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書畵 雲谷 姜張遠

 

 
작성일 : 04-07-10 14:23
선묵화의 달마화론
 글쓴이 : 홈쥔
조회 : 1,725  

禪墨畵의 達摩畵論
글/雲谷 姜張遠

예로부터 그려져 온 達摩圖는 전문적 화가에 의하여 그려진 것과 高僧이나 學者, 文人에 의하여 그려진 理想的인 達摩圖등 실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도록 그려져 왔다.
그런데 전문적 화가에 의해 그려진 達摩圖는 運筆과 교묘한 彩色에 있어서 극치를 이루고 있으나 達摩의 氣品이 떨어지는 폐단이 있는 반면, 高僧, 文人에 의하여 그려진 것은 筆意의 淸純한 장점이 있으나 運筆과 먹빛(墨色)의 서투름으로 인하여 고귀한 美術品으로서는 繪畫性이 떨어지는 결점을 가지고 있다.

화가가 다만 붓끝으로 그리는 연습에만 주력하여 達摩의 傳記와 品格, 思想, 敎法등을 이해하지 못한체 達摩像을 그리게 되면 자칫 고뇌에 시달리며 증오로 가득찬 모습의 빈약한 걸인을 그리게 되어 達摩祖師에 대한 不敬의 罪를 짓게 된다.

본래 美術의 가장 중요한 精神은 그림을 위한 그림으로써 사물의 형상을 중요하게 그리는 데에 있지 않는 것이다. 진흙에 묻혀 알아 볼 수 없는 보물이라도 알아 볼 수 있는 心眼으로 그리려는 인물의 心靈의 意想을 파악하여 자연스럽게 그리되 생동력이 넘치는 筆意가 자재로운 신묘의 극치에 도달해야 일격의 작품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종이와 붓과 먹과 벼루가 기본적으로 갖추어져야 하는데 이 紙筆墨硯은 단지 死物일 뿐이다. 요컨대, 화가는 視角的인 短見을 버리고 自覺의 觀照的 心眼을 가지고 손끝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美的表現이 心眼에 의하여 靈的 筆意로 팔과 손이 따라 움직이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紙筆墨硯의 死物을 이용하여 팔과 손, 그리고 손가락에 쥐어진 붓촉이 한가지로 자신의 靈의 움직임에 따라 자연스럽게 그려졌을 때 死物을 이용하여 생명력있는 작품이 탄생되는 것이다.

사물의 畵紙위에 붓끝이 은근히 미끄러지다가 때로는 춤을 추듯하고 때로는 멈추고 때로는 환희작약하여 그때마다 먹물의 濃淡이 어우려져서 먹물로 그려진 그림이 살아 숨쉬며 은밀하게 속삭이기도 하고 혹은 사자후를 토하는 듯 비밀한 뜻을 전하도록 하므로서 死物이 아닌 살아있는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키는 것이 화가의 창작하는 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화가들의 그림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宗敎繪畵이다. 宗敎的 繪畵를 그림에 있어서 일반적인 短見의 소유자로서 비신도인 화공은 宗敎繪畵를 그릴 자격이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불교신도가 아닌 화공의 인식수준에 따라 그려진「부처」나「菩薩」像은 非宗敎的인 회화로 오히려 그리지 않는 것만 못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宗敎繪畵로서 聖人의 像을 그리기 위해서는 妄執의 假我를 버리고 眞我를 찾아야만 비로소 殺身成仁하는 聖人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觀音菩薩을 그리거나 釋迦牟尼부처님을 그리거나, 혹은 維摩居士를 그리려면 먼저 자신이 大慈大悲한 觀世音菩薩의 정신과 사상을 體會하고, 苦海衆生을 제도하려는 일념으로 다른 생각의 겨를이 없는 釋迦의 마음과, 維摩를 그리려면 먼저 維摩의 마음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화선지나 비단을 대하여 그릴 수 있는 것이다.

達摩를 그림에 있어서도 이와 같으니 모름지기 자신이 먼저 佛心을 체회하고 禪定을 닦아 達摩의 意志와 思想, 그리고 感情등등 그 情境에 접하여 靈的 交感을 붙잡았을 때 비로소 붓을 들어 그림으로써 達摩精神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호랑이를 그렸으되 고양이의 모습이요 봉황을 그렸으되 닭이 되는 어리석은 수고만 할 뿐이니 어찌 삼가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達摩를 그린 여러 작품속의 면모를 살펴보면 모습이 길거나 혹은 둥글며 파안대소하거나 혹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눈동자도 역시 부리부리하고 형형하며 혹은 조으는듯 명상에 잠겨있기도 하는데 그처럼 여러 가지의 표정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요컨대 達摩의 思想은「敎外別傳」으로 우리는 無形의 達摩와 항상 접할 수 있으니 그 哲學的 禪修行에 의하여 무한한 禪味로서 그 마음을 자연스럽게 體會하고 體得하여 達摩의 千容百態와 契合하므로써 그 모습을 인식할 수 있으니 먼저 禪定을 닦아 假我의 妄執을 버리고 靈的 交感을 얻었을 때에 비로소 철학적 達摩를 그릴 수 있는 것이다. 達摩圖는 金剛石과 같은 佛心과 意志의 堅强함을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소림사에서 面壁九年의 지혜연마로 大慈자悲心으로써 濟世度衆한 그의 철저한 의지나 행적을 쉽게 표현하기는 더욱 어려운 것이다.

慈悲心은 곧 佛心이다. 그래서 達摩大師를 觀音菩薩의 化身이라고도 한다. 또한 達摩가 傳한 佛心은 永世無窮하여 그의 禪旨는 곧 인류생존의 터전인 지구궤멸을 담보로한 物質萬能의 文明이 극도로 발달하였으나 상대적으로 인간성이 상실된 현대사회에서 절실하게 요구되는 人間性 회복에 꼭 필요한 사상인 것이다.

이제 達摩를 그리려고 하는이는 그의 의지를 바로 보고 須彌山도 뽑을 수 있고 大海水도 마실 수 있는 氣像을 갖추어 禪定의 大悟徹底를 표현하도록 해야 한다. 그의 눈매에서는 禪定의 悟境과 智慧가 번뜩이는 것을, 그의 근엄하되 온화한 자비상을 갖추어 표현해야 한다. 즉 達摩의 表情에 聖者로서의 원만한 세가지 덕을 갖추어 표현해야 하는 것으로 怒한 듯 굳게 다문 입으로 굳은 의지를 나타내며 영웅적 기세로 풍만하고 온화한 자세, 형형한 눈빛으로 언제나 성성하게 깨어있는 자태를 그려내는 것으로 그 形容을 글로써 옮겨 쓰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畵家는 妙諦를 체회하고 畵法을 익힌다음 達摩의 모습을 그려야 한다. 중요한 것은 達摩圖를 보는 이로 하여금 경건한 신앙심에 불퇴전의 禪味를 느끼도록 하며 慈悲의 天性이 발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을 啓導함에 있어서 慈悲心이 우선인데 知慧만으로는 부족한 것이며 자비심이 없어 위세로써 사람의 마음을 心腹시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達摩의 表情에는 온화한 자비심과 조으는 듯 깨어있는 智慧와 사람의 마음을 심복시키는 강한 의지가 함께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다.

達摩圖를 그리기 위하여 그 相을 필요로 할 경우, 먼저 마음을 가라앉혀 향을 피우고 迦趺坐하여 六塵五慾의 迷妄한 雜念을 쓸어내고 菩提達摩의 禪旨를 깊이 體會하여 화지위에 화필을 서서히 전개해 나가되 지극한 마음으로 祈禱하는 자세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達摩를 그리기 위한 자세는 어떤 것인가? 達摩를 그리려면 자신이 달마의 정신을 갖추어야 하는데 達摩의 敎義와 宗旨를 알지 못하는 자는 그릴 자격이 없다.

말을 타고 달리듯 走馬看山격으로 達摩의 佛性과 敎理를 이해하려고 하는것은 심히 곤란한 일이다. 오직 禪書를 많이 읽고 坐禪을 게을리 하지 않으므로써 비록 達摩大師의 智慧의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할지라도 그의 一端이라도 알게되는 것이다. 훌륭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만리여행을 하고 만권의 책을 읽으라(行 萬里路, 讀 萬卷書)고 한 것은 體會와 體得을 중요시 하였기 때문이다.

옛부터 화가의 작품은 書卷之氣를 중요한 요체로 評하였으니, 이는 書卷의 氣는 多讀書로 薰養된 화가의 意志와 思想, 人格, 氣品이 그 작품속에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禪味의 作品을 그리려는 畵家는 俗氣와 俗塵이 묻어있어서는 안된다.

모름지기 창작된 작품에는 脫俗과 出塵의 품격을 감추어 감상자로 하여금 欽仰하는 마음이 일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그림을 논함에 있어서 좋은 작품이란 形像의 닮은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작품에 스며든 人格을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만약 名利를 위하여 실물의 形相만을 그린 것이라면 고귀한 작품이라 할 수 없다. 능숙한 技巧가 부족할지라도 솔직하고 간결한 붓질로 玄妙한 정신이 표현된 작품이 훌륭한 것은 작품이 곧 人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達摩圖에는「달마의 몸은 없을지라도 달마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즉 그림을 그림에 있어서 타고난 소질과 재능을 갖추어 화법을 익혀 표현의 기량을 충분히 터득한 다음 달마를 그릴 때 그림속에 달마의 종지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達摩圖를 그리는데는 塵慮를 쓸어내고 일체의 罪業을 참회하여 적적하고 성성한 禪定에 들었을 때 비로소 붓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망상의 잡념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이 비우기 위해서는 번잡하지 않고 조용한 방안에 향을 피워 놓고 좌선을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니, 예로부터 인격수양의 한 방법으로 실행해왔으며 요즘에는 좌선을 명상이라하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達摩를 그리는데는 南⋅北畵法의 技量보다 坐禪이 더 중요하다. 동양화의 南畵와 北畵의 분류는 불교의 大乘과 小乘을 비유한 것으로 大乘과 小乘의 불교가 각기 그 나름대로 妙諦를 내포하고 있으나, 궁극의 목표는 중생제도에 있는 것과 같이 南畵나 北畵역시 각기 그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보완하므로써 더욱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법상 방법이 다른 南畵나 北畵가 그 技法을 사용하여 그려진 작품의 구격목적은 人間精神의 美的 표현으로 인간의 情的 욕구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에 좌선으로 훈양된 심상을 그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東洋繪畵에 있어서 北宗畵는 事實性을 중요하게 채택하고 南宗畵는 寫意性을 중요시하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로서 事實畵는 實用畵이고 寫意畵는 理想畵인 것이다. 전자는 畵工的그림이고 후자는 文人⋅雅士的 그림으로 北宗畵를 小乘的이라면 南宗畵는 大乘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南宗畵를 文人⋅雅土的 寫意畵라고 하였는데 達摩의 大海水를 마시고 須彌山을 걷어 찰 수 있는 氣愷의 표현에만 치중한다면 자칫 불쾌한 표정만을 그리게 됨을 조심해야 한다.
북종화의 사실적 靈氣와 남종화의 渴筆, 그리고 먹번짐(破墨), 먹퍼짐(潑墨)을 혼용하여 南⋅北宗의 法式을 초월하므로서 분별심을 버리는 것만이 大乘的 畵法이라 할 것이며 이로부터 逸格의 繪畵로서 達摩畵를 그릴 수 있는 것이다.□

 
 

Total 374
번호 제   목 글쓴이 날짜 조회
공지 틀리기 쉬운 漢字表記 운곡 01-08 5438
134 60,70년대 우리의 명절-설과 추석 귀향준비- 그 처절했던 정경속… 운곡 02-15 1828
133 원하는 일에 인생을 투자해라 김영주 02-01 1828
132 대보름의 추억 운곡 02-28 1827
131 커피 한 잔 雲谷 08-12 1811
130 [詩意圖]정초부 「東湖絶句」- 김홍도 <도강도> 운곡 02-25 1800
129 고사성어-차 홈쥔 10-25 1798
128 "2010한국의 바람" 전-전통회화의 지평을 넓히는 새로운 기획 운곡 04-04 1783
127 [사진]가요가수 김용임 운곡 01-28 1781
126 부처님의 십대제자(十大弟子) 홈쥔 10-15 1759
125 선묵화의 달마화론 홈쥔 07-10 1726
124 일가친척,가족간의 호칭 운곡 05-02 1724
123 청도-한중서화교류휘호에서-모택동의 시사 홈쥔 07-08 1724
122 왕유의 「전원락(田園樂)」 1 - 복사꽃 피고 버드나무 푸르른 정… 운곡 12-12 1706
121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 운곡 07-05 1684
120 왕유의 「종남별업(宗南別業)」 2-취하면 떠오르는 김홍도의 십… 운곡 12-12 1677
119 이병직: 스승 김규진 운곡 03-29 1659
118 진사백자 운곡 02-01 1638
117 우리가락 우리시조/ 운곡 05-16 1637
116 인재仁齋/강희안 [ 姜希顔 1417 ~ 1464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 (1) 운곡 10-07 1628
115 강세황 [ 姜世晃 1713 ~ 1791 ] (1) 운곡 10-07 1623
   11  12  13  14  15  16  17  1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