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해서는 안 될 쓰라린 아픔 - 문전박대 -/ 박 석 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다산은 일생을 살아가면서 쓴맛, 단맛을 모두 경험했던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분이었습니다. 
암행어사라는 막강한 권력의 지위를 역임하였고, 
정조대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규장각과 한림원을 넘나들면서 임금의 최측근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감옥에 갇혀 모진 고문을 당하며 국문을 받았고, 
귀양지에 도착해서는 ‘문전박대(門前薄待)’를 당해 배고픔과 추위에 견디기 힘든 고난에 봉착하기도 했습니다. 
귀양살이가 풀려 고향에 돌아온 뒤에도 역전죄인이라는 누명을 벗는 사면을 받지 못해,
가까운 지인들이 자신의 집 문 앞을 지나면서도 들러주지 않는 ‘과문불입(過門不入)’의 
서러움과 외로움에 괴로워하기도 했습니다. 
 

  1801년 음력 11월 하순, 강진읍에 유배객으로 도착하여 자고 먹을 집을 찾았으나, 
모두가 문전박대하여 끝내는 동문 밖으로 나가 주막집에서 겨우 의탁할 수 있었고, 
양평에 살던 지인들은 서울에서 자신들의 집으로 가려면 
의당 마재 다산의 문 앞을 지나야 하는데 귀양살이에서 돌아온 다산이 거주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끝내 과문불입하는 때가 많았다고 다산이 기록한 글이 있습니다. 
문전박대와 과문불입은 상당한 의미에서 비슷한 뜻이 있으나 본질적으로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찾아주지 않음이야 상대방의 일이니 견딜만한 일이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고 나면 그것은 정말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청와대 앞 세월호 가족들이 76일 동안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농성을 하다 
농성 천막을 철거한다는 뉴스가 사진과 함께 보도되기에, 다산이 당하던 문전박대가 생각되었습니다. 
“청와대의 무심함과 함께 이웃과 국민의 정을 느꼈다”라고 철거 소감을 피력한 가족대책위 이야기는 
가슴을 매우 쓰리게 했습니다. 
“동네 개가 사납게 짖어도 생선대가리라도 던져주는데 
하물며 당신의 국민들이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한 번 닦아달라고 코앞에서 울고 있는데 
철저히 외면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면서 
“다시는 대통령에게 아프다고, 서럽다고, 눈물 닦아달라고 애걸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기자회견문의 한 토막은 우리를 너무도 슬프게 해주었습니다. 
‘문전박대’라는 말이 그렇게 실감 나게 느껴지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한이 맺히고 기가 막혔으면 
다시는 대통령에게 애걸은 하지 않겠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겠습니까. 
과문불입에는 또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요. 
 

  제 어릴 적 할머니께서 아무리 누추한 거지가 찾아오더라도 
문전박대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셀 수 없이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도 집에 찾아오는 사람을 맞아주지 않는 일은 
인간으로서는 할 일이 아니라고 강조하시던 말씀이 생생하게 기억됩니다. 
할아버지께서는 과문불입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하시던 말씀의 기억도 있습니다. 
어느 마을을 방문하면서 
아는 분들의 집을 방문하지 않는 일도 사람이라면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였습니다. 
 

  76일 동안이나 온갖 고난을 무릅쓰면서 한번 만나주기를 그렇게 애원하고, 
한번 들러주기를 그렇게 바랐는데 끝내 문전박대로 끝나고 말았으니, 
이런 아픔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