바다로 연결된 곳이 라오산이다. 라오산에는 진시황의 명령으로 수많은 방사들이 수련하면서 인간의 불로장생을 연구한 곳으로 보인다.
그들이 눈만 뜨면 보이는 바다 어딘가에 만나는 지점이 신선이 사는 봉래 방장 영주산등 三神山이 있으며 인간도 삼신산의 불로초를 먹으면 人界를 떠나 仙界에서 불로장생한다고 믿었다. 진시황을 명령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러 떠났으나 끝내 돌아오지 않은 徐福은 인근 낭야출신으로 라오산에서 도를 연마하던 방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태청궁에는 파란 도포와 검은 도포를 입은 도사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 옛날 라오산의 도사들은 서복이 돌아오지 않자 불로초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고 不老의 물질인 丹을 구했는지 모른다. 방사들 사이에는 수은을 연마하면 단이 된다는 연단술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수은으로 만든 단을 먹고 사람들이 장수하기는 커녕 중독되어 사망에 이르자 방사들은 연단술마저 포기하였다.
방사들의 결국 丹을 외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몸 안에는 열을 태우는 가마솟 같은 것이 배꼽아래에 있는데 이것을 丹田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호흡을 통해 열을 태우면 丹田에서 丹이 생산되어 불로장수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불로초나 연단술에 의한 外丹보다 몸속에서 스스로 생산되는 內丹으로 장수를 기원하게 되었다. 지금도 도사들이 기공체조며 단전호흡으로 심신을 수련하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된다고 본다.

도교의 양대 산맥
태청궁에도 삼청전이 있다. 삼청은 도교의 최고神이고 道의 3가지 모습이기도 하다. 서울에 삼청각이 있다. 시내에서 삼청각까지 다니는 사틀버스를 보고 어느 중국관광객은 도교 신도들을 위한 버스인줄 알았다고 한다. 삼청각은 삼청동 인근의 성북동에 있는 한국 전통 요리를 제공하고 민속공연을 하는 곳으로 도교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 실소를 했다고 한다.
태청궁 앞에 “道敎 全眞 天下第二 叢林”이라고 쓰인 바위가 놓여 있다. 춘추시대 많은 사상가중 유가의 공자와 함께 도가의 노자가 유명하였다. 도가는 노자의 사상이고 도교는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한 민간신앙이다. 민간신앙은 나라가 어지러울 때 번성하게 된다. 後漢의 張陵에 의한 五斗米敎가 도교의 출발점이다. 입도자에게 오두미 즉 10리터의 쌀을 헌납토록 하였다고 하여 오두미교가 되었다고 한다. 도교는 唐宋시대 조정의 지원을 받아 급속도로 번창한다. 唐태조 李淵의 후손인 황제들은 李씨성인 노자(李耳)와 종친이 된다고 도교를 특별히 권장하고 외래종교인 불교를 멀리하여 한때 전국의 불교사찰을 폐지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도교는 극도로 번성하자 내부 갈등과 퇴폐로 문란해지면서 교단내에서 정화 혁신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종래 도사들은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서 종교활동을 한 在家 도사였다. 12세기 일어난 혁신교단은 스님처럼 出家하여 수련에 몰입할 것을 주장하였다.
선불교의 영향이 컸다고 한다. 이러한 혁신교단을 新道敎 또는 全眞敎라고 하고 종래의 도교를 舊道敎 또는 正一敎라고 불렀다.
그러나 明조에 와서 선불교적인 전진교는 배척되고 중국고유의 정일교가 중시되었다. 전진교는 불교를 일찍 수용한 적이 있는 북방의 소수민족 사이에 유행하였다. 소수민족이 세운 淸朝에서도 전진교가 우대되어 황제의 명령으로 수도 北京의 白雲觀에 전진교 총본산을 두었다. 라오산의 태청궁이 2번째 총본산(총림)이 되었지만 청조가 망한 지금은 라오산의 태청궁이 사실상의 총본산인 셈이다. 재가 도사들의 정일교는 강서성 용호산이 총본산이 되자 북방은 전진교 남방은 정일교로 남북으로 정리 된 셈이다.

칭다오 맥주와 태극
태청궁 경내에 많은 나무들은 도교의 氣를 받았다고 하여 이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는 속설로 손 떼가 까맣게 묻은 고목이 많다.
중국에서 라오산의 물로 빚은 칭다오 맥주가 특별한 인기가 있는 것도 맥주를 통해 라오산의 물을 마시면 재물을 얻고 가내 다복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태청궁 앞에는 거대한 태극과 8괘가 그려져 있다. 도교는 만물을 음양으로 구분하여 태극과 팔괘로 우주를 풀이한다. 그래서인지 경내의 모든 건물에 태극문양과 8괘가 눈에 뜨인다. 한국의 국기(太極旗)도 도교의 태극과 무관하지 않다. 20년 전 중국과 수교한 후 태극기가 중국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되자 많은 사람들이 낯익은 깃발에 친근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몽골공화국의 국기에도 도교의 태극이 조그맣게 들어 있다.

한국의 도교

한국은 세계적 종교가 환영받는 곳이다. 흔히들 한국의 기본사상을 유불선으로 이야기 하는 것도 유교 불교 도교가 서로 사이 좋게 발전해 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근세와 와서는 기독교 가 유입되었지만 종교간의 갈등은 없다.
도교는 한반도에 유교 불교에 비해 비교적 늦게 7세기경 중국(唐)에서 전래되었다. 당나라에서 벼슬하고 귀국한 최치원도 당의 도교 영향을 받아 자연을 벗하며 전국을 순례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는 도교를 중시하는 宋의 영향으로 수도 개성의 북쪽에 福源觀을 설립하고 三淸(Three Pure Ones)의 像을 모시기도 하였다. 조정에서 도교의 제례의식인 재초제(齋醮祭)를 지내기도 하고 칠성각등 星辰신앙이며 부적을 몸에 지니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주자학을 국시로 건국된 조선시대에는 다신교적이고 미신의 냄새가 나는 도교는 쇠퇴되었다. 특히 젊은 유학자들은 한양에 도교 관련 건물이 있는 것도 참지 못하여 철폐를 주청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겪으면 지원군 명나라 군대와 함께 들어 온 도교가 다시 부활하고 關羽같은 무장을 숭배하는 도교 풍습이 생겨 동대문 밖의 東廟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지방에도 도교사원이며 관우의 사당이 있어 도교의 태극마크가 주변에 흔하게 되었다. 근세 처음으로 국기를 만들 당시 지식인들은 “백성은 흰색, 신하는 푸른색, 임금은 붉은색(民白, 臣靑, 王紅)”의 원칙하에 백색 바탕에 半靑半紅의 태극무늬에 조선8도를 나타내는 8괘로 둘러 싼 국기를 생각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태극기의 의미는 왕조시대의 발상과 달리 바탕의 흰색은 백의민족의 순결과 평화염원 上紅下靑의 태극문양은 陽과陰 그리고 건곤리감(乾坤離坎)의 4괘는 천지(天地)와, 일(火)월(水)의 조화로 韓民族의 영원한 발전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태극의 문양도 左白右黑의 陰陽魚(물고기의 눈)로 된 도교의 태극과 다르다.
라오산의 정기를 푹 받고 돌아가는 발길은 한결 가벼웠다. 사실은 아침에 한반도 쪽에서 떠오르는 바다위의 태양을 맞이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유감이다. 그러나 라오산 중턱에 호텔을 짓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 일박하고 아침 태양의 氣까지 받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해 본다.

*유주열 (전 베이징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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