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융성시대 /강 명 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인문학의 거리  

 
지금 살고 있는 동네 산책길에 ‘인문학의 거리’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다. 구청에서 붙인 것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내심 반가워 산책을 하며 찬찬히 살펴보니, 시를 쓴 작은 팻말 예닐곱 개가 눈에 뜨인다. 
쓴웃음이 절로 났다. 그렇게 시 팻말 몇 개를 세워 놓으면 인문학의 거리가 되는지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부산 지하철 역사에는 곳곳에 시를 쓴 아크릴 널빤지가 있으니, 부산 지하철은 ‘인문학의 지하철’인 셈인가? 

 
아침 일찍 연구동으로 들어서자 게시판에 ‘인문학’ 세 글자가 보인다. ‘세상을 여는 아름다운 인문학’ ‘변두리 
인문학’이란 강좌 프로그램을 알리는 포스터다. 그러고 보니 아침 신문에도 곳곳에서 인문학 강좌가 열린다는 
소식을 알리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인문학 강좌가 끊임없이 열리고 한편에서 ‘인문학의 거리’도 생기니 가히 
인문학의 융성시대라고 하겠다. 

 
인문학 강좌를 여는 데도 당연히 돈이 필요하다. 기획을 하고 회의를 열고 팸플릿과 포스터를 찍고 장소를 마련 
하고 강사를 섭외하는 모든 일에는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니, 비용이 발생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다. 극소수 
의 예외를 제외하면, 이 비용은 대개 정부가 돈을 댄 무슨 재단이거나, 시청, 구청 등 대개 국가나 관(官)에서 나온 
다. 며칠 전 인문학 프로그램에 대해 물어볼 것이 있다고 어떤 분이 찾아왔다. 어린이를 위한 작은 사립도서관을 
운영하는 분이었다. 프로그램을 위한 비용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적은 돈을 구청으로부터 지원받는다 하였다. 
국가나 관은 한국의 현재 경제규모로 보면 그야말로 ‘푼돈’으로 인문학의 ‘융성’을 배후에서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정말 눈물 나게 고마운 일이다. 

 
대학 인문학의 침몰  

 
대학 교양과목의 절대 다수는 인문학 과목이다. 또 그것을 강의하는 절대 다수는 비정규교수(시간강사)다. 
그런데 알다시피 비정규교수는 국민소득 2만 달러(구매력 기준 3만 달러) 시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저임금 
과 고용불안에 시달린다. 부끄럽고 미안하기 짝이 없다. 요즘도 유행하는 대학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우선적 대 
상으로 삼는 것은 인문대학 소속의 학과들이다. 인문학과들은 마치 대학의 발전을 저해하는 원흉처럼 인식되어,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해괴한 명칭의 학과로 바뀌거나 심한 경우 폐과가 되기도 한다. 대학원 사정은 더 딱하다. 
공부해 보았자 평생 빈곤에 허덕일 것이란 생각에 학문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는 학생은 대학원에서 찾기 
어렵다. 대학의 인문학은 지금 침몰하고 있는 중이다. 
이게 나라와 관에서 지원하는 ‘인문학 융성시대’의 일이다. 내 머리로는 이 문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인문학을 먼저 공부해야 할 사람들  

 
하나마나 한 말이지만,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있기에 많은 인문학 강좌가 열리는 것이다. 그 속내는, 경쟁과 불 
평등으로 이루어진 사회, 그것을 강요하는 자본과 국가의 권력, 그리고 그것에 몰수당한 인간과 개인의 삶을 다 
시 깊이 성찰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옳은 일이다.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고 말하자면, 나라와 관에서 지원하는 
인문학은 별로 소용이 없을 듯하다. 
내 좁은 소견으로는, 대한민국의 보통 시민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양지(良知)가 있어, 무엇이 옳고 그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이미 잘 알고 있다. 
정작 인문학이 필요한 쪽은 정계와 관계, 언론계, 재계에서 권력을 쥐고 흔드는 사람들이다. 신문과 방송을 보면, 
이분들 중 상당수는 양지도 없고, 인문학 공부가 전혀 없는 분들로 보인다. 
아니, 상식조차 없는 분들 같다. (혹 있는데도 없는 척하는 것인가?) 

 
이분들에게 권하노니, 이번 가을에는 인문학 특강을 듣고 마음보를 바꾸던지, 아니면 책이라도 좀 읽으시기 바 
란다. 『묵자』와 『목민심서』를 우선 추천한다. 독서의 결과 사람과 세상 보는 눈을 조금이나마 밝게 뜨고 마음 
보를 바꾸시기 바란다. 제발 부탁이다.