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속의 눈빛 그리고 정-/ 김진일
 
맑은 하늘에 차가운 별빛은 화려한데 먼 산에 가득 쌓인 흰 눈은 
정월 대보름을 며칠 지난 아쉬운 달빛 속에 가슴 시리도록 찬란하다. 

 
사무실 앞 공원에 듬성듬성 서 있는 솔가지 사이로 찬바람 스산하게 스치면 
뜻 모를 설음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지만 포근한 가슴으로 하늘을 본다.. 
낯 설은(다른 이들은 물조차 설타 지만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은 반겨주는 사람들의 가슴처럼 
그 물맛- 목 넘김이 정말 좋다) 타향에 자리 잡아 살아 온 지 십 여년-. 
밤이 되면 국도를 쏜살같이 스쳐가는 자동차들 으악- 소리에 진저리를 치지만 
가슴 따스한 사람들 속에 살아가는 호젓한 삶이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건 단지 나 
혼자만의 느낌이 아니리라. 

 
좋다, 정말 좋다. 
나를 낳고 건강하게 자라게 해 준 남도천리 그 곳은 저 서남해안의 섬- 이름조차도 보배로운 땅이지만, 
지금 내가 자리 잡아 살고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허리를 딱 접은 위치의 한반도의 중심이다. 
수려한 자연경관, 인심좋은 사람들이 함께하는 산하가 아름다운 곳-. 

 
이른 아침- 
두꺼운 방한복에 배낭 속엔 따스한 물 한 병 담아 발걸음도 가볍게 동네버스에 몸을 싣고, 
흰 눈 가득한 재인폭포에 다다르면 먼저 온 친구님이 공원 한쪽에서 뜨거운 커피 한잔을 내민다. 
구수하고 달디 단 커피 향이 시린 가슴을 덥히면 그제야 산 넘어 산 속의 하얀 눈, 하얀 산들이 
한 폭의 산수화처럼 보이고 차마 담아내지 못하여 그 기쁨을 아름다운 (?) 말로서도, 
부르지도 못할 시로서 노래한다. 

 
이 보배로운 기쁨을 남에게 알려주고 싶어도 그 방법을 모르겠다. 
자랑을 하고자 붓을 들어도 너무나 많은 기쁨이 밀려 와 말도 글도 되지 못하며 
말해주어 봤자 그들은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할 테니 말이다. 

 

 
滿庭月色無烟燭 만정월색무연촉 –뜨락 가득 달빛은 연기 없는 달빛이요 
入座山光不速賓 입좌산광불속빈 –자리 드는 산빛은 청치 않는 손님일세. 
更有松絃彈譜外 갱유송현탄보외 –솔바람 가락은 악보 밖은 연주하니 
只堪珍重未傳人 지감진중미전인 –보배로이 여길 뿐 남에겐 못 전하리. 

 
絶句 절구 -崔沆 최항(?-1024) -시 번역 ; 鄭珉선생 


 
흰 눈밭에 홀로 앉아 찬바람으로 벌려지지 않는 입을 벌려 중얼거리듯 
옛 선인들의 글을 읽노라면 어느새 중천의 해가 그만 일어서라 재촉한다. 

 
2014년 2월 16일 

 
작은 흥취가 일어나 하얀 눈 가득한 곳에서 따스한 차 한 모금 넘기다 
옛 노래를 핑계 삼아 적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