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 그들에게 요구되는 초심(初心)-/ 김 영 죽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어떤 이는 이제 세월호 참사에 대해 그만 이야기하자고 한다. 
도저히 가슴 저미는 저 상황들을 볼 수조차 없다며 
산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는가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저마다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에, 
이미 ‘미안하지만, 그래도…’라는 자기 관용이 스며있다. 
궁금하다. 일상이 무엇인지….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덮고 평온하게 진행해도 되는 그 ‘일상’이라는 공간이 말이다. 
우리 모두 맞닥뜨린 지금의 참담한 현실에 대해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래서 계속 마음이 불편하고 아픈 게 바로 일상이 아닐까. 
그러니, ‘일상’으로 복귀하자라는 말은 제대로 된 말이 아닌 것이다. 

 
애초부터 잘못된 공식이었다. 
사건은 해결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을뿐더러, 그 과정에서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파헤쳐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가공할만한 일들이 쏟아져 나온다. 
소위 비리(非理)다. 올바른 이치와 도에 어긋나는 일을 우리는 ‘비리’라고 부른다. 

 
시대 초월한 지식인의 사명감, 인간애에 기반해야 

 
학문은 점점 발전해 왔고, 지식정보의 양은 이미 18세기 이후부터 어마어마하게 축적되어 왔다. 
‘지식인’이라 불리는 층들이 이전보다 훨씬 두터워졌으며, 
그들의 역할은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로 분화되었다. 
당연히 이들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현대 사회에서 지식인임을 자처하고, 인정받는 이들을 열거해보라 주문한다면 크게 어렵지 않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기업가, 정부 관료, 
교육, 문화, 예술 등 각계에 몸담고 있는 공직자, 리더들이 쉽게 떠오른다. 
이들은 고대(古代)의 지식인들이 통과해야 했던 전인적이며, 
세속과 대척점에 서야 하는 ‘어려운 관문’에서 한결 자유로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초월하여 요구되는 지식인들의 사명감은 분명히 존재한다. 
인간애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 이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켜져야 하며, 지향해야 하는 초심이다. 

 
여기 반계(磻溪) 유형원(柳馨遠)의 글이 이처럼 와 닿은 적이 없다. 
그는 <반계수록(磻溪隧錄)>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문벌만을 숭상하여 풍속이 구차하게 되었다. 
오로지 가문이 화려한가만 논할 뿐, 행실을 바르게 닦았는지의 여부는 묻지 않는다. 
만약 벌열의 자손이라면 비록 용렬하고 비루한 자라도 정승 판서에 통하고 
집안이 한미하면 비록 덕이 높고 학문이 깊어도 사류(士類)에 끼지 못한다. 
세도가 오르지 않고 인재가 흥하지 않으며 정형(政刑)이 문란한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라 하였다. 
일에 대한 실무는 물론, 책임과 공감의 영역에서조차 
함량 미달인 이들이 나라의 요직을 차지했을 때 빚어지는 결과가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언급이다. 
17세기 한 실학자가 지적한 이 문제가 과연 그 당시에만 해당되었던 것일까. 

 
슬픔과 힘겨움과 분노, 잊지 말아야 

 
이 사건을 면면히 들여다보면 
그 구도 속에 초심을 잃고 타성에 젖은 지식인들이 얼마나 많았는가를 느낄 수 있다. 
허울뿐인 그들이 권력과 진실 사이에서 얼마나 비양심적으로 대응했는지도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에드워드 사이드는 <지식인의 표상>에서 지식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즉, 가장 비난받아 마땅한 지식인의 사고습관은 옳은 일인 줄 알지만 선택하기는 어려운 원칙적 입장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책임을 회피하는 습성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렇게 주문한다. 
지식인이라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자가 되는 것을 넘어서서, 절반의 진실 혹은 널리 퍼진 생각들을 끊임없이 
경계하는 상태에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소명이라고 말이다. 이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와도 통한다. 
이번 참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언론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러나 여전히 ‘보여지는 것’에 집중하는 프레임은 변화되지 않았다. 
그러니 포털 화면에서의 사라짐은 곧 그 사건의 망각과 동일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번처럼 글을 쓰기가 어려운 적은 없었다. 
이 참사가 자칫 거대한 슬픔으로만 그쳐버리면 어떻게 하나 우려됨은 말할 것도 없다. 
반드시 두 아이의 엄마라서가 아니라, 
심장을 가진 이들이라면 여전히 이 상황을 힘겨워하며 분노하고 있을 것이다. 
시쳇말로 정신줄 꽉 잡고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시대 지식인들에게 초심을 요구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